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처벌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제32장 '정조에 관한 죄'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법은 보호해야 하는 가치를 '여성의 정조'로 규정했다. 법이 보호해야 할 정조와 그렇지 않은 정조를 구분했다. 달리 말하면 '정조가 없다고 판단되는 여성'은 성폭력을 당해도 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았다.
여성계는 오랜 기간 '정조의 문제'로 여겨져온 성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라는 관점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정의하고자 노력했다. 여성 또한 성적행위의 주체로 인정하라는 주장이었다.
정조에 관한 죄는 1995년, 법이 만들어진 지 42년 만에 '강간과 추행의 죄'로 개정됐다. 관련 조항에서 '부녀'로 한정된 피해자는 '사람'으로 확대됐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018년부터 본격화한 #미투운동을 계기로 여성계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기존의 '저항'에서 '동의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죄'로의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그럼에도 과거는 끈질기게 살아 있다. 당장 '정조' 관념부터 아직 살아 있다. 온 사회를 뒤흔든 n번 방 성착취 사건의 피해자를 두고도 '그럴 만 해서 당했다'라는 시각이 일부에서 제기된다. 성폭력은 디지털 세계로 자리를 옮겨 아직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7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진 여성들의 반 성폭력 투쟁사를 간략히 정리했다.
공권력의 성폭력으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시작된 연대
흔히 여성단체들의 본격적인 연대활동 시작 시점은 1984년으로 본다. 1984년 9월, 전두환의 방일 저지 집회에 참가했다 연행된 경희대 여대생 3명이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서 알몸 상태로 전경들에게 심한 성추행을 당했다.
여성평우회와 민청련 여성부의 대책활동을 시작으로 여신학자협의회, 교회여성 연합회, 또 하나의 문화, 여성의 전화, 민불련 여성위원회 등이 그해 11월 '여대생 추행사건 대책위원회(회장 박영숙)'를 만들어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 대책위 활동은 산발적으로 움직이던 여성운동의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피해 여대생들은 경찰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공권력의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이후 여성단체들의 연대활동은 계속됐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1987년 전남 김봉환 순경 사건, 1989년 대구 경찰의 다방 여종업원 윤간사건 등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를 은폐하려는 공권력의 움직임도 계속됐다. 이 같은 사건이 이어질 때마다 지역 여성단체는 힘을 모아 피해자 지원과 사건 공론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부조리를 바꾸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김봉환 순경 사건의 피해자는 '불륜'으로 낙인찍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구 경찰 윤간사건의 피해자는 '다방 종업원'이었다는 이유로 심각한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피해자는 무고와 간통죄로 구속됐다.
여성단체들은 '경찰에 의한 여성인권유린 규탄대회' 등의 노력으로 피해자의 무고죄에 대해 무죄를 이끌어냈으나, 피해자를 윤간한 두 경찰은 무혐의 처리되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피해자는 다방 종업원이니, 피해자의 정조는 보호받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였다.
'피해자 보호' 명시한 '성폭력특별법'의 제정
1990년대 들어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법 개정에 나섰다.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대운동이 시작됐다. 전국 각지의 개별 성폭력 상담소들이 오랜 기간 피해자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체감한 법과 제도의 문제가 연대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성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1991년 서른 살 김모 씨가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남성 송모 씨를 살해한 사건, 1992년 대학생 김모 씨가 남자친구와 함께 13년간 자신을 강간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오랜 기간 이어진 여성의 투쟁은 1993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부분 결실을 맺었다.
각 사건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를 받지 못한 피해자가 '살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당시 관련 법은 피해자가 사건 발생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다. 직계존속은 고소할 수도 없었다. 두 사건은 과거 법으로는 가해자 단죄가 불가능했다. 오랫동안 고통받은 피해자들은 그동안 어떠한 법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주변의 지원을 받을만한 제도적 장치도 없었다.
이들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은 법 조문에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그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부분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었다.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 상담소 등 피해자 보호방안을 규정했다. 또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의 조항이 만들어지며 '친족 성폭력'이 법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당시 성폭력특별법 제정과정에서 '성폭력'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매우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괄할 것인지, 성적인 것으로 한정할 것인지를 놓고 이어진 논쟁 끝에 후자로 뜻이 모아졌다. 그러나 성폭력 개념을 가정폭력·성매매 등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폭력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 후로도 꾸준히 이어져왔다.
성폭력 : '성'을 매개로 한 신체적·정신적 폭력
1993년 '국내 최초의 성희롱 소송'으로 성폭력은 물리적 폭력 밖으로 그 정의를 확장한다. 서울대 화학과 신모 교수가 조교를 지속적으로 성희롱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피해자 조교가 교수의 성희롱을 항의하자 앙심을 품은 교수는 피해자의 업무를 방해했고, 재임용까지 막았다. 사건이 알려진 뒤 12개 여성·시민단체, 서울대 총학생회는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피해자를 도와 소송을 지원했다.
6년의 기나긴 법정공방 끝에 법원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계기로 성희롱 개념이 구체화됐다. 이어 성희롱 개념은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 시 명확히 확립됐다. 이 법(성희롱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 및 각급 학교와 회사 등에서 매년 의무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폭력의 의미와 보호 범위는 점차 확장됐다. 과거 성폭력 범죄는 피해 당사자만 신고 가능했다. 성폭력범을 단죄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이후 여성계의 노력으로 당사자가 아니라도 신고가 가능한(비친고죄) 성폭력 범죄 피해자 범위는 1997년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시작으로 2011년 장애인, 2013년 모든 사람으로 확대됐다. 성폭력이 비친고죄가 된 건 '성폭력은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을 반영했음을 뜻한다.
이제 처벌 강화가 논쟁의 무대에 올랐다. 2008년 사건에서 조두순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경 받았다. 잔혹한 성폭력 범죄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킴에 따라 성폭력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후 성폭력 특례법은 음주·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의 성범죄에는 감경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개정됐다.
이후 범죄의 가혹함을 현실화하는 변화는 지속됐다. 2009년 중학생을 성폭행하고 시신을 물탱크에 유기한 김길태, 초등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을 계기로 성폭행 전과자에 전자발찌를 착용하는 법안이 소급적용됐다. 두 사람 모두 성폭행 전과가 있었지만 위치추적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2010년 강호순 사건으로 강력범 신상정보 공개가 시행됐다.
2010년대에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제정되면서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더욱 가중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등록·공개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또 유사강간죄 처벌 등의 제도가 만들어져 '성폭력'의 보호범위는 한층 더 확장됐다.
일상의 성폭력, 가장 보통의 연대를 만들다
여성단체 중심의 연대활동은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사건을 계기로 여성시민 전체로 퍼지게 된다. 특히 2018년 서지현 검사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집단적 고백과 공감이라는 형태로 확장돼 그 자체로 연대운동이 됐다.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나면서, 성폭력이 몇몇 운 나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모두가 직면하는 정치적·문화적·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이 '보통 사람들의 연대'는 지난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유죄 확정을 이끌어 내면서 성폭력의 범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위력에까지 확장하는 데 공헌했다.
보통 사람들의 연대는 불법촬영·디지털성폭력 문제를 계기로 더욱 활발해졌다. 불법촬영과 디지털성폭력을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에 수만 명이 모이면서 공론화가 꾸준히 이어졌다. 최근의 n번 방 사건도 일반 대학생들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과 일반 시민이 모인 '프로젝스 리셋' 등이 공론화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성폭력의 범위를 더욱 확장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성폭력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이 같은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나왔다. 바꿔 말한다면, 과거 여성들의 연대가 지금의 성범죄 처벌 법적 규정으로 이어졌듯 지금도 세상을 바꾸려는 연대는 계속되고 있다.
성폭력은 강간, 물리적인 폭력을 동반한 남성 성기의 여성 질 내 삽입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의 성차별과 시선, 폭력적인 말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을 거듭해왔다. 여성계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피해자와 연대하고 공감하며 이들을 돕고자 노력한 결과다. n번 방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심각성이 드러난 디지털 성폭력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할 지, 어떻게 변화할 지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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