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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안철수는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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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착한' 안철수는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MB의 두바이 VS 안철수의 실리콘밸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8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미국 방문 목적은 신임 교수 채용. 동료 교수들도 함께 간다고 한다. '서울대 교수'가 현 공식 직함인 그가 학교 일로 미국 출장을 떠나는 것.

그런데 눈에 띄는 일정이 있다. 안 원장은 이번 출장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의 면담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원장 측은 이런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정하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나는 것은 안 원장이 작년 11월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을 기부해 만들기로 한 공익재단과 관련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회장 지난 2000년 역시 자신의 재산을 환원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현재 370억 달러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재단이다. 빌 게이츠, 멜린다 게이츠, 워렌 버핏 세 명의 이사가 주요 의사 결정을 하며,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질병 퇴치 및 빈곤 퇴치가 주요 활동이다. 미국 내에서는 교육 기회 확대와 정보 기술에 대한 접근성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

에릭 슈미트 회장을 만나는 것도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업계 흐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안 원장 측은 "순수한 교수 채용 목적"이라고 정치적 해석에 대해선 경계했다.

안 원장은 연초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지지율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뒤쫓고 있다. 박 위원장과 양자대결에선 오히려 박 위원장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12월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출마한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출마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도 없다. 4월 총선에서 서울 강남지역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만 했다.

그래서 안 원장이 결국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4월 총선을 건너뛰고 대선으로 직행할 것이란 예상이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안 원장이 부인한 것은 '서울 강남 출마' 뿐이다. 이를 제외한 모든 변수는 열려있다.

민주통합당 김효석 의원 등을 통해 남북문제에 있어 권위자 중 하나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를 만난 사실, 지난달 30일 별세한 김근태 전 의원을 조문한 사실 등 최근 안 원장의 행보는 대권주자를 연상케 한다.

또 8일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안 원장은 정치 참여 여부와 관련해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여전히 여지를 두었다. 특히 그는 정치권의 쇄신 바람에 대해 "아직 진정성을 느끼기는 이르다"며 "나름대로의 쇄신 노력이 평소보다 강도가 쎈 데, 국민이 원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해, 정치 참여 명분도 남겨 놓았다. 그는 기성 정치권에 대해 "올해와 내년 굉장히 거대한 어려움이 밀어닥칠 텐데, 이제는 내부에서 힘을 합쳐 외부와 싸울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7년 4월 두바이를 방문한 이 대통령

이런 이유로 안 원장의 '미국행' 소식을 듣고 지난 2007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를 방문한 일이 떠올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곳을 찾아 이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공약인 '747'(7% 경제성장, 4만불 국민소득, 7대 경제대국) 구상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국민적 반발로 4대강 사업으로 축소(?)된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해서도 여러 구상을 얻었다.

▲ 두바이의 인공섬인 팜 아일랜드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뉴시스
당시 이 대통령은 사막을 초호화도시로 바꾼 두바이의 모하메드 총리는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국은 자원도 없고 기름도 가스도 나지 않는 나리인데, 현재 23만 불 소득이 됐지만 이제는 모하메드 총리와 같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강한 리더십이 있으면 한국은 10년 안에 4만 불 소득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중동은 이 대통령에게 매우 친숙한 지역이다. 1977년부터 1992년 국회 의원 출마 전까지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이 대통령에게 중동은 자신의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일군 곳이기도 하다. 또 건설사 사장 출신인 그에게 사막 위에 7성급 호텔 등을 지은 두바이는 그야말로 '꿈의 도시'일 것이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했던 그에게 두바이는 자신의 지향을 보여줄 일종의 '모델하우스'였고, 대선 경선을 앞두고 꼭 방문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이 대통령은 두바이에서 첫 구상을 밝혔던 대로 '747' 정책을 밀어붙였고, 자신의 주특기인 토목건설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규모와 당시 경제상황은 '토목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이 약발이 먹힐 때가 아니었다. 취임 첫해인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전 세계경제가 침체기를 맞았고, 그 여파로 한국경제도 지금까지 뚜렷한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파국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임기 내내 우리 경제는 지표상으로 고만 고만한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 했다. 오히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서 1만 달러 대로 떨어졌다.

더구나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양극화'다. 재벌 등 상층이 돈을 잘 벌어야 중소기업 등 하층에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MB노믹스'에는 양극화 문제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당연히 이 대통령 임기 동안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안철수가 보여주는 미국식 '착한 부자'

그 결과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 와중에 안철수 원장은 정권교체를 실현시킬 유력한 대권주자 중 하나로 대중들에게 포착됐다. 앞서 밝혔듯이 안 원장이 정치 진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가 정치권 안에 들어올 경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추상적으로 얘기한 정책 노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검증받아야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벤처기업 CEO 출신인 그의 경제관은 양극화로 압축시켜 표현할 수 있는 '한국병'을 치유하는데 적합한지 따져 봐야할 것이다.

두바이가 이 대통령에게 친숙하고 이상적인 공간인 것처럼 안 원장에게도 미국의 IT업체들이 밀집한 실리콘밸리는 친숙한 공간이다. 안 원장은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미국식) 경영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미국식 경제 모델은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특징으로 한다.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면서 시장의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룰 중 하나가 '공정성'이다. 게임을 룰을 지키는 선에서 쌓은 '부'는 얼마가 되든 칭송의 대상이다. 다만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되는 부자의 덕목 중 하나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대표되는 '자선'이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미국의 '착한 부자'들은 모두 이런 시스템 내에서 돈을 벌었다. 반면 유럽식 경제모델은 부의 축적부터 복지가 함께 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안 원장이 무료로 컴퓨터 백신을 배포한 일이나 최근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주식 절반을 사회환원한 일 등은 CEO로, 대학교수로 칭송받을 '선행'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면, 그가 지향하는 경제모델과 그것이 지금의 '한국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해야 한다. 8일 그의 미국행을 보면서 이 대통령의 5년전 두바이행이 떠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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