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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현장은 시군구 지역이다

[진보-녹색 정당운동은 왜 실패했나] ③

한국 정치의 현장은 시군구 지역이다

한국의 정치는 대의정 정당정치다. 오늘의 한국 정치는 1948년 대한민국 ‘재건’에서부터 시작되고 1987년 6월항쟁의 승리와 함께 구조화된 그 경로의존성의 정치 현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정치 단위는, 그리고 주권자의 생활 세계 시공간은 시군구 선거구다.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의 정부 예산이 실제 집행되는 단위이기도 하다. 주권자 주민이 부딪치는 정부와 국가는 바로 이들 시군구다. 2018년 기준 전국의 시군구 선거구는 226개이다. 2020년 총선 선거구는 253개다.

시군구에는 국가 행정의 맨 밑바닥인 읍면동이 있다. 읍면동은 지금 정확히 3,400개가 있다. 읍면동의 하부에는 행정의 최말단이자 행정과 주민의 최전선 접촉 경계면인 리동(2018년 12월 31일 현재 98,013개)과 반(502,326개)이 있다.(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및 인구현황, 2019. 8. 8.)

농업사회의 지역공동체 단위는 두레가 존재했던 리동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인 오늘날 해체된 지역공동체 재생의 단위는 교통 여건을 고려하면 읍면동 단위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의 현장은 바로 이같은 읍면동 지역공동체 정치 복원을 기반으로 한 시군구다.

풀뿌리 지역 정당정치의 현실

시군구에는 수백개의 단체가 있다. 직능단체에서부터 시민사회단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이른바 관변단체 이외에 보수 시민사회단체도 많아져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읍면동에는 관변단체로 통칭되는 약 20~50여개의 단체들이 있다. 활성화된 단체도 있고 그렇지 않고 이름뿐인 단체도 있다. 읍면동 사무소의 주요 회의에 참석하는 단체 대표들 수는 편차가 좀 있어서 적게는 30여명 많게는 100여명에 이르기도 한다. 이들 단체 임원 50~150여명이 이른바 지역 유지들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예산의 1차 수혜자는 대부분 이들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서는 조금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바로 이들이 여전히 한국 보수의 뿌리깊은 근거지이기도 하다.

대의제 국가에서 정당은 오직 선거 조직이다. 가뭄 때는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비가 오면 갑자기 새파랗게 살아나는 바위손처럼 선거가 없는 평소에는 당원의 정치활동이란 게 없다. 그러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신기하게도 당원들을 동원하는 온갖 모임으로 되살아난다.

민주당 권리당원은 4.15총선 직전인 2020년 3월 초 전당원 투표 당시 789,868명이었다. 미래통합당은 새누리당이었던 2018년 기준 책임당원이 430,736명이었다. 정의당은 2019년 10월 1일 기준 52,000명, 녹색당은 2020년 1월 14일 기준 약 1.1만명이었으나 탈당이 이어져 지금은 7천명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당원 수는 선거 전에 급증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다시 줄어든다. 총선이나 지선의 당내 경선 후보들이 최대한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권리당원이나 책임당원으로 입당시키기 때문이다. 지역 당원들의 정치활동이란 대부분 선거운동 시기에만 이루어진다. 선거가 끝나면 당원의 정치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당원 교육도 거의 없다.

이것이 한국의 풀뿌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권자 주민들의 정당 정치활동 실상이다.

지역주의는 허구다

4.15총선에서 경상도는 미래통합당, 전라도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 결과를 놓고 지역주의의 부활 운운하는 평가가 있다. 이는 허구의 지역주의를 계속 만들어 내 지역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역 정상배들의 조작된 가상현실이다.

그러면 수도권에서의 민주당 압승은 무슨 지역주의이고 부동산 밸트라고 불리는 강남의 야당 압승은 또 무슨 지역주의란 말인가.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도 경상도 지역에서의 민주당 지지도는 대구의 2개 구(수성구 ‒2.29%, 달서구 ‒1.45%)를 제외하고 경북, 경남, 부산, 울산 등 모든 지역에서 상승했다.

지역주의란 허구다. 애초에 한국 정치에서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역주의란 없었다.

해방 후 대구는 10월 인민항쟁의 도시였을만큼 반정부의 야당 도시였다. 박정희는 5.16쿠데타 이후 1963년 10월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라도에서의 몰표 지지로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전라도에서의 몰표는 박정희가 과거 공산당원이었다는 윤보선의 폭로 때문이었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지만 전향한 개혁주의자였던 진보당의 조봉암처럼 전향한 박정희의 개혁과 불평등 타파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더 컸던 것이다.

애초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일부 혁신계는 박정희를 지지하기도 했다. 당시 4.19혁명으로 집권한 여당이나 야당이나 친일파 지주 기득권 세력이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북한도 대구 출신의 공산주의자였던 황태성을 밀사로 보내기까지 했었다.

문제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불평등을 타파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과감하게 관피아 적폐를 척결할 수 있는 정치력의 부재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의 비상사태로 탄생한 비상재난 국가를 개발과 성장의 사회경제가 아니라 순환과 공생의 새로운 사회경제로 대전환을 기획하는 정치 전략의 부재다.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지역주의도 님비도 아니다.

인간관계는 출가하지 않는 한 현실에서 쉽게 끊을 수 없다. 그때그때 친소와 호오의 기복은 있을지 몰라도 그 관계는 죽을 때까지 간다. 정치 운동, 정당 운동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과 한두 다리 건너 연결되는 정당과 정치인과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대구경북 지역의 미래통합당 싹쓸이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해서 나타난 결과겠지만 한 측면에서는 과거의 유산, 특히 주민들의 정당과의 관계의 유산이라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전폭 지원이라기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관계의 표현, 박정희 이후부터 박근혜까지 이어오던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의 정당과의 관계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각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 현 정부의 개혁 실종에 대한 불만 등등이 겹쳐져 통합당의 싹쓸이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명령’의 승리

정당에서 풀뿌리 지역 주권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한국의 사례가 있다. 바로 2010년 5월, 문성근 등의 주도로 결성된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다.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 직후였다. 백만명이 모여 당시 5개로 분열되어 있던 야권을 단일정당으로 통합해 정권을 탈환하자는 기치였다.

2010년 11월 우금티에서 2만 회원 돌파 민란콘서트까지 열었던 국민의 명령은 1년 만에 전국에서 10만 회원을 모았다. 2017년 공식 해산할 때가지 전국 230여 개 시군구 지역별로 약 12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명령은 민주당의 당원 구성을 DJ-전라도 중심에서 수도권 중심으로, 경상도에서도 뿌리를 내린 전국정당으로 완전히 체질을 탈바꿈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민주당은 진보 인사 영입과 진보 정책 의제화를 계속해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보수-진보 양당 진영 구도를 만든 진보정당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민주당 권리당원 80만명과 대선, 지선, 총선의 연이은 승리다.

실패 원인 하나. 풀뿌리 지역정치가 없었다

한국의 진보-녹색 정당 정치에는 시군구 지역정치 활동이 없었다. 주권자를 조직하는 전국 민란 기획같은 것도 없었다. 낡은 기득권 지역정치 구조를 깨고자 하는 의지나 정치전략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역에는 복지, 노동, 환경, 여성, 교육, 보건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현안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시민사회 운동도 있다. 지역의 모든 현안은 정치 문제다. 시민사회운동도 사실 정치활동이다. 문제는 주민들의 요구를 조직화 하는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한국의 정당 정치에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시군구의원이나 국회의원, 단체장 등이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은 엘리트 정치인의 지지도를 높여주고 다음 선거를 기약하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이런 해결사로서의 지역정치는 주권자를 수동의 정치 수혜자로 가둘 뿐이다. 주권자의 정치가 아니라 대의제 엘리트들의 여의도 극장정치를 강화할 뿐이다.

주권자 정치의 핵심은 주권자가 발의하고 주권자가 주권자를 설득하고 조직해서 주권자 연대와 연합의 힘으로 그 의제를 시군구 자치단체, 나아가 중앙정부에게 요구하고 해결해 나가는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주권자 정치다.

그나마 정의당에는 미흡하지만 지역 정치활동이 일부 존재하긴 했다. 그러나 녹색당은 집권을 기획하는 정당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런 지역 정치활동도 없는, 시민사회단체보다 못한 써클 수준의 정당이었다.

실패원인 둘. 중앙당 엘리트 중심의 정당이었다

선거 정당에는 유명 엘리트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의제에 순치돼 소수 유명 엘리트 여의도 정치인들의 개인기에 거의 의존하는 정당을 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정당 대부분이 중앙당 중심의 정당 구조를 갖고 있다. 선거 때만 작동하는 하향식 정당을 민주주의 정당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일이다.

풀뿌리 지역의 연대와 연합으로서 다단계 연방주의 원리에 따른 상향식 민주주의의 정당을 만드는 정치 활동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만 그런 비전과 정치철학이 없을 따름이다.

실패원인 셋. 기생 정당이었다

무엇보다도 민주대연합이라는 미명 아래 거대 양당 진영 구도의 종속 변수인 정치를 했다. 좋은 말로 공생의 민주진보 대연합이지 정확히 말하면 기생 전략이다.

중국 공산당의 국공합작 전략은 근거지를 확보한 상태에서 근거지를 확대하는 전략이었다. 코민테른의 연합전선론은 다른 정치세력과 정당을 프랙션 활동을 통해 우군 또는 아군화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지역이라는 뿌리 없이 중앙당 중심의 소수 여의도 엘리트 위주로 이루어지는 민주대연합이란 도저히 집권 불가능한 정치전략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진보와 녹색 정당의 집권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선거 국면에 들어서고 뒤늦게서야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대립하는 전략을 취하긴 했지만, 이미 때는 한참 늦은 뒤였다. 녹색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세계 녹색당의 이미지를 차용한 그런 기생성의 장점도 살리지 못한 채 허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주권자를 조직화 하고 연대 연합하는 주권자 연합정치 전략의 부재, 이것이 진보-녹색 정당의 실패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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