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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 낀' 박근혜로는 'KO패'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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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 낀' 박근혜로는 'KO패' 면치 못한다

[기자의 눈] 박근혜가 '링 밖의' 안철수에 밀리는 이유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도덕성 따위는 묻지 않을 테니 나도 잘 살게 해줘"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묻지마 투표'로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직후, 박근혜 대세론이 싹텄다.

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부자 감세'와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통해 대기업 사장 출신 경제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여줬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명박산성'과 물대포를 선사했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 대세론의 일등공신이었다.

'600만 표 차이의 대선 패배'로 무능함에 종지부를 찍은 야권에 뚜렷한 대항마가 보이지 않자 국민들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는 박근혜 의원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여당 내 야당 역할이 '2008년 총선 학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바와 같이 권력을 독식하려는 이 대통령과 그 측근들 덕분에 강제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굳이 강조하진 않겠다.)

돌아보면 박근혜 의원은 대체로 현 정권과의 관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지만 미디어법, 세종시 등 특정 국면에서 자기 목소리를 냈고, 이런 모습은 박근혜 대세론이 유지되는 동력이 됐다.

이대로 굳어지는가 싶던, 그래서 한나라당이 입버릇처럼 외치던 '잃어버린 10년'을 온전히 찾아오나 싶었다.

하지만 무너졌다. 그것도 아직 "링에도 오르지 않은" 안철수에게. 지난 9월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4년간 유지됐던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졌다. '안철수 바람'은 안 원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조건 없이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한 일과 최근 1500억 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힌 일,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더 거세졌다. 박 의원과 안철수 원장의 양자 대결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박 의원은 9월 13일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4%포인트 안 원장에 앞서다가 10월 3일 TNS코리아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에게 4.3%포인트 차이로 역전당했다. 이어 지난 21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는 안 원장이 7.2%포인트 앞섰다. 급기야 지난 26일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와 28일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안 원장이 각각 11.7%포인트, 15.1%포인트 앞서는 등 두 사람간 격차가 두자리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다급해졌다. 박 의원 측근들은 안 원장이 정치에 나서면 바람이 빠질 것이라며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말이다. "병 걸리셨어요?" 말수가 적어 말실수도 적은 박 의원이 이례적으로 사과까지 해야만 했던 이 실언 한 마디에서 초조함은 담뿍 묻어난다.

그래서 이전에 비해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지만 솔직히 스텝이 꼬인다. '정책 쇄신'을 강조하지만 집권여당이자 보수정당의 틀 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명한 색깔을 내기가 쉽지 않고 그만의 브랜드로 만들기도 어렵다. '한국형 복지'를 얘기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를 촉발시킨 무상급식 논쟁에서 그는 야권 주자들에 비해 뚜렷한 자기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더구나 보수정당 내에서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지난 22일 한미FTA 날치기에 적극 동조했고, 지금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마저 주장하는 소득세법 개정 등 '부자 증세'에 침묵한다. 결과적으로 '정책 쇄신'을 말하지만 현재 치열하게 부딪히고 있는 '전선'에선 이명박 정부의 정책 노선을 한치의 어긋남 없이 따라가고 있다. 내년 예산안 정도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민들 눈에 크게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남은 건 정치적 행보. 이 측면에서 더 큰 패착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 최근 들어 박 의원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게 '젊은층과 소통 강화'다. 페이스북의 개설하고 '수첩공주'라는 예명까지 붙였지만 "공주를 자처하냐"는 비난을 받았다. 지방 대학 강연에 대해선 '안철수 따라하기'라고 많은 언론이 평가했다.
▲ 박근혜 의원이 지난 26일 청소년 가장 등을 위한 김장담그기 행사를 가졌다. ⓒ연합

'친서민 잡기' 행보도 구태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본인도 시인했듯 '공주 이미지'인 박 의원의 친서민 행보는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젊은 유권자들이 보기엔 어색한 '서민 코스프레'로 여겨질 뿐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선거과정에서 동대문 시장을 찾았더니 한 상인이 '몸빼바지' 두 벌을 완전 바가지 씌워 5만 원에 팔았다는 후문이 있다. 평소 '귀족 정치인'으로 여겨지는 정치인들의 친서민 행보를 바라보는 '요즘 서민' 유권자들의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냉소적 시선은 젊을수록 더하다. 지난 26일 박 의원이 자신의 팬카페 회원들과 함께 한 '청소년 가장 돕기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를 바라보는 젊은 누리꾼들의 시선도 이를 보여준다. 청소년 가장을 위해 박 의원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 속을 버무리는 장면에서 이들이 찾아낸 게 '옥의 티'였다. 박 의원이 스티로폼 통에 비닐도 씌우지 않고 배추를 집어넣는 장면이 한 통신사 사진에 잡혔고, "청소년 가장에게 환경 호르몬을 먹이려는 짓이냐", "그러길래 평소에 김장을 담궈 봤어야지" 등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에 이 행사가 지난 2008년부터 4년째 계속된 행사라는 해명은 먹히지 않는다. 앞서 나경원 의원도 고무장갑 끼고 장애아 목욕 봉사 활동을 (촬영)하다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았다.

박 의원이 일반 유권자들과 소통하겠다고 나서는 곳곳에서 역풍을 맞는 일차적 원인은 보수의 '정치적 상상력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져온 방식의 '서민 행보'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다. 왜 그들은 '고무장갑 끼기' 밖에 못하나. 소통방법을 몰라서인가? 서민과 소통은 딱 '코스프레'만큼만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인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정치 행보가 역풍을 맞는 더 큰 이유는 유권자들이 박 의원에게 기대하는 '정치행보'는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 후보로 대권에 나서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나라당은 창당 이래 가장 국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7일 <프레시안>이 윈지코리아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한나라당 지지율은 22.5%로 민주당에 비해서도 뒤졌다. 그러나 박 의원은 뿌리채 썩어들어가고 있는 소속 정당 문제엔 모른척 하고 있다. 행여 '흙탕물'이 튀길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 의원 측근들은 안철수가 링에 오르지 않음을 탓하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보기에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진 건 링에 올라와 엉뚱하게 기둥이나 치면서 싸우는 척만하기 때문이다. 대세론을 복원하고 싶은가? 고무장갑을 벗고 글로브를 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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