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표로 양측 간 게임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다. 하긴 70년 가까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과 북한이 불과 며칠 만에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유럽의 경우 1952년 시작한 경제통합에만도 40년이 걸렸다. 독일의 일방적 항복으로 전후 처리에 큰 문제가 없었고 북핵 같이 안보에 결정적 장애요인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그 정도이니 어쩌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는 더 긴 시간이 요구될 수도 있다. 사실 북미관계는 곳곳에 암초가 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 취소도 워싱턴 내 아직 건재한 대북 강경론자들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익히 알 수 있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리비아식 모델을 공개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은 미국이 북핵제거를 통해 북한을 무장해제 시킨 후 김정은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북한의 자세도 너무 강경하며 적나라했다. 트럼프에게 볼턴이 필요시 사용하는 '도구'라면 펜스 부통령은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는 '파트너'이다. 따라서 펜스 부통령에 대한 지나친 인신공격은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카드였다. 미국과 북한 양측 모두 아직 회담이 시작도 되기 전에 장외에서 지나친 여론전으로 경기도 치루지 못할 난국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북핵 문제에 관해 미국과 북한 간 일련의 대응 방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초년생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많은 선거전을 치르며 여론의 부침에 단련된 노련한 정치인이 아니라 그냥 돈으로 산 아첨꾼들에 둘러싸여 살아왔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이 보여지는 성향이다. 북핵위기가 고조됐던 작년 말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 이용호 외무상은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노망난 늙은이'라고 공개적으로 날선 비난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는 전략적으로 트럼프를 자극하여 북한에 대해 눈을 돌리게 하는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고 상황이 달랐다. 어쨌든 싱가폴 회담으로 나오겠다고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을 '정치를 모르는 얼간이' (겉으로는 펜스를 겨냥하긴 했지만) 비난한 꼴이 된 것이다. 이건 북한의 뼈아픈 실책이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내외의 정치적 아젠다를 부동산 거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태어나고 살아온 환경을 기반으로 형성된 한계이지만 그가 상대하는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생 동안 거래했던 협상의 상대방과 전혀 다른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실패해도 정치적 손해만 보고 제재를 강화하며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면 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물리적 생존 자체를 이 협상에 걸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협상을 둘러싼 변화한 환경에 코드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한 서한을 들여다보면 내용은 회담 취소인데 문맥은 회담 개최를 위한 설득이다. 이번 회담에 기대를 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아쉬움과 북한에 대한 원망, 그리고 절실함이 동시에 배어 나온다. 이는 트럼프의 현재 심리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심지어 서한에 사용된 영어 문장도 평소 미국의 외교문서에서 보이는 고급스럽고 절제되고 세련되면서도 단호함이 전달되는 문투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정이 성급하고 여과 없이 외교문서에 투영된 것이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 및 그가 겪어온 인생 여정을 잘 살펴보면, 이번 서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거래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했던 일종의 승부수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제 공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왔다. 싸움은 말리고 거래는 붙이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일단 양측을 중재하여 다시 협상테이블에 앉게 해야한다. 우선 상호간 불신과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북한에서는 최선희 부상이 펜스 부통령에 대한 모욕적 발언에 책임을 지고, 미국에서는 리비아 모델에 대한 언급을 중단하고 트럼프 모델을 제시하도록 해서 수습을 하는 방책이 최선일 것이다. 무대의 중심에 트럼프가 스타로 서도록 시나리오를 조금 더 구체화하고 조정하면 된다. 마치 드라마 쪽대본 같은 상황이지만 20일도 남지 않은 회담을 성사시켜서 판문점 선언으로 시발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제1막을 성공시키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각종 추문에 둘러싸여 정치적 자산이 동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도 이 회담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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