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7년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 동안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는 좀처럼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역사 회의가 열렸다. 베트남 전쟁(1955~1975)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 수행 당사자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모여 대화를 나눈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 대화를 적극 지원했지만, 미국 측 참석자들은 민간 차원의 개인 자격이었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오직 하나였다. 영어로 미스트 오포튜니티즈(missed opportunities), 즉 '베트남 전쟁을 회피 혹은 조기 종결시킬 수 있는 기회는 없었는가'였다.
베트남 측 사망자 수만 약 360만 명, 미국 측 사망자는 약 5만 8000명이다. 도대체 왜 이런 막대한 사망자를 내면서까지 베트남과 미국은 전쟁을 벌였을까. 왜 전쟁을 조기에 종결짓지 못했을까.
1975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뒤 22년 만의 일이었다. 종전 20년만인 1995년 미국과 베트남이 다시 국교를 재개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하노이 대화'다.(<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 역사넷 펴냄) 참고)
하노이 대화에는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를 비롯, 13명의 미국인이 나섰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에 임명되었고, 1968년 존슨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해임될 때까지 베트남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한 책임자가 바로 맥나마라였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은 일명 '맥나마라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트남 측은 외무차관이었던 응우옌 고 탁을 필두로 역시 13명의 베트남 측 인사들이 참석했다.
'메트로폴 호텔'은 1901년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가 건설한 호텔이었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뒤 북베트남이 '통냐트(통일) 호텔'로 개명해서 운영하던 하노이 제일의 호텔이었다.
미국은 1972년 12월 18일부터 무려 18일 동안 평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최대 규모의 북폭을 감행하였다. 이 크리스마스 폭격으로 하노이 일부는 완전 초토화되었고, 어린이를 비롯한 수많은 베트남 인민들이 학살되고 말았다.
폭격이 한창이던 24일 성탄절 밤, 미국의 유명한 반전 가수 존 바에즈는 메트로폴 지하 방공호에서 기타를 들고 '위 쉘 오버컴(we shell overcome)'이라는 노래를 수도 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방공호 안에 피신해 있던 각국의 대사와 특파원들도 폭격의 공포 속에서 함께 따라 불렀다.
당시 한 일본 특파원이 테이프레코더로 녹음해 존 바에즈의 방공호 반전 노래는 전 세계 반전운동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19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시위에서 어김없이 불리던 불온한 데모 가요, '우리 승리하리라'가 다름 아닌 바로 이 곡이다.
전쟁 억제와 종식 수단, 현명한 지도자끼리의 대화
대화는 내내 격렬했다.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적이었던 양 당사자가 마주 앉아 전쟁의 전 과정을 들추어내고 복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45년 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미국과의 수교 의사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 왜 미국은 무시했는지, 몇 차례에 걸친 미국의 종전 비밀협상 제의를 베트남이 왜 무시했는지 사실 확인부터 서로의 입장과 관점 차이는 그 간극이 너무나 컸다.
맥나마라의 문제의식과 발언 또한 미국의 전 국방장관으로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국 내에서는 배신자라는 비판을 듣기까지 했다. 그러나 베트남 입장에서 보면 강대국인 미국의 관점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맥나마라는 2년 전인 1975년 11월 베트남 미국 수교 직후에 하노이를 방문해서 베트남 전쟁 영웅인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맥나마라는 통상의 인사말을 전한 뒤 곧바로 지압 장군에게 1964년 8월 4일 미 구축함 매독스에 대한 베트남의 2차 공격, 즉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 명분을 제공한 이른바 통킹만 사건의 진실을 물은 바 있었다. 지압 장군은 즉각 8월 2일 베트남 영해를 침범한 매독스 함에 대해 정당한 공격은 있었지만, 공해상에서의 2차 공격은 없었으며,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날조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맥나마라는 미국은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백하며 이 사실을 자신의 회고록에 적어 놓고 있다.
하노이 대화를 주도한 맥나마라의 다음 발언은 지금 현재의 우리에게는 두고두고 곱씹을만한 내용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을 두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이라고 할지라도 최고 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 역사넷 펴냄) 227~228쪽)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4.27 판문점 선언은 순간 시간이동처럼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길고도 긴 65년의 전쟁 상태를 끝내고 한반도 냉전 체제를 일거에 허물어 버렸다.
맥나마라가 강조한바, 남북의 두 지도자가 상대방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를 전제로, 새들이 평화롭게 지저귀는 푸르른 봄날의 나무다리에서 무릎을 맞대고 대화와 소통을 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온 국민이 꿈인지 생시인지 제 살을 꼬집어 봐야 하는 기적이었다.
그 순간 켜켜이 쌓이고 쌓여 있던 증오와 편견, 그 두껍고 견고했던 콘크리트 휴전선은 순식간에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말았다.
경천동지라는 말로도 부족한 전환이었다. 앞으로 남북 인민들은 남북 지도자들의 주도로 벌어지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미 북일 수교와 평화체제 구축 등의 숨 가쁜 일정을 경이의 눈으로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주제로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열리는 북미회담 또한 마찬가지다. 65년이 넘게 서로를 악마화해 왔던 북한과 미국이 상대방의 계산과 전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기로 합의하자마자 전쟁은 정말 순식간에 저 멀리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대화의 힘은 이렇게 위대하다. 배제가 아닌 인정, 외면이 아닌 경청의 힘은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킨다. 인정과 경청, 대화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임을 다시 뼈저리게 확인하는 4.27 판문점 선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남북이 왜 전쟁을 했는지 차분히 곱씹어 보고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토록 끔찍한 6.25동란의 동족상잔을 벌여야 했을까.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적대적 공존의 휴전 상태에 정지되어 있었을까. 미국과 베트남은 종전 20년 만에 수교했는데, 북한과 미국은 왜 65년이 지났는데도 수교를 하지 않았을까.('한국전쟁'이란 용어 대신 '6.25동란'이란 말을 사용하는 까닭은 인민의 입장에서 전쟁이란 그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끔찍한 난리가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지속가능하고(sustainable)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전쟁체제 해체(SVID)와 확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이룩할 수 있다.
남북 두 지도자의 합의와 선언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의 물꼬와 길을 열었다. 남북 정부와 기업들은 이 길을 따라 새로운 한반도 경제의 번영과 활로를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의 논밭을 갈고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오직 남북 인민들의 몫이다. 다시는 전쟁이 다시 재발하지 못하게 평화세력을 확고부동하게 온 나라 방방곡곡에 튼튼히 구축하는 일은 온전히 한반도 인민들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맥나마라가 강조한 지도자들끼리의 대화와 약속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평화 체제 구축은 그것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5년마다 바뀌는 지도자에 따라 오락가락 하는 평화체제란 언제든 갈라질 수 있는 살얼음 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멀리 다른 나라 역사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7.4공동성명을 비롯해서 북미 간 숱한 핵 합의와 선언, 협정의 역사만 보아도 이는 자명하다.
현명하지 못한 지도자가 출현해 대화와 소통을 외면하는 순간 한반도는 다시 전쟁 직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우리는 바로 엊그제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이를 생생하게 체험하지 않았던가.
전쟁을 억제하는 힘은 무엇일까
휴전협정의 당사자이자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은 한국의 식민지 모국이 아니다. 그러나 막강한 미국의 힘의 정치(Power Politics) 앞에서 한국은 여전히 수동태의 형태로 영향력 행사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가 단 한 해도 없을 정도로 전쟁이 체질화된, 전쟁으로 먹고사는 전쟁기계 국가다.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이 미국의 국방비다. 2017년 무기 판매액만 약 420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 질서가 미국 일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미국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한국이 미국에게 앞으로도 계속 주한미군을 유지할 것이며 무기 또한 계속 구매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판문점 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언제든 자신의 이익이 침해받는다고 간주하면, 한반도판 통킹만 사건이나 한반도판 이라크 식 대량살상무기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막가파 식 초강대국이다.
힘이 있어야 상대방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국제 정치에서 만고의 진리로 통한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이 북미 협상을 이끌어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반도가 비핵화 된 상태에서 우리는 어떤 힘을 갖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의 군사 강국이 모두 집결된 동북아시아의 한 복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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