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드루킹 사건' 특검 도입을 놓고 여야가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특검 수용을 촉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 중이던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결국 10일 오전 병원으로 이송됐다. 꽉 막힌 정치권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김 원내대표가 구급차를 타기 직전, 이날 오전 한때 정세균 국회의장이 내주 초 야당 동의 없이 본회의를 일방 소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시선은 다음날인 11일 선출될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당선 직후 야당과의 협상에서 성과를 도출할지에 쏠린다.
정세균 "참정권 침해 문제, 14일 전에 결심"
정세균 의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특검법이나 추경 등은 여야 합의를 기다리더라도 6.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의원들의 사직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오는 14일 전까지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이날 김성태 원내대표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며 위로 방문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의원직 사퇴 문제는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특정 지역(구)의 대표성이 공백 상태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에 맞지 않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모든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장은 "정당이 정치적 문제와 엮어서 기본적 민주주의 요소를 방해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라고 야당을 비판하며 "그것을 처리 안 하면 되느냐. 당연히 처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교섭단체 넷 가운데 둘(한국당, 바른미래당)은 반대하고 있어 고민이 깊다"며 "정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하다. 그런 것을 종합적으로 고심하고 있고, 다른 정당과도 의논할 것이다. (사퇴안 처리 시한인) 14일 전에 결심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일방 처리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국회법 135조는 국회의원의 사직과 관련해 "국회는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며 "의원이 사직하려는 경우에는 본인이 서명·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사직 허가 여부는 토론을 하지 않고 표결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금은 임시국회 회기 중이기 때문에,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의원직 사직 처리를 위해서는 본회의 표결이 있어야 한다.
다만 정 의장은 지난 8일 SNS에 올린 글에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지방선거 출마 의원들의 사직 문제는 매듭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에게 의장 직권으로라도 본회의를 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도 있다"며 "그러나 일부 교섭단체의 반대로 이마저도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국회법 제85조에 따라 각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 없이는 직권상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는 다음날인 9일에도 재차 글을 올려 "국민 여러분의 답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회는 특정 정파가 일방적으로, 또는 의장이 단독으로 운영할 수 없는 기관임을 이해해 달라"며 "국회법 85조에 규정된 '직권상정'의 법적 의미는 위원회에 계류 중인 안건을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부의해 심의하는 것으로, 법에서는 ①천재지변 ②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③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에만 직권상정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자신이 "직권으로라도 의원 사직서를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를 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4월 국회에 이어 5월 임시회가 공전되면서 여야 간 합의로 결정해오던 본회의 개의 일시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의 토로'였으며" 실제로는 "두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반대를 무시하고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상황도 못 됐다"는 것이다.
한국당 "직권상정하면 더 극단적 투쟁"…민주당 원내선거 후 풀릴까
야당은 여야 합의 없이는 안건이 뭐가 됐든 본회의 개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윤재옥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직권상정을 해서는 안 된다"며 "직권상정을 하면 국회 파행을 더 심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의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평생 의회민주주의자로 살아오신 정 의장이 그런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된다"며 "만약 14일에 (직권상정으로) 사직서를 처리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야당으로서 국회 정상화와 특검 관철을 위해 더 극단적인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특히 노숙·단식농성을 벌여온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가 이날 병원에 긴급 이송되는 사태가 일어나면서, 정 의장으로서나 민주당으로서나 야당을 섣불리 자극하기 곤란한 상황이 됐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3일 단식을 시작해 이날로 8일째를 맞았고, 단식 사흘째이던 지난 5일 30대 남성으로부터 주먹으로 턱을 가격당하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의원 시절인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0일간 단식한 끝에 건강검진을 위해 이틀 간 병원에 입원했었고, 이재명 성남시장도 2016년 지방재정법 개정에 반대하며 11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가 건강 악화로 열흘 간 병원 신세를 진 바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여야 대치 국면이 풀리기 위해서는 특검 도입 등 쟁점 사안에 대한 여당의 일정한 양보가 있어야 하는 만큼, 11일 의원총회에서 선출될 예정인 민주당 새 원내지도부의 결단 여부가 정국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김 원내대표는 내일 민주당 새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그 분과 큰 틀에서 합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하기도 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아쉬움과 함께 다음 지도부에 과제를 넘기고 간다"고 했다. 우 원내대표는 그간 야당과의 협상을 이끌며 '특검 도입 불가'에서 '수용'으로 선회하며 전향적인 타협안을 만들기도 했으나, 전날에는 "오늘 아침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의 발언을 보니 '대통령을 수사하겠다'고 한다. 이번 특검을 바라보는 본심을 드러냈다. 드루킹 특검이 아니라 '대선불복 특검' '닥치는대로 특검'아닌가"라며 "더 이상의 협의가 어렵겠다"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 대표의 발언에 대해 "그야말로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며 "인터넷상 여론 조작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서 법적 문제가 있다면 처벌하고 제도를 개선해 나갔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난 대선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는 식의 접근이다. 그것은 대선불복"이라며 "아무 근거 없이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고 나선 데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기도 했다.
진 비서관은 "대선 시기는 국민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라며 "정치적 참여의 과정, 의견 개진 과정으로 봐야지 무슨 과거 국가정보원이나 사이버사령부가 공무원·군인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달았던 것과 같은 반열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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