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이 21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미래통합당이라는 정치 세력의 몰락을 넘어서, 과연 정치 재구성을 통한 정치 복원을 한국정치가 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통합당의 지금의 현실인식으로는 보수의 재구성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고, 일방에 치우친 정치 지형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는 대등한 정치 세력 간의 경쟁을 무위로 돌리고 일방의 승리를 결과하게 된다. 권력의 속성상 자정기능이 작동하더라도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건강할 수 없고 이의 결과는 정치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선거에 대패했지만 아직도 통합당에서 박근혜 탄핵에 반대한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사과의 메시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좌파' 프레임이 시대에 역행하는 왜곡된 것이라는 사회과학적 문제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비상대책위의 권한과 기한 등을 둘러 싼 권력다툼이 선거 후 통합당의 모습이다. 믿기지 않는 풍경이다.
지금의 보수의 외관과 내용으로는 진보진영을 대적할 수 없다. 진보가 유능하고 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시대와 불화하는 정치 세력은 생명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총선 후 통합당은 집권을 포기하고 알량한 특정 지역의 일당패권에 만족하려는 집단의 모습 그 자체다. 대구·경북에서의 견고한 지지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면 보수의 재편이라는 거대담론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재편성은 중대한 명제다. 21대 총선 결과에 대한 냉엄한 분석이 전제되지 않고는 합리적 중도보수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다. 반공주의와 냉전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어떠한 대책과 비상한 수단도 효능감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보수의 재편을 위해서 명심해야 할 것은 이명박 정부 때 미국 네오콘의 어설픈 모방의 산물인 뉴라이트 류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아류에 사로잡힌 구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뉴라이트라고 자칭하는 세력은 시대정신과 결합하지 못하고 과거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퇴행적 사고와 행태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한국보수의 재탄생은 공화주의적 덕성을 천착할 수 있는 정치적 감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박정희 산업화 시대의 음영을 거둬낼 수 있는 시대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애당초 이룰 수 없는 과제다. 한국보수가 처한 대위기는 구시대와 결별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에 기인하다. 대참패에 대해 이러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어떠한 처방도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미래통합당이 얻은 지역구 84석, 미래한국당이 얻은 33.8%의 득표는 아직은 보수가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으나 지역구 84석 중 60%에 가까운 의석이 영남에 치우쳐있음을 감안한다면 통합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근원적 모순을 성찰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통합당의 공천 잡음과 막말이 통합당의 참패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면 이는 잘못된 분석이다. 물론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평가가 긍정적인 것이 민주당 승리의 견인차가 됐다는 분석이 전혀 틀린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통합당의 참패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통합당의 공천 잡음과 막말, 코로나19에 대한 여권의 적절한 대응만으로는 보수의 사실상의 사망선고에 다름없는 선거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합리적 보수의 귀환은 해방 이후의 집권 과정과 이후 냉전 시대의 좌파 이데올로기에 기댄 퇴행적 사고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작업이다. 선거공학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으로 보수는 승리할 수 없다.
보수진영이 정치 교체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보이지 못한다면 젊은 층을 전면에 포진시키는 외관의 변경과 일상적 정치문법만으로는 환골탈태를 담보할 수 없다. 보수로 위장한 수구, 냉전 반공세력과의 결별을 감내하고 보수가 합리적 중도와 진보적 의제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보수는 보수다워질 수 있다. 시장자본주의만을 맹신하는 낡은 보수로는 새로운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이 당 해체를 통한 보수 재편이 절실한 이유이다.
주기적 선거에 만족해야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의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자유주의 세력으로서 보수의 역할을 다하기에 지금의 통합당은 한계에 봉착했다. '분열'이 아닌 '해체'를 통해서 보수의 얼개를 다시 짜지 않으면 보수의 지리멸렬은 가속화할 것이다. 어떠한 것도 시대정신과 민의를 이길 수 없다. 민주주의가 인민주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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