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북미 정상회담은 나흘 후다. 이번 선거를 가른 주요 쟁점은 안보다. 그러나 안보 변수는 극우 성향의 정치세력이 냉전적 관점에서 선거에 악용했던 시절과 다른 한반도 평화 이슈다. 어느 선거보다도 일방적으로 기운 선거구도는 열세를 면치 못하는 자유한국당의 자업자득이다.
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의원,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들은 북미 간의 평화협정 이슈를 주한미군 철수와 등치시키고 있다. 한국당의 지도부를 비롯하여 구성원들의 인식이 70-80년대의 냉전시대에 갇혀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상할 것도 해괴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선거 국면을 의식하여 보수 유권자들의 냉전 심리를 정서적으로 자극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순수치 못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참으로 나쁜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이유에서 일반적 통념에 어긋나는 발언과 인식을 쏟아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의 정당성 여부는 유권자의 심판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전제로 한다. 선거라는 정치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조직화하고, 수렴함으로써 협상과 절충을 시도하는 절차가 민주주의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정당구도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불임정당 체제이다. 임시국회가 소집되어 있으나 국회는 개점휴업이고, 의장단이 존재하지 않는 위헌 상태가 국회의 현주소다.
지방선거가 국회 의석수를 바꾸는 건 아니다. 재보궐 선거의 결과에 따라 원내 1당이 바뀔 수 있겠으나 한국당이 1당이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정당 재편을 촉발할 것이다. 정당 해체와 연합을 통한 정당 재정렬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촛불로 상징됐던 시민의 요구는 관철될 수 없다. 지금의 국회와 정당 체제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혁을 견인해 낼 수 없다.
정당체제가 재정렬되려면 이번 선거가 총선거가 아니더라도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가 되어야 한다. 중대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선거를 '가로지르는 쟁점(cross cutting issue)'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슈를 야당들은 성공적으로 발굴해내지 못하고 있다. 여당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이슈는 쟁점이라기보다는 당위이다. 야당이 이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사회경제적 현안을 선거이슈화 시킨다면 선거는 의외로 팽팽한 긴장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에게는 한반도 이슈를 평가할 수 있는 역사인식도, 능력도, 전략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선거구도는 선거 이후에 정당 재정렬의 당위성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새로운 정당연합과 정당체제의 탄생과 정당 구도 변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정당체제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적 요인이다. 선거 이후의 정치적 조건은 정당체제 변화와 친화적이다. 보수가 이대로 가다가는 21대 총선에서조차 궤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조건이 될 수 있다.
둘째, 정당 해체 이후의 연대나 연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대선주자급, 또는 리더십을 갖춘 존재 여부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당 등 야당은 인적 쇄신과 지도부 개편은 물론 정당의 지향을 새롭게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은 선거 후 정당의 이합집산을 통해서 의미 있는 정당 간 경쟁을 가능케 하는 정치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정치의 무력감은 국회를 더욱 나태하고 무능하게 만들 것이다. 일당 우위 정당체계의 지속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시민사회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한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쟁점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는 여야 모두에게 절박한 일이다. 최저임금을 둘러 싼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 정권과 노동계의 불화 등은 정치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이를 중재하고 설득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이의 해결의 주체는 역시 정치일 수밖에 없다. 이해당사자들의 충돌과 다툼을 조정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의 몫이 존재하지 않을 때 갈등은 비등점을 향할 것이다. 지금의 정치가 이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선거 이후의 정당체제가 바뀌어야 할 이유다. 선거 이후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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