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을 겪어온 제11차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의 구체적인 이견이 드러났다. 한국은 2019년 한국의 분담금 1조 389억 원에서 13% 인상안을 제시한 반면에, 미국은 전년도보다 50% 인상된 13억 달러(약 1조 5900억 원)를 "최종 제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이러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이는 당초 미국이 제시했던 수준인 50억 달러와 비교했을 때 "꽤 합리적"이라고도 주장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내렸는데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냐"며, 50억 달러에서 37억 달러를 깎아주었으니 받으라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도 다 쓰지 못했고 그 결과 불용액과 미집행액이 2조 원 안팎에 달하고 있다. 평택 소재 캠프험프리 확장 사업도 완료된 상황이다. 당초 미국은 이 사업비의 50%를 부담키로 했지만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해 자국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방위비 분담금은 '인상'할 것이 아니라 '삭감'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미국은 50억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불러놓고 13억 달러로 줄여줬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내라는 식이다.
황당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합뉴스>는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5년 단위의 다년 협정을 맺을 경우 5년째 되는 해에 지불하게 될 최종 금액을 산정해 13억 달러를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이 5년째 되는 해에 해당 금액을 지불하는 대신에 그 금액을 이번에 미리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한미 양국이 5년 단위 특별조치협정(SMA)을 체결할 경우 미국은 매년 10% 안팎의 인상을 기대하면서 2024년 방위비 분담금이 13억 달러에 달할 테니 이를 올해에 가불해달라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렇게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재선 도전을 앞두고 방위비 분담금을 최대한 앞당겨서 많이 받아내 선거용 밑천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올해 인상분은 13%가 합리적이라며 추가적인 인상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막가파식 요구에 따른 곤혹스러움은 이해할 수 있지만, 13% 인상 자체도 과도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매년 인상을 전제로 5년 단위 SMA를 체결할 때 발생할 수 있다.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로 구성된 현행 방위비 분담금은 9000억 원 정도로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이 완료되고 한미연합훈련도 하향 조정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방위비 분담금을 계속 올려줄 경우 남는 돈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전례와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종합해볼 때, 미국은 남는 돈을 우선적으로 전략 자산 전개 및 배치에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전략폭격기·핵추진잠수함·핵추진항공모함과 같은 전략 자산의 한반도 안팎 전개,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 업그레이드, 중거리 미사일 배치 시설, F-16을 F-35로 대체하는데 필요한 시설 변경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또한 주일미군을 비롯한 한반도 밖의 미군 활동 지원용으로 전용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이렇게 되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따른 우리의 부담은 돈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안보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및 배치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의 반발뿐만 아니라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 한 복판에 휘말릴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방위비 분담금을 깎을수록 이러한 위험은 줄일 수 있다. 미국이 자기 돈을 들여서 한국에 전략 무기들을 전개·배치하려는 것을 가급적 피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방위비 분담금을 깎는 것은 혈세도 아끼면서 우리의 전략적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대미 협상 의제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전략 자산 전개도 최소화하고 주한미군의 규모도 줄여 미국의 경제적 부담도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해야 제안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2020년도 주한미군 주둔비는 44억 6420만 달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운영유지비가 약 50%를 차지하고 여기에는 전략 자산의 전개 비용도 포함된다. 주목할 점은 2014년 2억 2610만 달러였던 운영유지비가 2018년부터 22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방위비 분담금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려고 셈법을 달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관련 기사 :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 주범이 북한이라고?)
이러한 미국의 셈법에 따르면 전략 자산 전개 및 배치와 주한미군 규모를 축소하면 미국측 부담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된다. 한국이 미국에 주는 방위비 분담금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에 한국이 휘말릴 위험도 줄이고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촉구할 수 있는 하나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이미 한국의 독자적인 군사력이 세계 6위에 올라선 만큼, 이러한 형태의 한미동맹 조정도 검토할 때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안보의 경제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미동맹의 하향 조정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도 부합한다. 미국의 전략 자산 미전개와 주한미군 감축을 '안보 공백'이나 '반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성에서 탈피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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