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1년 지방선거 이후 여러 글과 토론회에서 '연합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가 복지연합을 위한 '뉴딜연합'을 만들었듯이 한국의 민주당, 진보정당, 노동조합, 시민운동이 하나로 모여 복지국가를 추진하는 연합정치를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분오열되었던 진보세력은 최근 민주당과 진보당으로 크게 재편되었다. 이제 다시 진보세력의 앞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왜 연합정치인가?
연합정치의 필요성은 유럽과 미국의 정치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의 가족, 계급, 지역의 틀이 무너지고 있으며 개인화의 확대로 사회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 계급 외에 지역, 종교, 성적취향, 가치, 세대 등 다양한 사회집단의 분화와 정치성향의 파편화는 과거의 계급정당 또는 이념정당의 정치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고, 많은 여성들이 경제활동이 참여하고, 이혼이 증가하고, 청년 세대 가운데 정치적 무당파가 증가하고 있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 이외에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다양한 무당파 세력을 망라한 거대한 정치연합을 형성한 결과이다. 유럽에서도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사민당의 단독집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녹색당, 진보정당과 손을 잡는 새로운 연합정치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정당정치의 한계
연합정치의 필요성은 단순하게 득표를 위한 선거전술 차원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변화의 정치적 반영이다. 최근 한국의 선거정치에서 지역 변수는 약화되는 한편 계층과 세대의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정치 균열은 다양한 유권자의 투표성향이 더욱 분화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영남과 호남의 유권자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신 무소속과 군소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증가했다. 수도권의 젊은 유권자들은 모든 정당들을 부정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기성정당이 관심을 갖는 지역개발과 관련된 이슈보다 교육, 환경, 식품, 안전 등 생활정치에 관련된 이슈에 대한 관심이 크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와 거대한 대중 참여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적 시민운동의 가능성
정부, 정당, 기업 등 거대한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체계는 생활세계의 다양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동계급 중심의 진보정당과 환경, 탈물질적 가치, 개인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 젊은 세대 유권자들 사이의 정치적 간격이 커지고 있다.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도 생활정치에 대한 대중적 관심에 대해 제도권의 정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 지향을 가진 유권자의 증가는 전통적 정당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당 이외에도 정치적 시민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와 같이 단일한 주제의 시민운동이 새로운 정치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앞으로 환경운동의 정치화는 커다란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재정치화'는 정치의 새로운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2011년 '안철수 현상'은 정당정치의 약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개혁의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안철수 현상은 양날의 칼이다.
정당통합이냐, 선거연합이냐?
한국에서 연합정치의 가능성은 두 가지 경로를 고려할 수 있다. 먼저 진보정당과 정치적 시민운동을 등 진보개혁세력을 망라한 정당통합이다.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논의는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합쳐 만든 '민주통합당'(민주당)이다. 민주당의 상당수 지도자들은 진보정당을 포함한 '대통합'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현실적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모여 '가치의 재구성'을 통한 진보정당의 통합을 이룬 후 민주당과 선거연대의 전술을 채택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최근 진보진영의 '통합진보당'(진보당) 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들은 민주당과 정당통합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신 민주당과 선거연합의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삼분지계'의 딜레마
올해 1월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이정희 의원, 권영길 의원, 조승수 의원을 만났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진보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당장 민주당과 통합하기보다 보수-중도-진보의 삼각구도(삼분지계)가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또는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진보정당의 독자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소선거구제 대신 유럽식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거대정당의 동의가 없다면 어렵다. 진보정당의 '삼분지계'의 성패가 사실상 거대한 양대 정당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점은 확실히 구조적 한계이다. 이런 점에서 통합진보당은 2012년 총선의 선거연합에서 후보단일화에 그치지 말고 민주당에게 선거법 개정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후보단일화를 넘어 정책연합을 추구해야
현실적으로 총선 시기에 임박할수록 정당통합보다는 선거연대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2011년 총선에서 1:1 양대 구도로 선거 구도가 만들어지는 경우 야권이 전반적으로 우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야권의 선거연합의 전술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의 노선이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 원전 폐쇄 등 진보적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선거연합의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곧 야권후보 단일화 논쟁도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야권은 지금 우리가 왜 집권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왜 지난 집권 시절에 제대로 못했는지, 왜 지금 연합정치를 추진해야 하는지 유권자들에게 알기 쉽게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정치는 종합예술
정치적 협상은 매우 복잡한 예술이다. 한국 정치사를 보면 야권통합과 후보단일화를 실패하여 권력을 바로 눈앞에서 놓친 적이 많다. 2010년 지방선거와 수차례 재보선에서 볼 수 있듯이 총선에서 민주당과 진보당의 선거연합은 앞길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하며 나설 정치인이 필요하다. 대중운동의 역동성을 정치의 에너지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고도의 인내심과 포용력을 가진 정치적 협상이 필요하다. 연합정치를 이끌 정치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스웨덴의 알빈 한손, 독일의 빌리 브란트, 프랑스의 프랑스와 미테랑이 한국에 필요하다. 그렇다. 연합정치가 없다면 선거승리도 복지연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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