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사태에 검찰이 말이 없는 이유
▲ 정연주 전 KBS사장ⓒ프레시안(최형락) |
언론을 통해 기세등등하게 공소사실을 전파하던 검찰은 아무런 말이 없다. 사과도 없다. 그 사이 법무부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과거사와 관련한 국가배상소송의 판결에 불복해 잇따라 항소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나마 과거 독재정권 시절 자행된 조작간첩 사건 등에 대한 재심사건에서는 차마 항소하지 못하고 인혁당사건, 민족일보사건 등에서도 무죄가 확정되다, 이젠 그마저 변했다는 소식까지 이어졌다.
한 검사가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데 반발해 제출한 상고이유서의 내용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내용이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긴급조치는 비교적 단기간에 걸쳐 시행되었다가 … 즉시 해제된 점, 당시 대통령은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인식하면서 긴급조치를 발령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 긴급조치가 유신헌법에 의하더라도 위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독재시절의 상황논리를 대변하는데서 시작하더니, "피고인 내지는 민청학련 관련자들에 대한 가혹행위는 … 사법경찰관 단계의 조사 내지는 검찰관 단계에서의 조사 과정에서 이뤄졌지 공판 과정에서도 이뤄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자료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내용의 문건은 존재하지만 … 피고인의 법정진술 내용을 듣고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끌고 중앙정보부로 가 그 진술 내용을 번복하라고 시켰다거나 그 공판기일 전 피고인에 대해 가혹행위를 하여 조서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취지의 조사내용이 전혀 없"으므로 당시의 유죄판결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악행에 심신에 깊은 상처를 입고 끝내 안타까운 생을 마감한 김근태 의장의 사건에서, 그가 호소하던 고문을 철저히 외면한 선배 법조인의 논리와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모른다. 대대로 내려오는 검찰 차원의 매뉴얼이 있는지 의심할 정도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여론 앞에 적법한 업무수행을 내세우던 당대의 공안검사 김원치 씨도 "고문사실에 대하여는 피의자 김근태의 주장만이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하등의 자료가 없었으며, 관련 재판부에서도 이러한 피의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강변하였던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김종익씨에게 사과 했다는 이야기 들어봤나
사정이 이러하니 이들에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역사 앞에서의 두려운 참회는 찾아볼 수 없다. 수십년만의 재심 무죄 선고에 상소하지 않던 입장을 뒤집어 정권이 바뀌자 판결에 불복함은 물론이고, 당시 시대 상황을 들먹이며 여전히 처벌하는 게 맞다고 강변하는 행태가 계속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연주 사장의 무죄 확정에도 불구하고, 그를 해임하는데 앞장선 이들 역시 그 악행에 대한 책임은 나몰라라 한다. 물론 피해자가 납득할만한 진심어린 사과조차 없다. 아예 그가 몸담았던 회사에선 사장의 무죄 확정 소식을 보도하지도 않았다. 그러고도 뉴스를 시작한지 50년이 되었다고 홍보한다. 참으로 가관이다.
총리실의 불법사찰로 인해 삶을 파괴당한 김종익 씨에 대하여 정부 관계자 가운데 단 한사람이라도 사과했다는 소식은 '당연히' 없다. 사과를 종용하던 의원들에게 국무총리실장 권태신 씨가 확정판결이 없으니 사과할 수 없다고 버티던 '예의'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머릿속에 든 헌법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앞세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조차 거부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재단되어진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쯤 되면, 이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무엇인지, 헌법이 명한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공무원의 지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4대강 사업, 세종시 이전, 무상급식 문제 등과 관련하여 하루 아침에 말을 바꾸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저 그 비루함에 대한 탄식만 난무할 뿐이다. 이쯤 되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우리 헌법도 그저 가냘픈 숨결만 이어갈 뿐, 더 이상 어쩌지 못할 처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조직인의 자세를 앞세우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만 불안한 눈빛으로 되뇌이는 공무원의 처지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벌써 수십년 전 이러한 미래를 후예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분투 헌신한 한 사람의 기억은 그래서 소중하다. 헌법의 가치를 수시로 짓밟았던 대통령 이승만에 견결하게 맞서며 사법적 정의를 통해 행정부의 오만과 횡포를 견제한 김병로 대법원장 말이다.
그는 "폭군적인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거한 행동인 것처럼 형식을 취해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뿐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연이은 무죄 판결에 약이 바짝 오른 이승만이 볼멘소리를 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또한 인공 치하에서 '빨갱이'들에게 부인을 잃었음에도, 과잉 형벌을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며 초지일관 폐지하라고 외친 사람이었다. 채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1953년 4월에 말이다.
"트위터는 유력한 선동매체 도구"라는 경찰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한 네티즌이 친북 사이트의 트윗을 (비꼬려는 의도에서) '리트윗'했다는 것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더구나 경찰이 검찰과 법원을 염두에 두고 정성스레 제시한 압수수색영장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박정근이 사용하는 트위터라는 SNS서비스는 4명만 팔로해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력한 선동매체도구이다. 7월 현재 박정근의 팔로워는 2000여명에 육박한다." 시대착오적인 망동도 이 정도면, 이근안의 말마따나 거의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해주고 싶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하늘에서 후배들이 벌이는 이 코미디를 보고 뭐라 할까. 왜 전쟁 당시의 반공주의자와 휴전 후 60년이 흐른 오늘의 후예는 이토록 다른 생각을 할까.
영혼이 오염된 공무원의 행태도 추하긴 마찬가지일 뿐, 세종시 원안 폐기를 그토록 강력하게 주장하던 권태신 씨의 예를 보자. 세종시의 입안과 추진과정이 '사회주의적'이라며 주어진 '소임'을 완수하고자 박근혜 의원에게까지 색깔론을 들이대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과 OECD대사까지 지냈고, 2005년 세종시법이 통과될 당시에는 청와대 경제정책 비서관으로 세종시 법안관련 업무를 총괄하던 위치에 있었다. 말하자면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 정책 만들던 권태신이 이명박 정부에서 세종시 수정 정책을 설파했던 셈이다. 이 관료의 기이한 영혼을 도대체 어찌 설명할 것인가.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행정부처 이전이 끝날 때쯤이면 이뤄질 때면 공무원을 안 할 테니까 '나는 모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다. 뻔뻔함도 이 정도는 돼야 '고수'라는 비판에 이어, 당시 한 신문사의 논설위원은 감명깊은 '명언'이라 조소하기도 했다. 고위공직자들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면서 오로지 '국리민복'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솔직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 공무원의 사적 이기심이 끼어드는 경우는 비일비재할 터이다. 아니, 지금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이해관계'가 아닐까. 이기심은 형태만 달리할 뿐 계속 진화하는 법이다. 평생을 관료사회에서 살다 높은 자리까지 쟁취한 이들이 잇따라 튀는 발언을 하는 것도, 따져보면 그것이 최고권력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달리 어떤 논리로 이 '불편한 진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김하중 전 주중대사의 '간증'
이런 사람은 또 있다. 노무현 정부의 주중 대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된 김하중 씨.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을 거쳐 참여정부에서도 주중 대사를 역임한 사람으로서 '햇볕정책의 전도사'를 자임했던 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지난날 통일부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지 못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 걱정과 우려를 자아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과거 그의 행적을 기억하는 한 정당의 대변인은 그에게 '동명이인'이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이 사람은 장관을 그만 둔 뒤 엘리트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내고 간증을 통한 기독교 신앙 전도에 열심이다. 이제는 꽤 알려진 그 발언을 보면, 우리 '엘리트 공직자'가 갖는 영혼의 일단을 알아챌 수 있다.
"장관, 총리, 돈 많다는 사람, 명예 높다는 사람들을 전부 만나봤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100%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사람들의 특징이 있었다.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 돈을 갖기 위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모른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그 사람들은 강퍅하고 교만해서 함부로 아랫사람들을 대하고 욕하고 비판한다."
김하중 씨는 신도들에게 "왜 그런 줄 아냐"고 반문하며 다시 학벌 좋은 엘리트들의 실상에 대한 증언을 이어 간다.
"세상의 사람만 쳐다보고 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저 사람에게 잘 보이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잘 보이면 승진할 수 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잘 보이면 쥐꼬리만한 권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사람 앞에서 눈치 보고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 하는 짓을 보면 완전히 그 사람 종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고도 집에 와서는 권력과 자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능력 있고 지혜가 있어서 그 자리에 갔겠느냐? 그 사람들 만날 한다는 게 좋은 학교 타령만 한다"
"저도 막말로 좋은 학교 나왔다. 그래서 좋은 학교 나온 사람들 잘 안다. 그 사람들 만날 자기 출세하는 것만 생각한다. 남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좋은 아파트, 좋은 차, 좋은 음식 얘기만 한다. 머리와 마음속에는 시기, 질투, 교만, 불안, 근심 등이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을 리더라고 한다. 그게 무슨 리더인가?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들 속에서 살아봐서 안다."
"좋은 대학 나왔다는 사람들 전부 이기주의자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전부 자기 이익만 찾아다닌다. 좋은 대학 나왔다는 사람치고 나라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다. 전부 자기 학벌과 인적 네트워크만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엘리트냐? 어떻게 하면 좋은 차를 계속 탈지, 비서 있는 사무실을 계속 쓸지, 공금으로 좋은 음식을 계속 먹을지, 그딴 생각만 하는 사람이 무슨 엘리트냐? 여러분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
저들의 궤변과 악행을 기록해야 한다
법조인을 포함한 이런 공직자들이 엘리트라며 뻐기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면서 매번 우리는 일본 왕이 침략과 식민지배의 추악한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유감'이니 '통석'이니 말장난이나 한다며 분노한다. 그나마 이번 정부에선 그런 비판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국격'엔 그 나라 공무원의 품격이 당연히 포함된다. 대체 이 정부가 늘 주워섬기는 '국격'이란 놈은 어디로 도망쳤을까?
언젠가 반드시 제대로 된 사법개혁과 행정개혁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렇듯 선명한 '오염된 영혼'이 토해낸 궤변과 악행을 철저히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후배에게 그 조직과 선배의 부끄러운 역사를 속속들이 가르치는데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을 몰아가며 조중동은 그에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 했다. 대체 이들이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오늘은 어떤 것인가? 나는 눈빛 맑은 아이들에게 대체 무엇으로 부끄러움을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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