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핵과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북한을 상대로 한 리비아식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10년~15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헤커 박사는 지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4차례 방북해 영변 핵시설 등을 직접 경험했던 북핵 분야 권위자다.
헤커 박사와 동료인 로버트 칼린, 엘리엇 세르빈 연구원이 공동으로 작성해 28일(현지시각)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에 공개한 '기술적 관점에서 본 북한 비핵화 로드맵'이라는 보고서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즉각적이과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려면 오랜 시간에 걸친 단계적 비핵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으로, 단기간 내에 CVID를 목적으로 하는 트럼프 정부의 접근법과 차이가 있다. 또한 북한 역시 서면 상의 약속을 넘어 신뢰를 통한 체제안전 보장이 확인될 때까지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에 근거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하며 북한의 핵무기 등을 당장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했던 주장을 "순진하고 위험하다"고 평가하며 "북한 과학자들이 스스로 해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핵 프로그램의 규모는 "핵무기 보유에 근접하지 못한 리비아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이들이 분석한 북한 비핵화 로드맵은 10년 간 총 3단계로 이뤄지며 각 단계는 중첩적으로 진행된다. 핵프로그램을 중단하고(1단계), 이를 점진적으로 철폐하며(2단계), 마지막으로 완전히 제거하는(3단계) 수순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선 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보고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군사적, 산업적, 인적 활동을 중단하는 1단계는 최대 1년이 소요된다. 핵무기 생산과 핵미사일(ICBM, IRBM) 시험발사 중단, 핵미사일 기술 수출 중단 등이 이뤄진다. 핵 단지와 핵시설, 핵무기를 감축하는 2단계는 2~5년이 걸린다. 마지막으로 핵공장 및 핵프로그램을 제거와 검증이 이뤄지는 3단계는 6~10년이 걸린다.
이어 보고서는 "비핵화 검증과 핵무기와 플루토늄 폐기는 갈등적 환경에서는 실질적으로 이뤄지기가 불가능하다"며 군사적 목적의 북핵 미사일 폐기를 비롯해 민간용 핵개발이나 우주 프로그램에도 남북미의 협력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민간 핵 프로그램과 평화로운 우주 프로그램 확보가 북한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난 17년 간 미국은 이런 민간 활동이 군사적 목적을 위장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또한 최근 남북간의 화해 분위기를 잠재적인 "게임 체인저"라고 규정하며, "미국은 비핵화의 위험요소를 관리하기 위해 변화된 환경을 활용할 대비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헤커 박사는 이 보고서를 공개하기에 앞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도 "미국과 북한이 맞게 될 정치적, 기술적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북한 비핵화에 15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단일 핵시설의 오염 제거와 해체에만 10년 이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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