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교육방송을 보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컴퓨터와 태블릿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상상 됩니다.
하지만 곧 아이는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간식을 먹습니다. 그래도 텔레비전에서 레이저 광선은 나오지 않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이내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안심이 되니 레이저 광선 대신 제 입에서 잔소리가 나오게 되더군요.
생물인지 무생물인지도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아주 작은 존재가 (사실은 인류에게 국한된)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진 바이러스는 종종 등장했지만, 이번에 약간은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인류는 적당한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자료를 보면 지구의 대기 질이 좋아지고, 독감과 일반감기 환자가 줄어들고, 기름 값이 떨어지고, 시리아와 예맨 등에서는 전투가 멈추었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듯합니다.
이번 사태의 대책으로 정부가 내 놓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일주일 남은 총선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지만,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왔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은 답답합니다. 아이가 쭉 늘어놓은 우편으로 도착한 선거자료를 봐도, 이것으로 4년간 입법부를 책임질 사람들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정당의 색으로, 혹은 개인적 인기로 뽑힐 텐데, 어쩌면 이번 총선에 나온 후보들은 바이러스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란 생각도 듭니다.
몇 해 전 아이가 한참 즐겨 따라 부르던 ‘내가 바라는 세상’이란 동요의 한 구절입니다. 그 당시에도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너무나 잘 반영하는 가사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 몇 년 사이에 우리 현실은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선거공약만 봐도 여전히 ‘더 편하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성장의 약속들이 난무합니다. 지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개발 하겠다는 이야기들을 하지요.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환경이나 건강, 그리고 교육에 관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주 작거나 거의 멸종된 상태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현재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집단 성 착취 영상거래 사건은, 그 본질을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결국 환경과 교육에 관한 문제임을 알 수 있는데 말이지요. 마스크와 백신개발, 그리고 강력한 처벌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한 나라의 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겨우 토목 개발 수준에만 머문다면 참으로 우울한 일입니다. 이 두 가지는 지금의 상황을 상징하는 것일 뿐, 이 외에도 제대로 된 법과 제도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영역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된다면 제가 동네한의학을 하면서 만나는 환자들의 모습 또한 변하게 될 것이고요.
이런 반복되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결국은 유권자가 변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후보에게 맞춰주지 말고 내가 기준이 되어서 투표하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바뀌면 기업이 바뀌듯, 하루밖에 눈치를 보지 않는 선출직이라고 해도, 유권자가 이전 같지 않다는 낌새를 느끼면 재빠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디더라도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겠지요.
아침 출근길,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 잎을 보면서 흥얼흥얼 거려 봅니다.
이번 선거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가 적어도 지금 정도의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아빠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투표는 어떤 주식투자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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