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한반도 평화의 달성이야말로 촛불 정부에 안겨진 최대 과제"라고 지적했다. 촛불 혁명의 완성은 한반도 평화 달성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백 교수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11층 국제회의장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 공동 주최하고 <프레시안>, <한겨레>, <오마이뉴스>가 후원한 '촛불 항쟁 국제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촛불 혁명과 한반도 평화의 관계에 대해 짚었다. 교착상태에 빠진 '개헌'에 대해서도 여당인 민주당에 '쓴소리'를 던졌다.
한반도 평화가 촛불 혁명의 '완성'인 이유
현재 한반도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 이전의 한국 사회, 그리고 촛불 혁명 이후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고, 촛불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 '혁명 정부'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백 교수는 촛불 혁명 이전의 한국을 '분단 체제'의 한계에 따른 '이면 헌법'이 존재하던 시대로 규정했다. 즉 헌법이 존재했음에도 분단 체제의 숙명 때문에 "반공, 반북을 위해 헌법이나 법률을 안 지켜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이 작동해왔던 것이다. 백 교수는 이를 "성문 헌법에는 안보이는 일종의 이면 헌법"의 시대로 불렀다.
헌법이 작동하지 않던 관행, 그 폐해가 극대화된 것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대의 민주주의 역행, 국정농단으로 표출됐다.
백 교수는 "촛불 항쟁은 그러한 이면 헌법의 작동을 일단 정지시키고 민주적인 성문헌법을 가동해 박근혜 정권을 끝장"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호헌 혁명'이라는 말이다.
'호헌 혁명'은 특수한 성격을 띤다. 무엇을 바꾸는 혁명이라기보다, 왜곡된 것을 바로잡은 혁명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성격도 특수성을 띨 수밖에 없다. 백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일종의 혁명 정부인데, 다만 촛불 혁명이 매우 특수한 혁명이듯이 문 정부 역시 매우 특수한 혁명정부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과거에도 이같은 '비혁명적' 상황에서 '혁명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 4.19혁명이다. 백 교수는 4.19혁명이 결실을 보지 못한 것과 관련해 <프레시안>에 실린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의 글(☞바로가기 : [한반도문제와 미국의 개입] '미국의 충고로 수습된 4.19')을 인용했다. 백 교수는 4.19 직후 허정 과도 정부가 평화로 가는 길 대신 '반공주의' 정책을 오히려 강화했던 점을 지적했다. 이때문에 '4.19'는 혁명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기회가 또 열렸다. 백 교수는 "만약 (1960년 4.19 혁명 이후 우리 정부가) 민족의 화해를 도모하고 남북의 대결을 완화하는 시책을 전제했더라면 비혁명적 방법으로 혁명 과업을 수행하는 길이 얼마든지 열릴 수 있는 것이 분단국가의 특수성"이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이어 "반세기도 더 지난 오늘, 바로 그러한 길이 촛불 정부 앞에 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제 2의 최순실 사태, 제 2의 민주주의 역행을 막기 위해서는 '분단 체제'의 왜곡된 현실을 완전히 끝내야 한다. 그 전제가 '한반도 평화'다. 그러나 촛불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남북문제나, 한반도 평화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백 교수는 "종북 좌파 몰이에 시달려온 국민들이 굳이 그런 논란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정서가 작용"했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이 거의 전적으로 미국과 북한, 그리고 부분적으로 중국에 넘어간 상태여서 자기 문제라는 실감이 덜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남녘의 다급한 현안부터 해결한 뒤에 점차 한국의 주도력을 키워나가야 할 현실임을 직관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이면 헌법을 믿고 온갖 갑질과 헌법 유린을 자행하던 집단을 응징했는데, 이 이면 헌법이야말로 남북의 분단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아직까지 '이면 헌법'이 만만찮은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짚었다. 백 교수는 "촛불항쟁이 이면헌법의 작동을 일시 중단시켰지만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닌데다가, 대선 국면에서 상당 부분 되살아났고, 새정부 출범 뒤에도 촛불 이전에 구성된 입법부를 비롯한 수구 세력"의 '반동'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분단 체제가 왜곡한 '이면 헌법'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분단 체제는 시정돼야 한다.
백 교수는 "앞으로 트럼프, 김정은 회담이 남아 있지만,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었다. 그런데 비록 이것이 남북 최고위급 지도자의 결단으로 마련된 전기였지만, 촛불 혁명 없이는 불가능했을 성과라는 점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한반도식 통일의 특징이 점진적, 단계적 과정 속의 시민 참여라고 할 때의 '시민 참여'를 폭넓게 이해한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역행하는 정권을 축출한 촛불 항쟁이야말로 최고의 시민참여였다"고 했다.
백 교수는 "국내 개혁이 남북 관계의 악화에 발목잡힐 수 있다는 분단 체제의 속성은 역으로 남북 관계의 대전환이 촛불 혁명의 남겨진 국내 과제 해결에도 새로운 동력을 더해줌을 뜻한다"고 했다. 분단 체제 극복이 가능해지면, 사회 개혁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개헌 골든타임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안돼…부분적 개헌이라도 단계적으로 해야"
백 교수는 '개헌'을 함께 언급했다. 촛불 혁명의 완성을 위해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과 함께, '이면 헌법'의 시대를 끝낼 새로운 '성문 헌법'의 시대를 여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과제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개헌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성문헌법의 적절한 개정까지 가야 하지만, 이면헌법이 현행헌법의 어느 특정조항에 담겼다기보단 분단체제의 한 속성으로 사회 구석구석에 배어들어있고 시민의 마음속에도 깃들어있는 만큼 그 폐기 작업 또한 다각적이고 끈질기며 유연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 교수는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자유한국당이 국민과의 '6월 개헌' 약속을 저버렸으므로 '골든 타임'이 지나갔다느니 2020년 총선 때나 보자는 식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가령 한국당이 요구하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선거 제도 개혁과 연계하는 조건으로 수용한다든지 해서, 부분적인 개헌이라도 해냄으로써 개헌 운동의 동력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촛불혁명에 걸맞은 헌법을 일거에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시민들이 개헌을 수시로 발의하며 몸에 맞는 헌법을 단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바꾸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백 교수는 "대통령 스스로가 기본권 신장과 지방 분권의 원칙을 우선 수용하는 순차적 방식을 제안한 바 있지만, 촛불 혁명의 관점에서는 국민의 개헌 발의권을 확보하고, 일단 발의된 개헌안에 대한 국회 안팎의 숙의를 의무화하는 변화가 더욱 절실"하다며 "시민 사회의 개헌 운동은 이런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튀니지·아이슬란드·스페인·일본·대만에서 시민운동을 이끈 활동가들이 발제를 맡아 자국의 시민운동 사례를 공유하고 사회 변화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했다.
튀니지의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사우드 롬다니는 '재스민 혁명'의 경험을 설명했다. 일본에서 평화헌법 조항인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아베 신조 총리를 비판하는 평화운동가 다카다 겐, 아이슬란드 해적당 공동 창립자 비르기타 욘스도티르, 스페인의 진보정당 '포데모스' 내 소셜미디어 전문가 엠마 알바레즈 크로닌, 2013년 대만 '해바라기 혁명' 당시 활동가 우 웨이렌 등도 참여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