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곧이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마도 기존의 회담이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니면 나중에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면서 회담 개최 가능성을 남겨뒀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도 25일 담화를 통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면서 회담 무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미 양측이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벼랑 끝 신경전'을 벌인 형국이어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양측 모두 완전히 대화의 문을 닫아놓지 않았다는 점이 현재의 교착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상황이 이정도 왔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형식적으로라도 '그러지 말고 만나자'는 공개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이 좋다"며 "그런데 이걸 그냥 보내기에 북한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이를 위해 남북 간 연결된 핫라인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핫라인을 이럴 때 안쓰고 언제 쓰겠나?"라며 "필요하다면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의 움직임을 판독해서 북한에 찾아가 직접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는 가정 하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 서한을 보낼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급작스러운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을 내놓은 배경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무리한 요구도 있었지만, 북한이 미국의 상황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다소 수위가 높은 성명을 발표한 탓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어떤지, 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든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것인지, 절박한 정치적인 필요성이 있었다는 부분에 있어 깊은 성찰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국내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다. 여기서 북한이 고분고분하게 해줬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앞으로 나아갔을 텐데, 북한이 두 번의 성명을 통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 특사단이 북한 방문 이후 미국에 가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했다"며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참모들의 입장을 누르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즉 '외로운 선택'을 한 것인데 북한이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25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99.9%라고 했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예측이 빗나갔고, 결국 0.1%의 가능성이 현실화됐는데요. 북미 정상회담은 다시 열릴 수 있을까요?
정세현 : 25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위임에 의한 것'이라면서 담화를 발표했는데 이건 북한이 굽히고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만나자는 것이 핵심 아닙니까?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지원을 이끌어내야 할 대내 정치적인 절박성이 있기 때문에 이같은 태도를 취한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이 강하게 나와서 북미 정상회담 판이 깨지는 경우 트럼프도 타격을 받지만 김정은도 상당한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손해를 보고 체면을 구기더라도 지금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상황이 이정도 왔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형식적으로라도 "그러지 말고 만나자"는 공개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걸 그냥 보내기에 북한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줄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명의의 공개 서한이 나갈 수 있도록 일종의 디딤돌을 놓은 것이 김계관 부상의 담화입니다.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의 옆구리를 찔러서 직접 편지를 쓰라고 권고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 치고 나가야 할 타이밍입니다.
이를 위해 남북 간 연결된 핫라인을 가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핫라인을 이럴 때 안쓰고 언제 쓰겠습니까? 필요하다면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미국의 움직임을 판독해서 북한에 찾아가 직접 설명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 서한을 보낼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 때 도보다리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했고 북미 정상회담 다리까지 놔줬는데 지금 여기서 깨지면 안되지 않냐고 설득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입장을 밝히기 전에 한국에 통보하지 않았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가 아닌 것 아니냐고 하던데,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이 양측을 설득하면서 나간다면 운전자이자 중재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겁니다.
김정은의 공개 서한은 어려운 내용을 담을 필요도 없습니다. 김계관 부상의 담화에 이미 논리가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실무적으로 협상하는 과정에서 아귀가 안맞아 삐걱거렸는데, 정상 간에 만나서 정리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정도의 내용이면 충분해 보입니다.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서한을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정세현 : 그러면 북한이 다시 핵 활동을 하게 될 것이냐가 관심인데요. 핵 개발과 관련한 많은 시설 중에 하나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미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기했기 때문에 다시 핵 실험을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걸 다시 건축해서 실험장으로서 기능하게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러는 동안 미국의 대북압박과 제재는 더 세게 작동할 겁니다. 그렇게 다시 대치 상태로 가게 되면 북한이 힘들어집니다.
프레시안 :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면 김정은 위원장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도 국내정치적으로 타격이 있지 않나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이 공개서한을 보내고, 거기에 못이기는척 하고 회담에 다시 나서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트럼프도 굉장히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가 옥신각신,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회담 개시 국면을 열어가는 열쇠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김정은과 전화를 통해 공개 서한을 보내라고 설득하고 트럼프에게는 김정은도 이정도 했으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서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출구에서 이야기할 것을 자꾸 입구에서 이야기하지 말라는 조언도 덧붙이면 좋습니다. 트럼프의 참모들한테도 이 부분을 제대로 이야기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트럼프 입장에서는 부통령이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들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상황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걸로 판을 깨는 것까지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 김정은 편지와 나의 체면을 봐서라도, 한미 동맹을 생각해서라도 북미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진행해달라"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한, 트럼프의 '외로운 선택' 간파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 비판이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지적도 있고 트럼프가 이미 미국 국적의 억류자 3명의 송환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실리를 챙겼기 때문에 회담을 할 이유가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이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세현 : 전후 상황을 보자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자꾸 '리비아 식 해법'을 이야기하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이거 잘못하면 회담장에 끌려들어가서 다 내주고 오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지난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이름으로 담화가 나온 건데요.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8일 일정으로 중국 다롄(大連)을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직후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과 만났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보니 지난 3월 31일~4월 1일에 만났을 때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뻣뻣해졌다고나 할까요?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자신들을 리비아 식으로 굴복시키려는 모양인데 꿈도 꾸지 말라면서 일괄 타결은 할 수 있지만 이행은 어차피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이후 시 주석의 후원을 보장받았고 그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자신감을 가지게 됐을 수 있습니다. 이걸 본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간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 리비아 식 해결은 단지 선(先) 비핵화, 후(後) 지원이 아니라 군이 투입되는 겁니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리비아 식인데 중국은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겁니다. 이 부분에서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공감대가 생겼고, 중국의 후원을 확약받고 온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더 강하게 리비아 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북한이 지난번에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할 것처럼 하더니 이제 좀 달라졌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행동에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분석할 때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큰 나라가 시키면 작은 나라가 하는 거라는 인식이죠.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이 중국 역할론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도 중국과 같은 큰 나라가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이 태도를 바꿀텐데 왜 가만히 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오판을 한 대목이 있습니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지난 16일 회담을 다시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세게 나오자 미국 정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북한 비핵화 방식은 리비아 식이 아니라 '트럼프 모델'이라고 밝혔습니다. 내용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일단 볼턴이 말한 리비아 식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죠.
여기서 북한은 자신들이 세게 밀어 붙이니까 미국도 리비아 식 해법을 취소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정상회담의 의제와 제반 사항들을 논의하는 실무접촉에 북한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대외에 공개되지 않은 물밑 접촉 과정에서 미국이 말로는 트럼프 모델이라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선 비핵화와 경제지원을 언급하며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게 볼턴이 말하는 리비아 방식과 다를게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좀 더 센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싱가포르 접촉에도 안나갔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미국 입장에서는 '우리가 조금 잘해주니까 북한 애들이 기어오르네'라고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 있는 참모들의 기류가 바뀌었을 겁니다.
또 미국 내 여론 역시 북미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론은 냉소적이고 북한과 만나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참모들도 말리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회담을 열지 않겠다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입니다.
펜스 부통령도 이같은 결정이 나오게 하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발표 전에 기름을 부은 이가 바로 펜스 부통령입니다. 펜스 부통령은 실무접촉에 나오지 않는 북한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하면 리비아 식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여기에도 발끈했을 겁니다.
리비아 식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관련, 미국은 '선(先) 비핵화, 후(後) 경제지원'을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리비아 식의 최종 결과는 지도자인 카다피의 '비명횡사'입니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는 이 말은 곧 김정은의 카다피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결정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또 한번의 담화를 발표하게 되는데, 최 부상은 펜스 부통령이 '얼뜨기'라며 맹비난했습니다. 그리고 회담장에서 만날 것인지, 핵 대결장에서 만날 것인지 선택하라면서 최종 경고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북한이 너무 세게 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핵 문제를 둘러싸고 20년 동안 미국과 밀고 당기기를 해왔습니다. 여기서 북한이 얻은 교훈은 자신들이 세게 밀면 미국이 자신들에게 끌려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미국의 기를 좀 죽여 놓고 회담장에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나름의 대책회의를 했을 겁니다. 그에 따라 나온 결론이 최선희의 담화였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도 북한이 미국을 너무 몰랐던 것 같습니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어떤지, 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든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것인지, 절박한 정치적인 필요성이 있었다는 부분에 있어 북한이 깊은 성찰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는 지금 국내적으로 궁지에 몰려있습니다. 여기서 북한이 고분고분하게 해줬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앞으로 나아갔을 텐데, 북한이 두 번의 성명을 통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든 셈입니다.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대북 특사단이 북한 방문 이후 미국에 가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참모들의 입장을 누르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한, 즉 '외로운 선택'을 한 것인데 북한이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지난 4월 28일(현지 시각) 북한과 3~4주 안에 만날 것이라면서 기존보다 회담 일정을 당겼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6월로 넘어가더니 결국 취소 발언까지 나온 건데요. 이렇게 낙관적이었던 트럼프가 자신감을 잃게 된 원인에는 북한이 너무 강한 성명을 발표했다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핵 탄두와 ICBM 폐기는 입구 아닌 출구
프레시안 : 북한이 성명을 통해 강경한 입장을 보인 이유가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미국에서 핵 탄두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먼저 폐기하라고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별다른 소득이 없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정세현 : 볼턴이 이야기했던 핵 탄두와 ICBM을 오크리지로 가져 오겠다는 것은 협상의 결과, 즉 출구에서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못할 것도 아니긴 한데, 트럼프 정부가 그걸 협상의 입구로 제시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국내 정치적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달라고 요청하고, 이런 맥락에서 핵 탄두와 ICBM을 가지고 나가게 해달라고 하면 북한은 미국 연락사무소라도 달라고 하면서 협상을 통해 해야 할 일을 볼턴 보좌관이 가져오겠다고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미국이 자신들이 할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북한이 해야 할 것만 이야기를 하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너무 밀어붙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핵 탄두와 ICBM을 가지고 가겠다는 건 처음부터 북한의 협상력을 없애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는 더 어려운 겁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발언에도 문제가 좀 있었다고 봅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면 경제지원을 넉넉히 해주겠다, 체제를 보장한다, 고기먹게 해주겠다 등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 주고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말만 리비아식으로 안한다는 거지 사실상 리비아식의 방법을 풀어서 설명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군사적으로 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빠져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말장난'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서 볼턴 보좌관이나 폼페이오 장관 등도 내심으로는 리비아 식의 모델을 바라고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즉 지금 상태에서 미국과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는다고 해도 소용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국은 자신들의 진짜 의도는 리비아 식에 가깝지만, 북한을 적당히 둘러대면 회담장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진짜 의도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과 힘겨루기를 해서 미국의 태도가 변한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두르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프레시안 : 중국이 중간에 끼어든 것도 미국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세현 : 그런데 중국이 끼어들게 만든 것이 미국입니다. 미국은 종전선언에서 중국을 빼고 남북이 3자가 하자고 하는데, 이건 중국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동북아 국제정치를 중국 빼고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국이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격차를 너무 쉽게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세현 :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개념이 차이가 큽니다.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죠. 즉 미국의 태평양사령부에 소속돼있는 항공모함들이 핵무기를 싣고 동해나 서해로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이 북한의 기존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양측의 비핵화 개념이 상당히 가까워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또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에 군사적 위협이 되는 훈련은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가 진행된다는 것은 북한이 미국과 남한 등을 상대로 군사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없다고 약속을 한 셈이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동해나 서해에서 북한을 위협하는 훈련을 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판독하지 못했느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미 한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단계적 이행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일괄타결과 단계적 이행의 로드맵이데,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서 이만큼까지 끌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실제로도 핵 물질, 핵 시설, 핵 무기, 핵 기술을 한꺼번에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으로부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얻어내려면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를 약속해야 하는데 트럼프는 바로 핵 폐기하자고 하고 북한에게는 2년 동안 기다리라고 하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행동 대 행동, 동시적 이행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만나서 자세하게 이야기하니까 트럼프 대통령도 이해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참모들에게는 이러한 설명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이 단계적 이행을 설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말을 하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 의한 성과인 것은 분명한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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