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복지 지출에 더 쓰자'는 취지의 한국판 버핏세(부자 증세)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더 많은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이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으로 표출된 10월 재보선 이후 '부자 증세' 논란이 불거져 나온 건 오히려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지난 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버핏세' 도입과 관련해 "복지수요 확대 및 재정건정성 유지와 관련, 부자증세 문제는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며 "한나라당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는 "아직 검토된 적 없고, 현실성이 없다"며 부정적 입장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7일 국회에 출석해 버핏세에 대해 "투자의욕과 근로의욕, 저축동기 등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다"며 "우리는 개인소득세가 취약한 점이 있는데 윗부분(부유층)도 있지만, 아예 안 내는 사람이 과반수로 그런 쪽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저소득층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버핏세'를 찬성한 정두언 의원은 "이 문제는 어차피 총선 전에 야당이 한나라당을 부자정당으로 몰면서 제기할 것"이라며 "그때 가서 수세적인 입장에서 논의하느니 차라리 한나라당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 등 한나라당 내에서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현재 소득세의 최고구간 및 최고세율을 추가로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 정 의원의 예상대로 야당과 시민단체가 '한국판 버핏세를 도입하자'고 치고 나왔다.
참여연대는 14일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소개로 법인세와 소득세에 각각 최고구간과 최고세율을 신설해 연 10조 원 정도의 세금을 더 걷는 법인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정동영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득세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세금내는 사람 가운데 99.7%는 세금이 100원 동전 하나 오르지 않는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서도 "국내의 기업 중 98%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법인세는 한푼도 오르지 않는다"며 법 개정시 부담이 대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부자증세관련법개정, 참여연대 공동기자회견'에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법인세법 개정? 솔직히 삼성만 결단하면…"
참여연대가 이날 내놓은 법인세법 개정안은 현재 2구간인 과표구간을 4구간으로 세분화해서 과세표준 100억 원 이하인 중소기업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단행한 감세 혜택을 그대로 두고, 과세표준 '100억 이상 1000억 이하'(3구간)와 '1000억 원 초과'(4구간)를 새로 만들어 각각 25%와 27%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참여연대 |
참여연대가 내놓은 개정안에 따르면, '과세표준 100억 원 이상 1000억 원 이하'에 해당하는 법인은 2009년 기준 1393개로 전체 법인 41만 9420개의 0.33%, '1000억 원 초과'에 해당하는 법인은 2009년 기준 190개로 전체 법인의 0.045%에 불과하다. 이들 대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율을 올릴 경우, '과세표준 100~1000억 원' 법인에 대한 증세액은 2012년 기준으로는 1조3518억 원, '1000억 원 초과' 법인들의 증세액은 5조 9853억 원 정도될 것으로 참여연대는 추정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솔직히 삼성만 결단하면 현실화 될 수 있는 안"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은 OECD국가 중 중하위"
한편 소득세법 개정안은 내년부터 적용되는 과세표준 8800만 원 초과에 대한 감세를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과세표준 '1억2000만 원 초과'(5구간)을 만들어 42%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안이다.
ⓒ참여연대 |
참여연대는 "우리나라의 소득세 부담률은 2008년 기준 GDP 대비 소득세액 비율이 4.0%로 OECD 회원국 평균인 9.0%의 절반에 못 미친다"며 "국제적으로 볼 때도 우리나라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0년 기준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19번째로서 중하위 정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니계수로 측정한 우리나라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9.7%로 OECD 회원국의 평균 45.2%에 비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실제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1650만 명의 근로소득자 중 0.28%에 해당하는 4만 6000명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늘어나는 세수는 2012년 기준으로 1조8258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참여연대는 밝혔다.
이에 앞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도 소득세와 법인세에 각각 최고구간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도 비슷한 취지로 세법 개정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판 '버핏세'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 "버핏세는 자본이득과세…부자 증세 아니다"? 미국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이름을 딴 '버핏세' 도입 주장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비판적 논조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은 <중앙일보>. 이 신문은 지난 12일 '버핏세 도입 주장은 포퓰리즘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어 정치권의 이같은 논의에 대해 비판했다. 이 사설은 "'버핏세'는 미국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이 근로소득세율보다 낮은 것을 시정하자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자는 것이 아니다"며 "현재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이른바 '부유세'나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버핏세 논란을 다룬 기사에서 "버핏이 제기한 '버핏세'는 미국에서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이 근로소득세율보다 낮은 것을 시정하자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자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물론 버핏이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게 된 계기는 미국의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이 15%로 근로소득세율 35%보다 낮은 것을 발견하고 문제제기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간 '상속세 폐지 반대' 등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해왔다는 사실을 볼 때 내용상으로는 '부자 증세'를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근로소득세율 수준으로 높이자는 버핏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국에선 더 '과격한 주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주식에 대한 과세제도는 비상장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다(중소기업 주식 10%, 대주주 1년 미만 보유주식 30%). 그러나 상장 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과세되고 있지 않다. 상장주식의 매매차익에 대한 세율은 0%인 셈이다. 이를 근로소득세율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엄청난 변화다. 또 유럽 경제위기로 출렁이고 있는 현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기도 하다.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손실을 입은 '개미'(개인투자자)들에게 부담을 돌리자는 주장임과 동시에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온 외국계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 외환보유고 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매우 '무책임한 주장'이다. 홍헌호 참여연대 실행위원(시민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과 조세제도가 다른 한국에서 '한국판 버핏세'라는 것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자는 버핏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버핏세 도입'을 반대하는 나성린 의원은 반대 이유 중 하나로 한국 부자들의 태도를 문제삼기도 했다. 나 의원은 "부자들이 버핏처럼 착한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안 되지만, 그런 주장은 우리 정체성이 보수 우파 정당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우파가 '부자 증세'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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