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안 원장은 '정치 질문은 받지 않겠다'면서도 정치 이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사회발전을 위해 고심중이라며 "정치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우리 사회의 발전적인 변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따라 결정됐다"면서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적인 변화에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은 것인지 계속 생각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안철수식 모호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발언이지만 지난 달 21일 미국에 다녀오면서 "굳이 저 같은 사람까지 그런 (정치 참여) 고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던 때와는 온도차가 뚜렷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어떤 역할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질문을 본인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고 있지만 선택지 속에는 '정치'도 들어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날 안 원장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키바(http://www.kiva.org)와 코지즈(http://www.causes.com) 모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계재단·정수장학회와 대조될 수밖에 없는 모델
▲ 안철수 재단의 출범은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 경쟁구도 출범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프레시안 |
키바 역시 기부자와 수혜자를 서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조직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의 새로운 형태인 키바의 경우 각 개인이 25달러 가량의 소액기부로 소액 대출을 하지만 자금 제공자가 68만 명 이상, 대출액수는 2억8000만 달러 이상이다. 키바의 대출금 회수율은 98.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모델이 구축되면 이명박 대통령이 설립자인 청계재단, 재벌 그롭의 후원 하에 현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뉴라이트의 횡령 등으로 흠집이 난 미소금융재단과 비교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게다가 말많고 탈많은 정수장학회와 비교하는 시선도 생길 수 있다.
청계재단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 정수재단 이사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청와대에서 보필했던 최필립 전 대사이고, 안철수 재단 이사장은 대표적 진보여성계 원로 박영숙 씨다.
그리고 한국판 코지즈, 키바가 현실화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수많은 기부자와 수혜자가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남녀노소가 보유하고 있는 스마트폰, 폭발적 증가 추세인 트위터와 결합하면 사회적 혹은 정치적 영향력을 갖추지 말란 법이 없다. 키바와 코지즈를 언급하고 나선 안 원장은, 상당한 로드맵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총선에, 안철수는 재단에 매진한다면?
안철수 원장은 '박경철 원장이나 이재웅 다음 창업주는 재단에 참여하나'는 질문에 "박경철 원장은 이미 계획이 돼 있었고 다른 분들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면서 "하지만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도 있어 그 분들이 원할 때 발표할 것이다. 3월 말~4월 초에 재단이 설립되면 실질적인 기부가 될 텐데 기부자들의 의사를 존중해 발표토록 하겠다"고 답했다.
가칭 안철수재단은 오늘부터 명칭 공모에 들어가 곧 새 이름을 정하게 된다. 그리고 차근 차근 모델을 구체화시키면서 늦어도 4월 초에 기부자 명단을 발표하게 되는 로드맵이다. 공교롭게도 총선 일정과 정확히 겹친다.
만약 여야가 공천 잡음, 탈당 논란, 밥그릇 다툼에 이어 본격적 이전투구를 벌이는 반면 안철수재단에는 젊고 깨끗한 명망가들이 속속 참여하고 새로운 기부 모델까지 형성한다면? 국민들이 누구 손을 들어줄 지는 뻔하다.
안 원장은 이날 '선순환 구조 형성'이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했다. 안 원장 입장에서 보면, 안철수재단이야 말로 성공한다면 공익에 기여하고 또 안철수 개인의 정치적 값어치를 한껏 올릴 수 있는 선순환 구조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 협력적 경쟁구도 가능한 모델
안철수 원장의 지인은 "오늘 안 원장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위해 무엇 무엇을 하는 게 아니다.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다"면서 "안 원장은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에 대한 고민 속에서 정치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선택이 정치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안 원장이 정치에 대해 한 발 나아간 발언을 한 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추월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프레시안>에 "안철수, 문재인 두 사람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라"는 글을 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 이사장이 안 원장의 뒤를 쭟고, 때론 덕도 보는 형국이었지만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포위하는 형국이 됐다.
사실상 이제부터 두 사람의 경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문 이사장은 본인 뿐 아니라 최대한 많은 민주통합당 후보들을 부산-경남에서 생환시켜야 하고 안 원장은 안철수재단을 성공시켜야 한다. 두 사람 모두 2개월 뒤 일차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에게 주어진 각자의 목표가 배타적이지 않고 최소한 독립적이거나 혹은 상호보완적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협력적 경쟁 구도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는 이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