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마포대교 북단 불교방송 지하의 '현래장(賢來莊)'은 마포 일대에서 손꼽히는 중화요릿집이다. 감자(요즘은 단호박)가 들어간 옛날식 수타짜장은 수십 년 이상 이 집의 명성을 드높인 메뉴였다. 300석 규모의 대형 음식점으로 크고 작은 룸이 많아 각종 모임에 최적화되어 있다. 여의도에서 다리만 건너면 되고, 마포 로터리 쪽으론 옛 야당 당사도 줄곧 있어서인지 이런저런 정치인들의 '조용한' 회합 장소로 즐겨 애용됐다.
노회찬은 1990년대 후반 어느 무렵부터 현래장의 주요 식객이 되었다. 음식에 예민한 조직운동가답게 그는 비밀스러운 만남의 장소에도 맛을 중시했다. 현래장의 수타짜장도 아마 그래서 선택되었을 것이다. 지인들에 따르면, 노회찬은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나 진로 선택을 할 때면 참모진이나 '자문단'과 현래장에 모여 숙의를 거듭했다고 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노회찬이 지역 선정을 포함해 선거 전략을 고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현래장은 노회찬의 정치역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의 하나였다.
2.
아홉번 째 '음식천국 노회찬'이 현래장을 찾은 것은 4월 9일. 총선을 6일 앞둔 저녁이었다. 각자의 일정을 조정하느라 잡은 날짜이지 특별히 선거를 의식한 택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이블에 둘러앉은 면면이 노회찬의 자문그룹의 일원이었고 시점도 총선을 6일 앞둔 때인지라 선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선거 결과를 알고 있지만, 4월 9일 시점에서는 대체로 더불어민주당의 낙승을 점치면서 정의당의 안타까운 처지를 동병상련하고 있었다.
이날 현래장에서 노회찬을 추억한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정치인 노회찬을 정치적으로 자문하고 보좌해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현래장에 자주 왔던 분들이라 식당 분위기나 음식에 모두 익숙했다.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박갑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박창규 보좌관(전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이종석(공인회계사,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위 기획협력팀장), 조현연 박사(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등 참석자들은 2004년 17대 국회부터 본격적으로 노회찬을 지원해왔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노원구 상계동에 '노회찬마들연구소'를 설립할 때도 이들은 함께 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그가 홀연히 떠난 뒤 재단 설립을 준비하는 실행위원으로 애쓴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 자리를 마련한 '음식천국 노회찬'의 코디네이터 박규님(노회찬재단 운영실장)도 이 전 과정을 함께 한 사람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노회찬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로 "노회찬이 비례대표로 처음 의정에 참여한 2004년,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를 비롯해 여러 차례의 선거 국면마다 모였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장소도 현래장으로 정해졌고.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늘 중대한 기로였고, 전환점이었다".
3.
현래장은 본래 불교방송 옆의 한 빌딩에 있었다. 1950년대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하고, 현재의 주인집이 1980년대 인수했다. 옥호는 본래 연래장(燕來莊)이었다고 한다. 제비가 날아드는 집이니, 강남 갔다가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제비 같은 단골손님, 흥부집에 박씨를 물고 온 제비같은 복덩이 손님을 연상하면 결코 나쁜 이름이 아니다. 그런데 이 연래장을 인수한 새 주인은 글자 한 자를 바꿔 현래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제비가 아니란 현자들이 오는 집이 되었다. 이 개명은 어쩌면 강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 국회의 존재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렇다면 여의도 선량들이 모두 현자는 아닐지라도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그럴듯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개명이 음식점의 기운을 틔운 것일까, 현래장은 날로 성업하기 시작했고, 10여 년 전 불교방송 지하로 옮겨 300석 규모의 대형 식당을 차린 뒤에도 여전히 성업 중이다. 장사 수완이 남달랐던 창업주가 8년 전에 사망하고 지금은 부인 윤승자 씨와 아들 주세웅 씨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예약 노트가 텅 비어 있는 게 안타깝다.
4.
현자들같은 노회찬과 그의 사람들이 현래장에 남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의 하나는 2016년 20대 총선과 관련된 것이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주로 홍대 앞 '토즈'에서 모임을 가졌고, 모임을 마친 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현래장은 나름 안성맞춤이었다. 노회찬의 당선을 다짐하면서 12월 말 송년회 겸 단합대회를 연 곳도 현래장이었다.
당시 노원병은 노회찬이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잃은 뒤 안철수가 주워서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바람을 타고 안철수가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면서 불출마설이 불거질 때였다. 창원 성산과 광주 광산 등에선 노회찬 추대설도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6년 1월 30일 정의당 전국위원회에서 여영국 경남도당위원장을 중심으로 노회찬 창원 추대론이 강력하게 제기됐고 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해 노회찬에게 제안, 노회찬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노원에서 창원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그의 창원 출마와 당선은 그 자신은 물론 정의당에게 큰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체감한 창원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민주노총 후보단일화 경선은 불과 몇백 표의 근소한 차이였고,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도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했다. 정작 본선이 쉬운 싸움이었을 정도로.
2015년 심상정 대표와 겨룬 당대표 경선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1차 표결에서 여유 있게 앞서있었기에 결선투표 결과를 낙관하고 있었는데 그만 결과가 뒤집어진 것이다. 심상정 대표의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바로 긴급모임이 소집되었다. 장소는 현래장.
뼈아픈 역전패였지만, 노회찬이란 캐릭터를 생각하면 결코 일어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5.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으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정의당의 앞날이 오히려 험난해진 상황은 노회찬의 부재를 더욱 아쉽게 했다.
6.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같았다. "정의당은 10석 이상은 어렵다. 희망사항은 8석이지만, 5~6석이 현실적인 예상이다." 그러면서 모두들 바라는 바의 공통점은 심상정 대표만큼은 반드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 거대 양당의 꼼수로 거의 재가 되어버린 희망이 그나마 불씨를 남겨두려면, 지역구 의원으로서 당대표의 존재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시간이 멈춘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빈 자리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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