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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쉬쉬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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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쉬쉬하는 것은?

[함께 사는 길] 베트남의 수많은 '민'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민'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 취직했다. 민의 고향은 '랑선'. 이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많은 여학생들이 삼성전자에 취직해 고향의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다. 민이 큰 고민 없이 삼성전자에 취직하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형편의 동료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민의 고향집에서 타이응웬에 위치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까지는 3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민은 공장 주변에 작은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근무는 2교대로 이루어지는데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주간근무 시간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저녁 8시까지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특히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에는 몹시 바빠져서 일주일에 하루를 겨우 쉴 수 있을 뿐이다.

▲ 삼성전자 베트남 타이응웬 공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들. ⓒ공익법센터 어필

베트남의 민

여느 날과 똑같은 근무일, 한창 작업에 열중하던 민은 어지럼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몇 달 동안 이어진 초과근무 때문에 피로가 누적된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민은 다시 일하러 나갔다. 그때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언니가 민의 몸이 괜찮은지 물어보며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에 아이를 유산했어!" 그때야 민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장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니 옆 라인에서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여직원도 눈에 들어왔고, 또 다른 라인에서 근무하는 언니의 친구도 유산했다는 소식도 귀에 들어왔다. 민은 임신 소식을 전한 또 다른 언니도 유산할까 걱정이 돼 앉아서 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그러나 그 언니는 "관리자가 게으르다고 여길까 봐 걱정돼!"라며 여전히 12시간 내내 서서 근무하고 있다.

이상의 이야기는 타이응웬과 박닌에 위치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2009년과 2014년 각각 박닌과 타이응웬 지역에서 생산법인의 가동이 시작돼 타이응웬에서만 7만40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2017년 말 베트남 전역에서 16만 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계열사에 고용됐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에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는데 법인세 우대, 용지 무상 제공, 삼성전자 입지 내에 세관 입주 등의 혜택을 입으며 삼성전자는 베트남 최대의 투자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상황이다.

민의 이야기는 베트남의 한 NGO와 스웨덴의 국제 NGO가 2017년 11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45명을 인터뷰한 후 발간한 보고서에 수록돼 있다. 그 보고서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계약서 사본을 받지 못했고, 9~12시간 동안 서서 일해야 하며, 다수가 근무 중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쓰러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특히 유산이 매우 흔하다고 보고하고 있어 베트남 삼성공장의 노동 안전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생기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작업 중 사용하고 있는 물질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삼성은 보고서 발간 이틀 전에 이 보고서를 입수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활동가들에게 보고서가 정확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으며, 보고서로 인하여 회사의 명예가 훼손되고 기업 활동에 영향이 미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보고서가 발간되자, 삼성은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베트남 당국에 허위정보 유포로 인한 형사 절차를 개시하도록 요구하겠다고 협박하는 한편, 자사의 노동자들에게는 '노동환경에 대해 외부에 누설할 경우 소송당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의 유미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베트남에서 삼성전자 노동자에 관한 보고서가 발표되기 14년 전인 2003년 10월 속초상고 졸업을 앞두고 있던 19살 황유미 씨는 동기들과 함께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취직했다. "엄마, 돈 많이 벌어올게"라며 집을 떠났던 그이는 1년 8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다시 1년 반도 지나지 않은 2007년 3월, 2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삼성은 유미 씨의 병을 직업병으로 인지하고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는 유미 씨의 아버지를 회유하고 협박했고, 유미 씨의 아버지와 다른 피해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사회에 알리려 하자 그 활동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2007년 11월 유미 씨의 산재 인정 투쟁을 위해 결성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 대책위원회'가 2008년 2월 삼성 외의 다른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즉 '반올림'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로 신고를 한 사람은 320명에 달했지만, 삼성전자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있으며, 투명한 배상 절차가 아닌 독자적인 비밀보상 절차에 따라 선별된 피해자들에게만 '합의사항 외부 누설을 않겠다는 조건의 보상'을 해오고 있다. 삼성의 반인권적 기업활동에 대해 반올림은 진정한 사과, 배제 없는 보상과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유미와 민을 위하여

피해자와 유가족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이들이 고통스럽게 싸움을 이어온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007년 98.5조 원에서 2017년 말 239.5조 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국내외 고용인구 또한 2007년 14.4만 명에서 30.8만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삼성의 해외 진출에는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에 대한 비밀주의,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를 하는 노동자와 NGO 활동가들에 대한 위협과 괴롭힘'도 동반됐다. 유미 씨를 위해 10년 전 한국에서 시작한 싸움이 베트남의 수많은 '민'을 위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내외에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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