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 논란이 당연한 사실 몇 개를 깨닫게 했다.
놀랍게도 음식점의 요리사들은 땀흘리며 한끼 식사를 만들고 있었고, 라이더는 그 음식을 받아 빠르고 안전하게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조리된 음식, 배달된 음식 모두 인간의 노동력으로 이뤄져 있었다. 배달의 민족이 이번 달부터 전격적으로 기존 월정액(8만8000원) 수수료 체계를 정률제(성사된 주문 매출의 5.8%)로 바꾸면서, 소비자들은 "업소에 직접 전화해 주문하자"며 '배민 어플 삭제' 운동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들은 현명하다. 인간의 노동에 수수료 붙여 제3자가 떼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AI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에 가려졌던 '인간의 노동'이 거짓말처럼 드러난 셈이다.
배달의 민족은 '앱'을 만들고 AI 알고리즘을 이용한 최신 기술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자영업자들의 판매 패턴, 그리고 물리적 거리와 배달 노동자의 생체리듬을 축적한 후, 앱을 통해 그들의 다양한 '니즈'들을 중개하고 있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단순 플랫폼 독점으로 통행세 받는 기업"이라고 한 말처럼 정확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이 앱이 없어도, 자영업자가 만든 음식은 소비자가 사먹는다.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고, 다소 불편할 뿐이지, 앱이 없다는 이유로 공급자, 소비자 모두 최소한 굶진 않는다.
4차산업 혁명이고 플랫폼 혁신이고 하는 화려한 수사 속에서 기실 인간의 노동력으로 모든 핵심 과정이 이뤄지는 산업이 '배달 산업'이다. 우버나 타다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와 손님을 연결해주는 거대한 택시 중개업에 가깝다. 그나마 우버는 처음 '대안 택시'로 시작했는데, 타다는 아예 '택시 시장'을 접수하려 했다.
배달의 민족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안은 간단하다. "우리가 하는 업은 수수료 받는 중개업입니다"라고 인정하면 된다. '콜롬버스의 달걀' 비유도 자주 나오는데, 이탈리아 사람 콜럼버스도 스페인 왕실이 준 배와 후원이 없었다면 달걀만 깨다 세월을 보냈을 거다. 배달의 민족이 이용하는 와이파이, 통신망 시설은 누가 깔았을까. 인터넷은 '공기'가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깔아 둔 '망' 위에서 사업하겠다면, 최소한의 '겸손'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돈을 많이 벌 수록 세금을 많이 내라는 건 합리적이지만, 돈을 많이 벌 수록 '수수료'를 더 내라는 기업의 장사법은 '횡포'일 뿐이다.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합병이 이뤄지면, 전체 배달앱 시장의 90%에 달하는 거대 독점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소비가 줄고 배달이 상대적으로 는 상황에서 보여준 배달의 민족 '수수료 장사'를 보면 앞으로 두 기업이 시장을 어떻게 농락할까. 상상에 맡기겠다.
두번째, '공공 배달 앱도 가능하구나', 라는 깨달음이다.
군산 배달 앱 '배달의 명수'가 주목을 받았다. 군산시가 지난달 13일 출시한 '배달의 명수'는 지난 5일까지 7000여 건을 주문받았다. '배달의 명수'에 가입한 군산 시민은 출시 직후 5000명 가량에서 시작해 현재 2만4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군산시는 자영업자들이 '배달의 민족' 같은 사기업에 내던 수수료를 대략 월 25만 원 정도 아낄 수 있을 걸로 추정한다. 심지어 '군산 지역 화폐'도 이 앱을 통해 사용 가능하다. 가입비도, 광고료도 받지 않는다.
경기도 광명시는 전통시장 배달 앱인 '놀장'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세계 등 대형마트나 마켓 컬리 등이 공급하는 '식자재 배달' 시장에서 전통시장의 몫을 찾아보겠다는 시도다. 전통시장 반경 1.5Km 내에 있는 가정이나 자영업자들은 광명시장의 신선하고 저렴한 상품을 집에서 주문해 받아볼 수 있다. 광명시장 상인회와 광명시의 합작품이다.
'공공 배달 앱' 개발이 만능이란 건 아니다. 한계는 물론 있다. 이를테면 군산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는 공공앱이 가능할 수 있지만, 서울은 물론 거대 광역시에서는 관리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밀려드는 주문 규모를 처리하고, 수많은 음식점과 메뉴를 업데이트 하고, 엄청난 수의 라이더를 관리하려면 공공앱 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소규모 지역은 다를 수 있다. 배달 거리도, 배달 음식점도, 라이더도 소규모로 형성된 곳에서는 굳이 비싼 수수료의 사기업 배달 앱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배달 앱'이라는 게 놀라운 혁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배달의 민족이 독점적 기술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자동차가 발명되자 마부들이 '붉은 깃발'을 들고 '러다이트'에 뛰어들었다는 비유는 지겹다. 배달 앱이 자동차의 발명에 비견될 정도의 혁신인가? '앱'을 이용한 배달 시스템은 실상 모든 게 '인간의 노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 노동 일부를 '중개료', '수수료', '통행세'로 받아가는 기업이 무슨 혁신인가.
몸 안에 장기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알지만, 엑스레이를 찍기 전엔 실감나지 않는다. 이번 '배달의 민족' 논란은 그간 '4차산업혁명'이니, '플랫폼 혁신'이니 하는 피부 아래에서 장기가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보여줬다. 그들이 말하는 AI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기업의 이윤'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소비자가 얻는 편의는 실제보다 더 과장돼 있었다. 생활 패턴의 변화가 '배달 서비스'를 이끈 것이지, 배달 앱이 '혁신'을 통해 소비자의 삶에 혁명을 가져다 준 게 아니다. 그들이 연구하고 있다는 AI라든가, 빅데이터 기술은 이윤을 위한 것이다. 4차산업 혁명의 첨단에 서 있다는 일론 머스크가 AI의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특이점을 넘어선 AI가 인간을 닮은 자본주의자라면, 아마 전 세계의 돈을 쓸어 담을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얼터드 카본>에서는 AI가 운영하는 호텔이 등장한다. 종업원이 단 한명도 없는 이 호텔은 손님이 없어도 운영된다. 핵심적 특징은 절대 폐업 따위 하지 않는단 점이다. AI는 폐업하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는 법을 안다. 수익 규모, 디테일한 회계와 수학, 그리고 은행 시스템의 문제를 다루면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초지능을 가진 AI가 만일 기업을 운영한다면, 수익 구조를 꿰뚫고 금융망을 장악해 인간의 '부'를 착취(그들은 착취가 아니라 수익이라고 여길 것이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도구와 기술은 다르다. 도구는 한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지만, 기술은 모든 인간의 삶을 재배치한다. 인간을 닮은 초지능 AI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판단하는 기계'의 윤리의식이 인간보다 더 낫길 바라는 걸까.
혁신을 빙자한 배달의 민족 논란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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