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안민석 의원(민주당)은 지난 4일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시행 방안'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 안은 기획재정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협의해 만든 것으로, 정부가 한국장학재단이 발행하는 채권의 보증을 서는 것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기 위해 보고한 것이다.
졸업 후 4년 이내 안 갚으면 보증 세워 일반 대출로…신용불량자 양산 우려
문제는 이 시행 방안이 "대학생이 돈이 없어도 걱정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하겠다", "앞으로 등록금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이 없게 하겠다"며 정부가 적극 홍보했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의 당초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것.
교과부는 지난 7월 이 제도의 시행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학자금 상환 기간을 최장 25년까지로 하고, 이 기간 안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채무를 탕감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번 시행 방안에는 '최장 25년'이라는 상환 기간과 탕감에 관련한 부분이 통째로 빠졌다.
▲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등록금넷)'가 6일 오전 정부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시행 방안'을 풍자하는 퍼포먼서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
오히려 이번 시행 방안에는 '대출금 강제 상환 방안'까지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졸업 후 3년 내에 대출금을 갚기 시작하지 않으면 재산 조사를 실시해 소득 인정액을 산출하고, 4년이 넘으면 보증인을 세운 일반 대출로 강제 전환하거나 원리금을 전액 상환토록 한 것.
따라서 졸업 이후에도 취업이 안 되거나 저임금의 직장을 구하게 되면, 결국 다수의 학자금 대출자들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과부는 애초 "상환 기간은 최장 25년 내에서 대출자 본인의 소득 상황을 감안해 직접 결정하도록 해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우려가 없다"고 홍보했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저소득층 상환 부담 가중
특히, 정부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현행 학자금 대출보다 저소득층의 상환 부담을 더욱 키우는 것으로 드러났다.
6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학기당 등록금 400만 원, 생활비 100만 원을 연 6퍼센트 금리로 적용할 경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졸업 후 상환금이 현재 2200만 원에서 3630만 원으로 1430만 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시행 방안에는 대출자가 결혼을 할 경우, 배우자의 소득·재산까지 합쳐 소득 인정액을 산출토록 했는데, 이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부부 합산 과세'와 비슷한 방식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은 채무 불이행률을 낮추고 상환율을 높이기 위함이지만,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가 일반 대출과는 달리 사회보장적 성격을 띤 제도라는 점에서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친서민' 역행하는 '속빈 강정'"
이에 등록금 관련 시민단체와 야당들은 "'친서민 정책' 운운하던 정부가 서민을 속였다"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등록금넷)'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과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등록금 부담을 지속시키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등록금넷)'은 6일 오전 정부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시행 방안'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프레시안 |
이 단체는 "졸업 후 4년이 지나도 상환이 시작되지 않으면 강제 징수하거나 일반 대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은 정부와의 약속과는 달리 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것"이라며 "문제의 해법은 생색만 내는 정책이 아니라 높은 등록금에 대한 근본적인 조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등록금넷은 "온갖 수정으로 '누더기'가 된 '취업 후 학자금 상한제 시행 방안'을 당장 폐기하고 고등교육 예산 확충, 등록금 상한제가 결합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도입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5일 논평을 내 "이명박 정부의 취업 후 상환제는 친서민 정책이 아니라 결국 서민을 상대로 한 초대형 '피싱'"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역시 이날 "빚내서 공부하는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부채 상환 독촉부터 하며 '친서민' 운운하는 행태가 한심하다"며 "등록금 후불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대출 이자와 대출금 상환 조건의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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