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이 넘는 환자가 입원해 있는데도 병원에선 따뜻한 물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환자 가족이 이를 포함해 병원 실태를 고발하는 글을 SNS에 올리자 병원 측은 퇴원을 종용하고 형사 고소와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몸이 아파 입원한 병원에서 환자 가족은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충남 논산 백제종합병원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은 사소한 ‘온수 시비’에 그치지 않는다. 사건의 밑바닥엔 병원 측의 의료과실이 있다.
김점례(당시 65세) 씨는 호르몬 이상 문제로 2016년 11월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에 입원했다. 김 씨는 입원 열흘 만에 병원에서 낙상사고를 당했다. 이후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체온이 오르는 등 이상 증세를 겪었지만, 병원 측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김 씨 가족이 병원 측에 검사 등을 요구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픈 김 씨는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방치되다시피 한 상태로 약 2개월을 보냈다.
김 씨는 백제종합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때서야 이상 증세 원인이 밝혀졌다. 김 씨는 대퇴골 골절 상태였다. 치료 없이 오랜 기간 방치되면서 몸에는 농양과 함께 괴사가 진행됐다.
백제종합병원 측은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환자 보호자에게 밝혔다.
환자 김 씨의 아들 김인규는 2017년 2월, 이재효 병원장(백제종합병원 이사 겸직)을 찾아가 "논산시립노인병원의 부주의 때문에 어머니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따졌다. 그는 "낙상사고 이후 수차례 검사를 요청했음에도 무시로 일관한 병원 때문에 병세가 악화됐다"며 이재효 병원장에게 병원비 부담을 요구했다.
이재효 병원장은 이런 문제제기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진료비에 대해서는 걱정 말라"며 김점례 씨의 백제종합병원 치료비는 물론이고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발생한 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인규는 병원장의 약속을 믿었다. 이후 김점례 씨는 백제종합병원에서 좌측 고관절에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등 네 차례 수술을 받았다.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2017년 1월부터 1년 넘게 치료를 받았지만,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날로 나빠졌다.
병동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등 비위생적인 병원 환경도 김 씨와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키웠다. 특히 백제종합병원에선 따뜻한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환자와 가족들의 불편이 컸다.
실제로 2018년 1월 당시, 백제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온수를 하루 세 번만 이용할 수 있었다. 병원 측은 04시부터 07시까지,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 17시부터 19시까지만 온수를 틀었다.
한겨울, 환자들이 몸도 제대로 씻을 수 없는 환경. 참다못한 김인규가 병원 측에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김인규는 간호사실은 물론이고 원무과, 병원장에게까지 찾아가 온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김인규는 결국 논산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하는 동시에 개인 SNS 계정에 온수 문제 해결을 원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2018년 1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씻기 힘든 새벽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만 온수가 나와 환자들이 불편을 겪는다"며 "온수가 나온다는 시간에 샤워실에 가도 온수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적었다.
김인규가 논산보건소에 제기한 민원과 SNS에 올린 글이 그렇게 불쾌했을까. 이재효 병원장은 김점례 씨의 병원비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깼다.
병원 측은 2018년 1월 16일, 치매 증상까지 앓는 김점례 씨가 있는 병실로 "180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증명서를 보냈다.
김인규는 이재효 병원장을 찾아가 따졌다. 이 원장은 자신이 한 약속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당신이 SNS에 글을 올려서 백제종합병원에 손해 끼친 것을 따지면 치료비 몇 배를 더 받아도 부족하다"며 "내가 (병원비) 쪼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백제종합병원 측은 김인규 씨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및 모욕죄 혐의로 고소했다. 김 씨가 올린 페이스북 글과 그의 사연을 담은 기사 때문에 이재효 원장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김 씨와 지역신문 기자를 상대로 2018년 5월 민형사상 소송도 제기했다.
백제종합병원이 고소전을 준비하는 동안 병원은 김인규의 모친 김점례 씨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주치의와 수간호사를 동원해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면서 병원 측은 치료비 정산도 압박했다.
2018년 3월, 김점례 씨는 병원의 압박에 못 이겨 퇴원했다. 그의 가족은 빚을 내 병원비 2130만 원을 정산했다. 김점례 씨는 백제종합병원에서 퇴원해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갔지만, 2019년 11월 사망했다.
검찰은 김 씨와 지역신문 기자에게 증거불충분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병원 측은 민사소송을 계속 이어갔다. 지역신문 기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취하한 반면, 김인규에 대해서는 여전히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효 병원장은 지난 1월 <셜록>과의 대화에서 김점례 씨에 대한 의료과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김점례 씨의 대퇴골 골절은 (낙상사고가 발생한 2016년 11월이 아닌) 백제종합병원에서 진행한 수술 직전(2017년 1월께)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이 김점례 씨를 2개월간 방치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김 원장은 이어 "김점례 씨의 퇴원을 종용하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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