#사례
뉴욕 주 와쇼(Warsaw, NY)의 가족 식당 주인은 25명 종업원 고용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식당 내에서 손님 받을 수 없어 매상이 확 줄은 사장은 드라이브 스루로 음식만 사 가게 하고 간간이 빵과 치즈 등도 함께 파는 궁여지책을 동원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이에 사장은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대출인 급여보호프로그램을 이용하려 30년간 거래한 지역 은행에 12만5000달러(약 1억5000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돌아온 답은 돈이 다 떨어져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포춘(Fortune)> 4월 30일 자 '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코로나19에 직접 타격받은 소상공인과 서민
미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1920년대 대공황급 이상으로 악화될 것을 우려해 선제적 방어에 나섰다. 엄청난 돈을 풀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막대한 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갚을 이들은 정작 누구인가? 돈이 곳간에서 흘러넘쳐서 준 것이 아니라 빈 곳간에서 돈을 찍어서 풀어낸 것이니 향후에 납세자들이 이 돈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향후란 그리 먼 미래도 아니다. 현재 50세 미만의 직장인들이 갚아야 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포춘> 4월 21일 자 '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돈을 찍어 푸는 것이 사망 직전의 미국 경제를 살릴 유일한 방법임을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좋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이것을 갚아 나가야 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국민들이고 서민들이다. 당장 실탄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야 한다. 한시가 급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만든 아래 표를 보면 큰 그림이 보인다. 미국에선 고용근로자 500명을 기준으로 그 아래를 중소기업으로 그 이상을 대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그리고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체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이 일을 한다. 2016년 현재 6000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가 3100만 개의 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월 7일 자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일단 막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이다. 그것이 곧 일반 서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기에 그렇다.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돕겠다며 내놓은 돈은 이제까지 6600억 달러(약 809조 원, 1차 3490억 달러(약 429조 원) / 2차 3100억 달러(약 380조 원))이다. 이름은 '급여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 PPP), 그걸로 직원의 급료를 주고 해고하지 말라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João Granja 외, 2020). 그런데 그 돈은 제대로 쓰였을까?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혜택을 본 이들은 매우 적고 대부분 PPP 구경도 못 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돈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대기업이 낚아채 간 소상공인 재난지원금(PPP)
영세자영업자 같은 소상공인에게 주라고 국가가 푼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위 사례의 식당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와쇼의 식당 사장만 겪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뉴욕시에서 6개의 식당을 경영하며 310명을 고용한 제법 큰 소상공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PPP를 신청했지만 단박에 거절됐다. 그의 입에서도 "범털(큰 회사)들은 구제금융 받고, 나 같은 개털들은 못 받고 이게 말이 되나?" 하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0일 자 ''The Big Guys Get Bailed Out' :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그럼 큰 식당 체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타 갔을까? 100개 이상의 점포에 50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가 2000만 달러(악 245억 원)을 받았다. 전국에 189개 점포를 갖고 8000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햄버거 체인점 '쉐이크 쉑'(Shake Shack)은 1000만 달러(약 123억 원), 샌드위치 체인점 '포트벨리'(Potbelly)는 전국에 약 500개 점포가 있고 직원 수는 6000명에 이르는데 이 회사도 소상공인 구제금융 1000만 달러를 받았다. 또 다른 대형 체인 '제이 알렉산더스'(J. Alexander’s)도 1510만 달러(약 185억 원)의 PPP를 따냈다.(☞ 관련 기사 : <엔비시뉴스>(NBCNews) 4월 25일 자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요새 말로 '득템'(좋은 것을 획득했다)했다.(그것이 득템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히겠다.)
이에 대해 식당, 술집, 호텔 등 사업체의 사교단체인 '뉴욕시접객업소연맹'(NYC Hospitality Alliance)은 "정말 분노와 짜증이 난다. 정부의 지원은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 식당에 가야 마땅하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식당협회'(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에 따르면, 3월 이후 4월 중순 현재까지 미국에서 약 800만 명의 식당 종사자 또는 노동력의 3분의 2가 해고당했다. 식당업계는 300억 달러(약 36조7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고, 4월 말까지 추가로 500억 달러(약 61조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기업 체인보다 영세 식당들의 타격이 컸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아 셧다운(정상영업중지)이 연장되더라도 버틸 여력이 있어 잘 넘기겠지만, 영세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약 3분의 2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세업자를 살리라고 제공한 구제금융을 덩치 큰 대기업이 툭 채가 버렸다. 대기업의 가로채기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소상공인 구제 금융에 숟갈 얹은 호텔 등 대기업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거의 300개에 이르는 상장기업들이 소상공인 구제금융 중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을 가져갔다. 예를 들면, 텍사스 주 달라스시 에 기반 한 호텔회사 애쉬포드 주식회사(Ashford Inc.)는 리츠 칼튼 등의 특급호텔을 소유한 호텔업계 제왕이다. 이런 회사가 7600만 달러(약 934억 원)의 PPP 구제 금융을 받았다. 애초에 신청은 간 크게도 총 1억2600만 달러(약 1544억 원)을 했다. 그 절반가량을 따낸 것이다.(☞ 관련 기사 :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 5월 2일 자 '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뉴욕타임스> 4월 22일 자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도대체 어떤 대기업이 이런 짓을 했느냐는 비난이 비등했지만, 소관 부처인 중소기업청(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SBA)은 양심 불량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길 꺼렸다.(뭐가 구리긴 구린 모양새다.) 그러나 매체는 그동안 과거에 공개됐던 대출 프로그램 정보를 종합해 몇몇 회사 이름을 밝혀냈다.(우리나라 대부분의 맹탕 기자들과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때 단서가 됐던 것은 바로 회사 대표(CEO)의 연봉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인공지능회사 '베리톤'(Veritone)은 2018년도 대표의 연봉이 1870만 달러(약 230억 원), 동생이 1390만 달러(약 170억 원)를 받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이번에 650만 달러(약 80억 원)의 PPP를 받았다.
뉴저지 주의 제약회사 '애퀴스티브 테라슈이틱스'(Aquestive Therapeutics)의 대표 연봉은 작년에 260만 달러(약 31억 원), 올해 이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480만 달러(약 59억 원)를 받았다. 복제약회사인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Wave Life Sciences)는 720만 달러(약 88억 원)의 PPP를 챙겼는데, 회사 대표의 2018년 연봉은 580만 달러(약 71억 원)였다. 회사 대표가 그렇게 엄청난 연봉을 챙기는 큰 회사이면서도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마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채간 것이다. 이들이 왜 부자가 되었는지 알만하다. '챙길 건 확실히 챙기자'가 이들의 모토!
14일 내에 14년 치 지원금(1차 PPP) 소진: 그 많던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은 다 어디로 갔나?
그렇게 영세자영업자 구제를 위한 정부 재난 지원금은 정작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소진되었다. 특히 4월 3일 발효된 PPP는 14일이 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재무부 산하 중소기업청(SBA)이 보통 소상공인을 위해 대출프로그램으로 잡은 액수가 1년에 300억 달러(약30조7000억 원)가 안 된다. 그런데 SBA의 14년 치 소상공인용 대출금액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대응 PPP가 14일이 되기도 전에 동나 버린 것이다. 대부분 상장사인 대기업의 호주머니 속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전국의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2차 PPP가 또 발주되었다. 1차 때 보다 대기업이 몸을 조금 사린 것 같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채간 돈이 훨씬 많다. 다음 <뉴욕타임스>의 도표를 보라.
100만 달러(약 12억 원) 이상의 거액대출이 초기 재정지원에 큰 부분 차지한다. 첫 번째 PPP의 경우, 소수 5% 기업에게 대출금 전체의 거의 절반이 갔다. 대기업이 채갔다. 15만 달러(약 1억8000만 원) 미만의 소액을 빌린 소상공인은 전체 대출자의 70%를 차지하지만 빌려 간 액수는 PPP의 15%에 불과하다. 2차 PPP는 조금 눈치가 보였는지 소액대출이 늘었다(1차 대출액 평균 20만6000 달러, 2차 평균 7만9000 달러). 15만 달러 미만의 소액대출은 PPP의 37%를 차지했다. 그러나 100만 달러 이상 대출을 챙긴 대기업은 대출자의 1%에 불과하지만 받은 액수는 PPP의 4분의 1이 넘는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월 7일 자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뉴욕타임스>분석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25%만이 정부 지원을 받았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4일 자 '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공간적으로 보면, 코로나로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3월, 4월 현재까지 뉴욕과 뉴저지 주이다. 그러나 시카고대학과 MIT대학의 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이런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PPP지원을 적게 받았고, 오히려 코로나의 직접적인 타격이 덜한 지역에서 지원을 더 많이 받는 불균형 현상이 벌어졌다. 한 마디로 코로나 대응 PPP가 코로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애먼 데로 가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련 인물들이 따간 PPP
그렇다면 어떤 대기업들이 소상공인을 살리라고 준 돈들을 날름 삼켜버린 것일까? 어떤 루트로? 다음의 예를 보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홀라도르 탄광'(Hallador Coal)이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PPP로 타간 돈은 1000만 달러(약 123억 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로비스트로 고용한 이는 다름 아닌 트럼프 행정부에서 '스캔들 메이커'로 악명이 높았던 스콧 프루이트(Scott Pruitt)이다. 그는 환경청장(EPA)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에너지업계 로비스트가 제공한 10만 달러(1억2000만 원)를 받고 모로코 여행을 하는 등의 온갖 지저분한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한 마디로 청렴과는 거리가 먼 쓰레기 탐관오리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도는 트럼프에 의해 청장직을 유지하다 결국엔 사임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간 곳이 바로 '홀라도르'다. 그는 지금 '홀라도르'를 위해 대정부 로비스트로 맹활약 중이다. 동시에 현재 그는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14건의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관련 기사 : <가디언>(The Guardian) 5월 1일 자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엔비시뉴스> 4월 25일 자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뉴욕타임스> 2018년 7월 5일 자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리노 리소시스'(Rhino Resources)란 탄광회사도 1000만 달러의 PPP를 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의 전임 사장이 누구였나 하면, 현재 트럼프의 '미국광산안전보건청'(mine saftey and health administration) 수장인 데이비드 자테잘로(David Zatezalo)다. 이게 끝이 아니다. '라마코 리소시스'(Ramaco Resources)라는 탄광회사는 무려 840만 달러(약 103억 원)을 따냈다. 어떻게? 현재 회장 랜디 애킨스(Randall Atkins)가 미국 '에너지국'(Dept. of Energy)의 석탄위원회위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더 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을 가진 전 현직 관료들이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통에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만든 정부 재원에 대기업들이 침을 발라 꿀꺽하고 자신들의 배를 채웠다. 물론 그들은 그런 연줄이 전혀 돈을 타내는데 작동하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비리를 저지르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사람 보기 드물다. 하긴 잘못을 시인할 인간이면, 아예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공산이 클 터.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사양산업인 화석연료 생산 대기업이 소상공인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따간 돈이 무려 5000만 달러(약 613억 원), 그중 트럼프 행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는 <가디언> 추산 2800만 달러(약 343억 원), <엔비시뉴스>추산 1830만 달러(약 224억 원)이다.(☞ 관련 기사 : <가디언> 5월 1일 자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워싱턴포스트> 5월 5일 자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된 인사로 인해 PPP를 받은 회사는 화석연료 회사 이외에도 많다. '크로포드 유나이티드'(Crawford United)와 '플로테크 인더스트리'(Flotek Industries)가 그 예로 각각 370만 달러(약 45억 원), 460만 달러(약 56억 원)를 받았고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작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해외대사 등의 요직과 특혜를 받은 회사의 이사 등의 중역을 돌아가며 맡고 있다. 소위 회전문 인사의 당사자들이 정부 돈을 타내는 데 거간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과 단골고객의 상부상조
앞에서 언급했듯 소상공인의 몫을 채가는 이런 비열한 짓의 선두주자는 단연코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이 닿는 대기업이다. 그다음은 어떤 방식이 동원되었을까? 소상공인 옹호 시민단체인 '중심가연맹'(the Main Street Alliance) 대표 아만다 볼란틴(Amanda Ballantyne)은 "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온 기업"이 PPP를 따갔다고 말한다. 은행과 짬짜미한 기업들이 타갔다는 뜻이다.
대형은행들은 PPP 신청을 받을 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대출 신청을 받았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전 회에서 필자가 말했던, 선착순 규칙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두 개의 줄을 만들었다. 하나는 진짜 소상공인을 위한 줄, 다음은 속성 줄인 기존의 단골 대기업을 위한 줄. 예를 들면 '제이피 모건'(JP Morgan)이 그렇게 두 개의 줄을 세웠다. 그런데 대기업은 솔직히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니까. 아니면 먼저 은행 측에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대출 조건이 있는 상품이 나왔으니 신청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먼저 타진했을 수 있다. 이것저것 다 논외로 치더라도 영세 자영업자들은 대출받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작업에 서툴다. 그러나 대형회사들은 능숙하며 완벽하게 서류를 꾸며낼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이미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
또 대출 대행 은행은 자기들과 관련 있는 인사가 있는 기업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을 해 주었다. 스마트폰 보호 장구를 만드는 기업인 '재그주식회사'(Zagg Inc.)는 무려 940만 달러(약 115억 원)의 지원을 키뱅크(KeyBank)를 통해 받았다. 그런데 현재 회사 대표가 키뱅크의 과거 고위 임원이었다. 웃긴다. 서로서로 챙겨주기 그런 건가? 이 때문에 볼란틴은 정책입안자들이 소상공인지원프로그램을 연줄과 은행 단골고객이 아닌 실질적인 소상공인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도록 규정을 정비해야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구제금융 분배를 대신한 대행사인 은행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수수료다. 그들이 고작 한 일이라곤 신청 받아 정부 돈을 자신들 입맛대로 나눠준 것뿐인데 엄청난 수수료까지 챙겼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에 따르면 대출 대행 은행이 수수료로 거둔 금액은 무려 100억 달러(약 12조 원)가 넘는다.(☞ 관련 기사 : <엔피알>(National Public Radio, NPR) 5월 4일 자 '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그들이 대기업에게 우선적으로 거액의 돈을 선뜻 대출해 준 데에는 또 다른 야비한 이유가 있다. 대출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가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대출 서류 작성 등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력이 다수에게 소액대출을 해줄 때 보다 덜 들어가는 것은 덤이다. 결국 종합하면, 소상공인에게 가야 할 구제 금융을 이들 은행들도 챙겼다는 뜻이다. 단골고객인 대기업과 짝짜꿍하면서. 이런 걸 보고 우린 말한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고. 그러면 일이라도 제대로 할 것이지, 이게 뭐람. 하긴 아무런 정부의 제제가 없는 곳에서 이들처럼 안 하는 것이 바보 취급 받을 테니 저들의 행보는 저들로서는 무척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을 감싸고도는 판에 누구 탓을 하랴.(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말하겠다.)
대형회사의 PPP가 '득템'인 이유
그러면 이쯤에서 다음의 질문이 나와야 한다. 상장기업인 대기업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소상공인 대출에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이 굳이 죽어라 PPP 돈을 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위한 PPP를 받을 수 있었는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기업이 노린 것은 바로 탕감이다. 탕감을 노리고 PPP를 받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PPP는 다른 대출과 달리 탕감 가능성이 있는 대출이다. 대기업은 탕감받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토록 PPP를 타내려고 애쓴 것이다. 탕감받는 조건은 6월 30일까지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다. 이 조건은 소상공인보다 덩치가 큰 대기업이 지키는 것이 더 쉽다. 왜냐하면 덩치가 크면 그만큼 그 시한까지 고용 유지가 쉬우니까.
이에 비해 소상공인들은 규모가 워낙 작고 영세하다 보니 그게 어렵다. 미국에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소상공인들은 이미 직원들을 많이 내보냈다. 일단은 실업보험을 타게 하고 사태가 나아지면 다시 고용할 요양으로 나름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일단은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를 장기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이 경제 재개를 다 허용한 것도 아니다. 즉 열고 싶어도 못 열 수 있다. 또 열었다 한들 파리만 날리고 있고, 십중팔구 앞으로도 그렇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사업이 팬데믹 이전처럼은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말은 곧 고용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소상공인에겐 대출금 탕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과 같고, 그것이 현실화되면 대출은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된다는 의미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월 6일 자 '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게다가 문제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소상공인이 PPP를 받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수십 번 신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노(NO)' 밖에 없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4월 24일 자 '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설사 PPP를 받는다 한들 탕감은커녕 빚더미에 앉을 공산이 큰 데다, 또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서 받아 놓고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손도 못 댄 소상공인들이 많다. 반드시 급여로만 대출금의 75%를 써야 한다는 단서 조항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월 2일 자 '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이미 직원들을 내보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이런 걸 두고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대형회사는 6월 말까지의 고용은 '식은 죽 먹기니 일단 타고 보자' 하고 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6월 말의 시한만 지나면 탕감받고 직원들을 가차 없이 자를 것이 뻔하다. 누구에겐 PPP가 생명줄이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먹고 입 싹 씻을 수 있는 그저 눈먼 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득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어쨌든 대기업이 PPP를 거의 다 채가자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이에 재무부 장관 므누신이 200만 달러(약 24억5000만 원)이상 대출자(대기업만 가능)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완전 뒷북이다. 이에 몇몇 회사들이 받은 돈을 토해내겠다고 발표했다. 호텔 체인점 '에쉬포드', '쉐이크 쉑' 햄버거,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 등이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이다.(☞ 관련 기사 : <뉴욕타임스> 5월 2일 자 '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짜고 치는 고스톱: 탕감받기 위해 로비해 법령 바꾼 대기업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할 차례다. 어떻게 5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대기업이 500명 미만의 소상공인 구제 금융을 받았는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재무부장관 므누신이 1차 PPP가 소진되고 나서 대기업을 향해 뒷북을 친 것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면 저 질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답을 확보할 수 있다.
왜 재무부와 SBA는 초장부터 PPP 시행 계획을 세밀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번 경우(코로나19)가 전례가 없는 것이라 경황이 없어서?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용인 500명을 기준으로 벌어진 PPP 자격 요건을 보면 처음부터 너무나 꼼꼼히 대기업을 위해 정책과 법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다. PPP 법안은 5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대기업이라도 회사 전체로 보지 않고 회사에 속한 물리적 장소 1개당 직원이 500명 이하면 PPP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수백(십) 개의 체인점과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한 식당체인과 호텔체인이라고 하더라도 체인점 단 한 곳의 직원이 500명만 넘지 않는다면 전체 회사에 소상공인이 탈 수 있는 자격요건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완전 꼼수다. 물론 이런 꼼수도 이들 업계의 집요한 대정부 및 대의회 로비를 통해 이루어진 혁혁한 성과다.
이렇게 정치권은 철저히 대기업 편이다. 대기업에게 뭔가를 주지 못해 안달한다. 물론 그래야 자신들이 주워 먹을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그러니 실로 일로매진할 수밖에.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위해 일해 봤자 그들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다. 도의적 책임과 사명? 바랄 걸 바라자. 그들의 안중엔 그런 것은 없다. 소상공인과 거기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 생각일랑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니 저런 짓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기준 선 500명과 관련한 특혜가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은 다음 회에서 알아보기로 하자.
다윗과 나단
이렇게 소상공인을 위한 PPP는 구멍이 숭숭 난 채 내가 말하는 제국들(탐욕과 부정 및 반칙에 찌든 극소수 부자들, 엘리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작 생명줄이 필요한 이들에겐 지푸라기 하나 던져주지 않고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기름을 더 넣어준 격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제국 중 어떤 것들은 슬그머니 PPP를 돌려주기로 했단다. 그러면 다인가? 생각해 보라. 그것이 도둑질하고 들키니까 제자리에 갖다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환하면 범죄 아닌가? 자격도 없는 것들이 정경유착과 로비로 규정을 수정해 자격 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또한 갖은 연줄 동원해 없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가로챘다. 그건 명백한 범죄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국들이 그렇게 PPP를 가로챈 사이 생명줄 놓친 자영업자들은 줄도산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일자리는 그들에겐 유일하게 남은 호구지책이었다. 번듯한 직장도 아니고 그저 허드레 일자리였다. 그것마저 낚아채 갔으면서, 그래서 남의 가정을 파괴했으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돈을 반환하기로 했으니 끝이란 말인가? 하긴 누가 뭐래도 PPP를 꿍치고 앉아 뱃속을 채울 요량인 대기업도 있긴 하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니 뭐 잘못 한 게 있느냐고 적반하장으로 안 나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인지. 남의 나라 일이지만 참 답답하기만 하다.
이 대목에서 구약성서의 나오는 다윗 왕과 나단 선지자의 삽화가 떠오른다. 나의 지도교수 피터 버거(Peter Berger)가 가끔 언급하던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은 자신을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우는 우리아의 아내에 꽂혀서 간통을 저지른다. 그것이 발각 날까 봐 충신 우리아를 일부러 최전선에 보내 죽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왕의 이 비열한 범죄는 유야무야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선지자 나단이 다윗 앞에 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길 꺼낸다. 여기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자는 가진 것이라곤 오직 새끼 양 한 마리뿐이다.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고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잡아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새끼 양을 빼앗아 그걸 잡아 대접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그 자를 잡아 오라고 사형에 처하겠다면서. 그 때 나단이 다윗을 보며 말했다. "왕이여, 그게 바로 당신이다." 그 순간 다윗은 고꾸라져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이런 다윗 같은 제국을 기대하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꿈일 터….
참고 자료
-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Washington Post, May 5, 2020.
-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New York Times, July 5, 2018.
-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 “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New York Times, May 6, 2020.
- “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Washington Post, May 2, 2020.
- “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NPR, May 4, 2020.
-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 João Granja ,Christos Makridis, Constantine Yannelis, and Eric Zwick, “DID THE PAYCHECK PROTECTION PROGRAM HIT THE TARGET?,” NBER WORKING PAPER SERIES, Working Paper 27095, May 2020.
- “‘The Big Guys Get Bailed Out’: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New York Times, April 20, 2020.
- “The U.S. Needs Way More Than a Bailout to Recover From Covid-19,” Bloomberg Businessweek, April 30, 2020.
- “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Fortune, April 30, 2020.
-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 “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New York Times, May 2, 2020.
- “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New York Times, May 2, 2020.
- “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Fortune, April 21, 2020.
- “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 “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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