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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가 보지 못한 한국 경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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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가 보지 못한 한국 경제의 그림자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12> 신자유주의모델의 위기?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많은 요인들이 한나라당의 패배에 기여했겠지만, MB정권을 향한 2040세대의 분노가 결정적 일격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아마도 청년실업, 비정규직, 육아와 교육, 요원한 내 집 마련, 사회양극화 등의 올가미에 걸려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다는 2040세대의 절망감과 분노가 그대로 박원순 표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가 지난 4년간 MB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총체적 평가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난 주 영국의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한국경제 평가는 사뭇 다르다. 올해 말이면 한국의 일인당 GDP가 EU 수준을 넘어설 것이고, 지금의 4.5% 성장률이 그대로 지속되면 성장률이 연평균 2.5%대에 불과한 미국을 수년 내 따라잡을 것이라며 한국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또 한국의 고도성장은 한국인의 근면함과 높은 교육수준, 효율적인 재벌체제, 그리고 평등한 소득분배와 사회통합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성취이며, 특히 한국모델은 한 세대 만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박수를 보낸다. 물론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점들도 지적하고 또 그러한 성장의 동력들이 이제 거의 소진되었기 때문에 순조로운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새로운 내부혁신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결론 삼아 덧붙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우호적인 평가다.

<이코노미스트>와 서울시장 선거가의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다르다. 예전부터 이처럼 한국경제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라 판이했던 적은 많았다. 외부 시각은 대체로 성장 둔화를 경험하고 있는 서구경제의 관점에 서서 우리 경제를 보다보니 자연스레 성장이라는 외형적 기준에 치우치게 된다. 반면, 국내의 평가는 한국인들의 경제적 삶의 안녕이라는 질적 기준을 강조한다. 양자가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교육에 있어서도 국내외의 평가는 늘 당혹스러울 정도로 서로 엇갈렸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교육의 우수성을 극찬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대체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교육은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우수한 인적 자원을 육성하는데 성공한 훌륭한 교육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이들을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전인교육에 실패했고, 암기만 시키고 창조력은 전혀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교육이라고 탓하지 않는가. 그래서 일부 부유한 한국의 부모들은 미국대통령이 벤치마킹하려는 한국 교육시스템을 불신하고(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미국학교로 조기유학을 보낸다. 아이러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는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전인교육을 원했고 오바마는 경쟁력 있는 교육을 바란다고 해야 하나? 아닌가? 어쨌든 교육이나 경제를 바라보는 안팎의 관점이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다.

다시 서울시장 선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서울시장 선거결과가 단순히 MB정권의 실정(失政)만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체제에 대한 거친 비판으로 읽어야 한다. 시장주의적이고, 대외개방적·수출지향적이고, 친재벌이고, 사회복지에 인색하며, 경쟁과 성장에 중독된 경제, 혹 신자유주의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런 경제체제의 한쪽 면이 외국이 부러워하는 경제성장이라는 성과였다. 그러나 동전의 또 다른 한쪽 면은 공식통계로는 도저히 잡히지 없는 청년실업의 심각성, 경제적·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심화, 끝이 보이지 않는 교육 문제, 집값 폭등 등 오늘의 우리 사회가, 특히 2040세대가 절망하는 현실이었다. 신자유주의체제가 MB정권 하에서 빠르게 우리 사회 안에 고착화되고 내재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형성은 가까이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멀리는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재벌문제는 박정희시대, 개방과 시장주의 문제는 전두환 정권 때부터 시작되었고 DJ와 노무현 정권 때에 크게 확장되었다. DJ와 노무현 정권이 복지정책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는 했지만 이들 정권 역시 크게 보아 신자유주의 지향이었다. 지금의 한미FTA 논란이 그 증거 중 하나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렇게 보면 이번 선거결과는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이끌고 온 발전모델이 신자유주의체제로 흡수·퇴행되면서 그 체제적 효율성을 다했음을 말해주는 조짐 내지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이코노미스트> 역시 약간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한국모델의 시효가 다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이제 여기서 어디로 가느냐이다. 아직 우리의 지평에는 내일 떠오를 새로운 해의 붉은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른바 청년실업이나 고령화사회와 같이 우리 사회의 존립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기술적 차원의 대안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경제학자로서 답답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몇 가지 분명한 것들이 있다.

더 이상의 성장지상주의는 곤란하다. 한 때 성장 그 자체가 사회적 시멘트 기능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는 직간접적으로 맹목적 성장추구와 연관되어 있다. 재벌 등 대기업중심의 산업정책의 폐해가 경제력집중이고 청년실업이다. 기업경쟁력 하나만 따지느라 비정규직만 양산하다보니 고용과 사회의 안정도 놓쳤다. 지난 수십년간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언제나 경제이다보니, 복지사회정책은 늘상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다보니 전통적 대가족제도의 붕괴도 그대로 방치되어 노인빈곤이 빈곤문제의 전부가 될 정도로 심각해졌고, 두렵기 짝이 없은 고령화 사회를 무방비 상태로 맞이하고 있다. 이제 성장이 만병통치약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미 성장의 부작용이 너무 크다. 경제정책과 복지사회정책의 두 바퀴로 사회가 굴러가야 한다.

우리 경제는 재벌에 의존하는 정도가 지나치다. 재벌경제의 폐해는 그 동안 많이 지적되어왔고 그래서 재벌의 힘을 가두기 위한 정책이 있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정권 하에서 재벌은 급팽창했다. 이는 MB의 최대 실책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경제는 재벌기업 한 곳이 흔들리면 경제전체가 흔들릴 지경이 되었다. 또 더 나아가 사회권력화되고 있다. 굳이 분배적 형평성이나 사회정의의 차원이 아닐지라도 경제안정성의 차원에서라도 재벌위주의 산업정책은 말 뿐이 아닌 명실상부한 동반성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경쟁과 성장에 매몰된 사회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것이 바로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력이다.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은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 보자면 피곤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느린 삶이 행복의 조건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빨리빨리' 유전자가 오늘의 문제를 단시일 내에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과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대안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돌연변이처럼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그냥 발견된다고 한다. 희망컨대 내년 양대 선거를 계기로 치열한 정치적 논의 과정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대안이 "저절로" 발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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