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이 열릴 예정인 싱가포르에 10일 도착했다. '거래의 달인'과 '젊은 승부사'가 벌이는 '세기의 담판'이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셈이다.
2012년 집권 후 중국을 제외하고 해외 나들이를 한 적 없는 김정은 위원장이 전세계 미디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이 처음이었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한 김 위원장의 의지가 이어져 싱가포르 정상회담 성사의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날 싱가포르 정부가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의 공항 도착 사진에는 인민복을 입은 김 위원장과 함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이수용 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이용호 외무상 등 북한 외교분아 핵심인사들이 대거 포착돼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위원장과 북한의 각오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면담으로 북미 정상회담 공식 일정을 시작한 뒤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서 세기의 담판을 위한 최종 점검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우선적인 관심은 실질적인 국제외교 데뷔전을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과 치르게 된 김 위원장이 회담장에서 어떤 카드를 내밀지다. 그동안 북한을 향한 비핵화 압박과 함께 핵 포기 시 북한에 제공할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적 지원에 관한 구상을 여러 차례 밝힌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의 구상은 철저히 베일에 감춰져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추진해 '완성'을 선언한 핵을 건 담판인 만큼,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에 관한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남북 정상회담 때 솔직하고 화통한 이미지를 보여줬던 김 위원장이 이번에도 세부적인 내용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기보다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한 선제적이고 대담한 조치를 먼저 꺼내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와 관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8일 일본 NHK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나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어떻게 비핵화를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비핵화 시간표에 대해 이미 논의가 이뤄져 왔다. 두 정상이 틀림없이 그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방법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시간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암시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을 위대하게 만들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단 한 번의 기회"라고 마지막까지 김 위원장을 압박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싱가포르로 출발하며 이같이 말하고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과 자신을 위해 매우 긍정적인 어떤 일을 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회담이) 매우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감도 내비쳤다.
다만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 간 쟁점이 한꺼번에 타결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관계를 맺고 이후 과정을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김 위원장과의 첫 만남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에선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맞교환하는 '빅딜' 원칙을 공동선언문에 담고 방법론과 이행 시간표는 후속 회담이나 실무 접촉에서 의견을 좁혀가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탄두와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핵무기와 일부 핵시설을 조기에 폐기하는 가시적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 양 정상이 합의문에 한국전쟁 종전 의지를 담아내는 방안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평화협정으로 가는 입구인 종전 선언 추진 의사를 이번에 북미 양국이 공식화한 뒤,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이나 9월 유엔총회 등 상징적인 계기에 남북미 3국이 종전 선언을 함께 하는 수순이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평양에 미국 대사관 개설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북미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북미 간 실무 협상 과정에서 북미관계 정상화 방안의 일환으로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는 북한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여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로드맵에 성공적인 협상 결과를 도출하느냐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틀 후 대좌할 두 정상의 '협상 본능'이 통하느냐가 최종 관건으로 남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9일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첫 대면에서 통역사들만 둔 채 일대 일로 마주앉는 단독회담으로 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비핵화에 관한 진정성을 "1분이면 간파할 수 있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직관이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첫 대면이 순조롭게 풀리면 이후 양국의 핵심 참모진이 배석하는 확대 정상회의에서도 순항을 점쳐볼 수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10시)에 시작되며 당일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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