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한반도 정세를 흔들던 김정은 사망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해프닝이 진정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닌 것이 문제다. 죽었다는 김정은 위원장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지만, '북한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한반도는 늘 불안해' 이런 인식은 세계인의 머릿속에 남게 됐다.
북한과 관련한 대형 오보는 늘 부정적인 것이었고, 늘 이런 잔상을 남겼다. 그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북한은 지구상의 '요상한 나라'(idiosyncratic country)가 되어왔다. 정치체제도 기이하고, 내부 정보도 알려지지 않고, 그러면서 세계에 불안정성을 더해주는 나라가 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한 것이 없다.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보수언론과 망상가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 이번 사망설은 <데일리NK>의 4월 20일 자 기사에서 시작되었다. 북한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4월 12일 평안북도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향산특각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기사였다.
4월 21일에는 <CNN>이 '김정은 건강 이상설' 기사를 내보냈다. <데일리NK>의 기사와 미국 정부당국자의 '관련 정보를 살피고 있다'는 말을 인용한 보도였다. 그러자 국내언론, 특히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CNN>을 인용, 보도했다. 태영호, 지성호 등 탈북자 출신 정치인,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등이 사망설을 부추겼다. 김정은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사진 한 장으로 그야말로 설에 불과해진 얘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 관련 기사 걸러서 봐야
국내 보수매체에 난 기사를 외신이 인용하고, 외신에 난 기사를 다시 국내보수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는 양상으로 북한 관련 오보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이번 사안은 잘 보여준다. 이런 유통과정을 통해 뉴스가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기사를 보게 되니 보수언론은 잇속을 챙긴다. 게다가 싫어하는 북한을 더 요상한 존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니 이런 작업을 마다할 리 없다.
이번 김정일 사망설의 유통과정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북한 관련 기사를 좀 걸러서 보아야 하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런 기사는 왜 계속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내부와 관련된 기사가 대부분 그렇듯 4월 20일 <데일리NK>의 기사도 북한의 내부소식통을 인용한 것이었다. 특별히 '또 다른 소식통' 등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인용한 소식통은 한 명이다. 취재원 한 명의 말만을 듣고 이처럼 큰 기사를 낸다는 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읽는 사람도 이를 좀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북한의 소식통, 그것도 한 명이면 선뜻 믿기는 어려운 얘기다.
게다가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받드는 김정은의 시술에 관한 정보는 최측근과 의료진 외에는 알기 어려운 정보다. 그만한 인물이 한국의 인터넷 언론사와 소통을 하면서 정보를 준다는 것은 더 믿기 힘든 얘기다.
출처도 출처지만 기사 내용도 조금 따져 보면 허술한 내용이 많은 것이 북한 관련 기사들이다. 이번 것도 향산진료소에서 시술을 받았다는 것인데, 진료소는 북한의 '리' 단위에 있는 보건소 같은 곳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그런 곳에서 시술을 받았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CNN>기사도 내용을 보면, <데일리NK>의 기사 이상의 얘기는 없고, 다만 미국 당국자가 이 정보를 살피고 있다는 정도이다. 그야말로 내용 없이 제목만 세게 뽑은 경우이다. 물론 '김정은 위독설', '김정은 사망설' 이런 제목 자체가 주는 임펙트가 엄청나서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출처 애매하고, 내용 없는 기사는 가려서 보면서 그런 기사들의 서식처를 없애려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북한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 많아
왜 이런 기사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지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여전히 살아 있는 언론의 선정주의이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나중에 따져볼 일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가질만한 것을 기사로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이런 현상을 반복하게 한다.
둘째는 안보상업주의다.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북한은 악마화해서 보수여론을 추부기고 보수를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것이다.
셋째는 북한을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북한의 '북'자도 듣기 싫고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 안 보이고, 보고 싶은 대로 보인다. 거대한 정보기관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부가 '김정은이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다'하는 데도 그런 사람들은 '위중하다' '사망했다' 계속 주장한다.
넷째, '한 건'주의 망상가들도 오보에 크게 기여한다. 모 아니면 도 식이다. 한쪽으로 질러서 맞으면 뜬다는 도박판 생리가 북한관련 정보 시장에 있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원인에서 나오는 것이 북한관련 대형 오보여서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앞으로도 여러 번 죽을 것이다. 암살도 당하고, 사고도 당하고.
시민·언론이 바꿔가야
이런 환경을 좀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깨어있는 의식을 갖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부실한 기사, 보고 싶은 대로 쓰는 언론, 한건주의에 매몰된 몽상가, 근거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자칭 전문가, 이런 부류들에게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행태를 질책하고 시장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명백한 허위 주장을 태영호,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며 국민을 현혹시킨 지성호, 이런 사람들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언론도 정보가치가 없는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다시 받아 적으려는 태도는 버려야 하겠다. 1994년 탈북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무기 5개를 만들어서 갖고 있다'고 주장했던 강명도가 여전히 언론에 나오는 것을 보면 언론이 중요한 것을 너무 빨리 잊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기대를 해본다. 우리사회의 이념지형도 많이 달라졌다. 이번 총선의 결과를 보면, '보수 70 진보 30'은 이제 과거 얘기가 된 것 같다. 언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엄밀한 시각, 균형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