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중에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이라는 가사가 있다. 오늘은 ‘바람’얘기나 해 볼까 한다. 흔히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라고 한다. 글자는 같은데 뜻이 전혀 다른 말을 일컫는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어휘 게임을 하면서 동서남북의 순우리말이 무엇인지 맞추기를 하면 거의 맞추는 사람이 없다. 또한 벽(壁)의 순 우리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역시 아는 학생이 없다. 그런데 ‘내로남불’의 뜻을 아느냐고 물으면 틀리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 ‘바람피다’가 맞는지, ‘바람피우다’가 맞는지 물으면 또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말은 이렇게 동음이의어가 많다. 한자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말의 표현 방법이 다양함을 말해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일단 시작했으니 우리말 동서남북부터 시작해 보자.
동풍을 우리말로 ‘샛바람’이라고 한다. 동쪽에 뜨는 새벽별도 ‘샛별’이라고 한다. 향가의 한 구절에 ‘새벌 밝은 달 아래’라고 하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새벌(서라벌)’이 동쪽 벌판을 말한다. 이런 단어들을 통해 우리는 동(東)의 순우리말이 ‘새’라는 것을 유추할 있다. 이어서 서풍은 ‘하늬바람(갈바람)’, 남풍은 ‘마파람’, 북풍은 ‘된바람’이라고 한다. 그러니 ‘갈마바람’이라고 하면 ‘남서풍’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된하늬바람은 ‘서북풍’이다. 이는 주로 뱃사람들이 사용하던 용어지만 우리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러니 서쪽은 ‘하늬(갈)’, 남쪽은 ‘마(앞바람도 마파람이라고 한다. 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북쪽은 ‘되’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중국사람을 ‘떼놈’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되놈’이라고 해야 한다. 일사후퇴 때 중국에서 떼로 몰려왔다고 해서 떼놈이라고 한다는 민간어원설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서 ‘되놈’이라고 했는데 발음이 강해져서 ‘떼놈’이라고 이르게 된 것이다. 과거에 ‘놈’은 사람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다. 훈민정음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놈이 많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놈’은 보통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북풍은 순우리말로 ‘된바람’이고 북쪽에서 온 사람은 ‘되놈’이다.
이 바람(풍(風)을 막아주는 벽도 우리말로 ‘바람(ᄇᆞᄅᆞᆷ)’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벽의 우리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이상한 대답만 한다. 그러다가 ‘베람빡’이라고 하면 대충 눈치를 챈다. 경상도나 함경도에서는 ‘벨빡, 베루빡’이라고 하고, 연변의 조선족들은 ‘바람벽’이라고 한다. 이것은 ‘바람 壁’을 붙여서 발음한 것에 불과하다. “역전앞에서 만나자.”고 할 때 전(前)과 ‘앞’을 동시에 쓴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바람’이라고 하면 되는데 벽(壁)을 같이 발음한 것이고, 이것이 다시 변하여 ‘바람벽>베람박> 베루빡’과 같이 굳어져 마치 순우리말처럼 들리게 되었다. 그러니 벽의 순우리말은 ‘바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바람’은 사어(死語)가 되어가고 있다. 일부지방의 방언으로만 존재할 따름이다. 원래 여기서 ‘발암(바람)’이라고 할 때 ‘발’은 ‘흙’의 뜻이다. 과거에는 주로 벽을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벌’(벌판), 그리고 ‘밭(田)’과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다.
끝으로 요즘 유행하는 ‘바람’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 그 ‘바람’이다. 이 바람은 ‘피는 것’인가 ‘피우는 것’인가? 독자들도 잠깐 헷갈릴 것이다. “꽃이 피다”라는 문장과 “꽃을 피우다”라는 문장을 비교하면 쉽다. 이 문장들을 비교해서 “꽃을 피다”라고 하면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꽃이)피다’라는 단어는 목적어를 취하면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소란을 피우다”라는 문장을 보면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을 자동사와 타동사라고 한다.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동사가 타동사이다. 그러므로 로맨스든 불륜이든 간에 ‘바람 피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피우는 것’이다.(손진호, <지금 우리말글>)
세상의 모든 일은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세계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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