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私設) 정치'에 필요한 기틀은 상당부분 갖춰져 있었다. 언론 쪽은 최시중씨가 너무나도 '잘해'주었다. 정부나 권력의 감시자여야 할 이른바 메이저 언론들은, 최시중씨가 내민 '종편마약'에 취해 사정없이 비틀거렸다. 정신을 못 차렸다. 미리 미리 알아서 기어 주었다. 검찰은 검찰대로 인사권 앞에서 너무 쉽게 흐물거렸다. 시키는대로 다 했다. 그러나 당과 국회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153석)을 확보했고, 우호세력인 친박연대(14석)·자유선진당(18석)에 무소속(25석)까지 합하면 개헌선을 훨씬 넘는 막강한 입지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형제가 안심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선 경선 때 동생의 라이벌이었던 막강한 박근혜 전 대표가 총선 공천 등에서의 불만에 가득 차 있었고, 정몽준의원 등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였다. 그러면서 맞이한 게 그해 7월의 전당대회였다.
당권장악이 절실했던 형제는 머리를 맞댄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대표 '마름'이 필요했다. 허나 사람이 없었다. 이재오 씨는 총선에서 낙선해 미국으로 떠났고, 이른바 '친이계'도 아닌 정몽준 의원에게 중요한 당권을 그냥 내줄 수도 없었다. 이때 '차출'된 게 직전 총선에서 공천도 받지 못한 박희태 씨였다. 이른바 '돈봉투 전당대회'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요즈음 터진 게 '그때의 돈봉투' 사건이다.
▲ 이상득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 ⓒ뉴시스 |
어디서 돈이 얼마나 나와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씩 배달했는지를 놓고는 말들이 많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분명한 것은 박희태 씨의 '차출'에서 '대표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은 꼭대기에서 '형제'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론을 다는 사람들 별로 없다. 형제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왔건 안 나왔건, 당시의 '총감독'은 형제였다는 이야기다. "용감한 형제는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형제가 당과 국회를 장악한 뒤에는 모두가 일사천리였다.
'돈봉투 전당대회'는 MB에게 '다음 단계의 통치'를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형제에게는 참으로 '손쉬운' 정치가 '편하게' 이어졌다. 부유층이나 빽줄 있는 사람들이나 동지상고 출신들이 돈 더 많이 버는 '특혜경제'가 판을 치면서, 4대강에서 이 나라 땅 온통 골병 들이는 삽질이 시작되었다. 잠실 제2롯데 빌딩은 성남 비행장의 활주로까지 방향을 트는 조건으로, 애당초 신청한 것보다 높은 층수로 건축허가가 나갔다.
정부예산이 개인 돈 쓰이듯이 사설 파이프라인을 통해 콸콸 흘러나갔다. 형님의 선거구인 포항으로 포항으로, 또 형님 농장과 MB사돈댁 골프장 접근로가 될 남이천 IC 공사장으로 돈이 국고에서 마구마구 빠져나갔다. 형님 농장과 MB사돈댁 골프장은 돈벼락을 맞았다.
부유층에 부(富)를 쏟아 부으면 아래로 흘러, 서민들도 혜택을 본 다고 했다. 이 'Trickle down 이론'을 강만수 씨와 함께 신주단지 모시듯 신봉하면서 실천했으나, 부(富)는 부자들이 다 차지하고 아래로 흐르지 않았다. 이 결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그 이론을, 파산한 미국의 리만브라더스(Lehman Brothers) 은행에 빗대어, '리만('李'명박·강'萬'수)노믹스'라 불렀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미국의 2배가 넘는데도, 중국은 외면하면서 미국에는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며 손해를 자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미회담 열리는 것 '먼빛으로' 구경하며 '왕따당한 당사자의 쓰라림'을 곱씹었다. 전 정권이 하던 일과는 반대로 가려다 빚어진 황당함이었다. 겁도 없이 용감한 형제가 힘을 합해 나라꼴 참 많이도 망가뜨렸다.
자원외교 한다며 UAE니 쿠르드니 석유개발권 땄다고 허풍 치는, 대(對)국민 심리전 펴댔다. 국제사회의 봉 노릇 일삼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했던가. 민주주의 시스템·언론·검찰·특혜경제·양극화·물가·주택·4대강·남북관계·외교통상…. 어느 것 하나 MB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은 게 없다. 거짓에 구린내 나는 대목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MB라면 머리 테를 싸매고 감싸려들던 사람들도 참다못해 '평가'를 달리 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당장 한나라당에 비대위 생긴 것 자체가, MB방식의 정치에 대해 평가가 내려졌음을 의미한다. 한 중진의원이 "한나라당은 수명을 다 했다"한 것도 "MB식 정치의 수명이 다 했다"는 이야기다. 어떤 '보수' 논객은 "MB세력은 가짜이고 모조품"이라 했다. 그 논객도 속이 쓰렸을 것이다. 애당초 '그런 세력'인줄 몰랐던 모양이다.
국제적으로도 '객관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OECD국가 중 복지수준이 꼴찌 등급이고, 노동자 근로 시간이 1위인 것은 알려진 지 오래된 이야기다. 독일의 베텔스만 재단이 조사해 작년 10월 발표한 이 나라의 사회정의(Social justice)지수는, 조사대상 31개 국가 중 25위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조사한 국가경쟁력 순위도, MB취임 전 해인 2007년 11위에서 2011년 24위로 주저앉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이 나라는 알려진 IT선진국 이었다. 그 선진국의 위상이 말씀 아닌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영국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한 'IT산업 경쟁력 지수'가 2007년 3위였으나, 2011년엔 19위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한눈 파는데 열심인 방송통신위원회 때문에 그리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구도 속에서 MB가 내년 2월24일 24시까지, 적어도 1년 이상이나 더 대통령자리에 눌러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때까지 MB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안에 결재 하는 일 외에도, 무언가 하려하고 또 실제로 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법률적으로 보장된 임기라 해도, 나라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무언가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재임 중 그가 해온 일 훑어보면, 그런 생각 안 날 수 없게 되어 있다. 당장 보더라도, KTX민영화 한다고 국토해양부가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 청와대도 "추진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MB의 의지라는 소리다. 그런데도 엊그제 '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방안 업계간담회'라는 걸 하면서, 당초 강남 메리어트호텔로 되어있던 간담회 장소가 르네상스호텔로 급히 바뀌었다가, 과천정부청사로 또 변경되었다. 철도노조의 참여를 차단하기위한 비공개 조치였다고 했다.
투명하게 공개할 수 없고 설명과 토론과정을 거칠 생각도 없다면, 또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사업이라면, 당초부터 추진하지 않는 게 맞다. 철도 민영화해서 성공한 나라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도 나와 있다. 그러나 MB는 이론을 달거나 자기 뜻과 다른 소리를 지독히 싫어하는 성격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첫 단계부터 '건설업계 특혜'라는 의혹이 붙어 다니고 있다는데 우리는 주목한다.
'4대강'처럼 비밀리에 추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여당도 민영화는 반대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막으면 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인천공항'에서 보았듯이, 용감한 형제가 또 숨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MB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나라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까지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소리는 그래서 설득력을 지닌다.
형님의 여비서 계좌에서 형님의 것으로 보이는 뭉칫돈이 발견 됐다고 했다. 뒤이어 검찰이 그냥 '다선 의원일 뿐'인 형님에 대해, 정상적인 조사 아닌 '서면조사'를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디도스 공격사건 수사 때도 청와대의 일개 행정관을 검찰청 아닌 서울시경에서 조사했다고 했다. 역시 이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정무수석은 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돈봉투 사건 수사에서도 정무수석 어찌할지 알 수가 없다, '최시중과 양아들' 사건도 '뒷 소식'이 없다.
우리 보기에는 이런 게 다, 대통령인 MB 때문에 생략되거나 소홀히 하는 수사다. MB가 정상적인 검찰활동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정상적인 국정 수행상의 걸림돌이다.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다. 검찰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철저히 수사 할 수 있도록, 걸림돌 치우고 길을 터주는 게 옳다. 거리낌없이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도리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MB만 걸림돌 치워주면 언론 사주들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게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비켜서줘야 한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그럴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말해 주듯이, MB는 체질적으로 그럴 뜻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평생을 이어온 그의 '방식'을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필자는 작년 11월 이 칼럼을 통해, "국정에서 손 떼는 것도 방법"이라며 MB의 결단을 촉구한 적이 있다. 지금은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결론적으로 더 나빠지기 전에 MB는 하야하는 게 좋다. 그게 그동안 시달려온 국민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길이다. 그게 도리라고 본다. 국정은 전에 말했던 대로 시스템에 맡기면 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