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태어난 조선산업의 메카 경남 거제.
정부의 조선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4.15총선을 대하는 노동자들의 표심이 요동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표심이 양분된 지역으로 분류되는 경남 거제의 총 유권자수는 19만7966명, 이 가운데 양대조선소 노동자가 6만 여명이다.
양대 조선소에 따르면 이 중 주소를 거제에 둔 노동자의 추정치는 4만 명. 3인 가족 기준 2인을 유권자로 어림짐작해도 8만 명이 이번 선거에서 투표한다. 4인 가족 3인 유권자로 계산하면 12만 명으로 늘어난다.
조선노동자의 표심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총선 후보의 명운이 갈린다.
노동자가 바라보는 조선산업은 위기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불공정 특혜매각 문제로 정부에 책임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이 거제라 대통령 당선 후 조선산업 회생에 기대를 걸며 지방선거에서도 집권여당에 일방적인 표를 보탰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정부의 동종사 매각 추진이었고 그것도 밀실추진에 뒤통수를 맞았다"며 여당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주인을 찾는 것은 원하는 바이지만 지금의 방식은 NO라며 거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주가뭄 이후 누적된 적자를 두차례 유상증자로 버텼지만 한계치에 다다랐다.
더 이상 증자가 어려운 가운데 수주선박 건조를 위한 지급보증 관련 은행권의 갑질에 대한 대책 등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선거때가 되자 ‘힘 있는 여당만이 조선산업을 살릴 수 있다’는 구애가 달갑지 않다. 지난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조선노동자의 일방적인 지원을 받았단 민주당으로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조선산업의 불황은 소비감소로 이어졌고 이는 지역경기 위축을 심화시켜 고용불안과 실업자 양산으로 귀결되고 있다. 행정은 장기적 안목의 극복대책은 엄두를 못 내고 오로지 단기처방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수준이다.
총체적 난국으로 겨우 숨만 쉬는 거제시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어려움, 거제경제를 양분하는 대우조선해양의 동종사 매각은 결국 정부가 조선산업을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TV토론회 여야 후보 격돌
더불어민주당 문상모 후보와 미래통합당 서일준 후보가 지난 8일 KBS TV토론에서 격돌하면서 대우조선 매각 문제가 이슈가 됐다.
문상모 후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이어받은 미래통합당 서일준 후보라고 지칭하고 수조원의 분식사기와 낙하산 인사로 대우조선을 망가뜨린 책임을 지고 거제시민에게 사과할 마음은 없나라고 포문을 열었다.
서 후보는 곧바로 반격했다. (특혜)매각을 반대하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시장면담이나 청와대, 세종시 집회에 문 후보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대우조선 매각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부터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서 후보는 “대우조선 매각과 관련한 거제범시민대책위의 질의에 문 후보는 찬반이 아닌 기타 의견을 제시하며 ‘구호로는 전면 백지화가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현재의 매각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매각 이후 고용안정 등을 이루자는 뜻으로 들린다”고 정부의 손을 들어야 하는 여당 후보의 한계를 지적했다.
문상모 후보는 “정치인의 자질은 거제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지역의 이익을 위해 매각에 반대한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에 정부와의 창구가 되겠다는 말을 누누이 해왔다”고 강조했다.
논란은 서 후보의 거듭된 질문에서 이어졌다.
서 후보가 대우조선 매각이라고 말하자 문 후보는 대우조선 매각이라는 용어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서 후보는 대우조선 특혜매각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예스인지 노인지 대답하라고 채근했고 문 후보는 대한민국에 예스 노가 있느냐며 화제를 넘겼다. 이날 토론회에서 문 후보와 서 후보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문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대화가 가능한 후보다. 거제에 더 많은 예산을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했고 서 후보는 “3년 전 거제출신 대통령이 두 번째 탄생했다. 거제시민들이 많이 기대했다. 대우조선 살리겠다는 약속은 어디 갔냐, 특혜매각으로 돌아왔다”고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노동자 주 52시간 근무제 역작용
찬찬히 살펴보면 거제시를 위기로 몰아넣은 원인은 정부의 치밀하지 못한 정책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부실한 축대 위에 새 집을 지으려고 억지를 부렸다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대우조선해양이라는 두 거대 조선소가 거제경제의 축이다. 거제시 인구의 전부가 직간접으로 조선산업과 연관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제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선박 수주가뭄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이로 인한 인구유출 등 일부 타격이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거제경제가 버틸 여력은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거제를 떠났다. 2020년 4월 조선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노동자들이 다시 거제로 유턴을 시작했지만 사정은 더 열악하다.
최저시급 상승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조선노동자들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역작용을 불러왔다.
기능공의 시급은 상승하지 않고 초급자들의 시급만 오른 가운데 연장근무마저 제약을 받으면서 전체적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
무너지는 상권 흔들리는 거제
조선산업 위기와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불러온 노동자들의 불만은 노동자를 넘어 지역 소상공인 등 경기악화에 직접 영향을 받는 거제시민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
거제시민 대부분 돈벌이가 어려워지면서 외식비, 사교육비 등을 줄이고 외출 자체를 꺼려하는 상태로 몰아갔다. 미분양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코로나 19사태로 착한점주들의 점포세 깎아주기 운동이 화제가 됐다. 거제에서는 이런 운동도 사치다.
소상공인은 문을 닫고 점포는 코로나 사태로 고통분담이 아니라 깍아도 입주할 사람이 없다. 덩달아 농수산업도 위축됐다. 소비가 없어 생산이 의미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 경기가 좋을 때 저축했던 자금도 현 정부가 들어선 지난 2년 동안 다 까먹은 경우도 허다하다.
외포항에 봄멸치잡이가 시작되고 멍게 수확이 한창이지만 가격폭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역 여론이 이번 선거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당 후보 신천지 행사 참석 두고 논란
신천지 논란도 TV토론에서 생겼다.
서 후보는 “2월 18일 대구에서 슈퍼전파자가 나올 때 거제에서 신천지 관련 행사에 참석했느냐”고 문 후보에게 질문했다.
문 후보는 “신천지 행사에 전혀 참석한 적 없다”했다. 서 후보는 “세계여성평화그룹IWPG 행사에 참석한 걸로 알고 있다. 이 내용은 문 후보 밴드에서 확인했다”며 갈무리된 밴드 내용을 공개했다.
문 후보는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의 세계적인 날을 맞아 행사를 한다고 해서 참석했다가, 검색해 보니 종교행사 같아서 자리에서 벗어났다”고 해명했다.
이어 “정치하는 사람이 표가 있는 곳에 가는 게 당연한데, 그래서 인사드리고 행사장을 나왔다. 신천지와 더 가까운 것은, 미래통합당이 아니냐”고 받아쳤다.
서 후보는 “문 후보가 운영하는 밴드를 보면 내년에도 이 행사에 참석하겠다고 돼 있다. 모르고 참석할 수도 있다. 참석을 했으면 솔직하게 참석했다 하고 사과할건 사과하라”고 꼬집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표를 쫒는 것을 나무랄 수 없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까발려진 신천지 행사에 참석한 문제로 말바꾸기 한 일이 논란이 됐다. 두 후보는 TV 토론회 영상을 활용한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여론전에 올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어낸 민주당 열풍이 휘몰아쳤던 거제시.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대우조선 동종사 매각문제와 조선산업 회생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노동자와 거제시민들의 심리적 상실감이 겹치면서 표의 향배를 쉽사리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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