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작년 11월, 안산 반월공단에서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특성화고 학생의 '죽음'이 간단한 도식 구조 속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죽음의 이면에는 복잡한, 그리고 뒤섞인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①]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학생의 이야기
그간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을 두고 여러 지적과 대안이 제기됐지만 여전히 학생들을 둘러싼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특정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는 식의 단순계산으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현장실습 도중 투신한 박 모 군의 이야기에 이어 특성화고 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한다. 그들은 왜 특성화고에 입학하게 됐는지,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의 꿈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특성화고 교육구조, 그리고 그와 연계된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학생, 그리고 특성화고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이야기에 이어 마이스터고 졸업 뒤 기업에 취업한 학생의 이야기를 싣는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반복된 학생의 죽음 ④] 현장실습으로 취업한 김민수 씨
나는 왜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나
최근 현장실습 과정에서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면서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은수(가명, 21) 씨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는 여학생이 자살한 LG유플러스 같은 기업에는 가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다. 그리고 그런 비슷한 곳, 즉 열악한 노동환경일 경우, 곧바로 나오라고 교육받았다. "제도가 나쁜 게 아니라 이를 잘못 운용하는 사람들이 나쁜데 애먼 제도 탓만 하는 듯하다"
회사에서 막내인 정 씨는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청소는 고사하고 커피 한 번 타 본 적이 없다. 판교에 있는 회사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 직원이 300명 넘는 IT업계 기업이다. 정 씨는 이곳에서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마이스터고 출신이다.
중3 때 학교 성적은 백분위 10% 내에 들었다. 인문계고를 선택하지 않고 마이스터고를 간 이유는 전문성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인생을 전략적으로 짜보았다. 마이스터 졸업 후, 3년 동안 일하면,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MB정부 때, 신설된 '선취업, 후진학' 제도의 일환이다.
24살에 대학을 가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이스터고 입학 후, 만난 친구의 대부분은 정 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 씨가 다닌 마이스터고는 경기도에 있었다. 정 씨가 입학할 때만 해도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취업률이 좋은 학교였다. 보통 특성화고 취업률은 45%~50%였으나 이곳은 90%를 넘었다. 게다가 졸업 학생의 절반 이상이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했다. 나머지 학생들도 대부분 중견기업에 들어갔다.
여타 특성화고에서는 공기업 취업이 '하늘에서 별 따기'다. 전교에서 1명 내지 2명 정도 들어가도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만큼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그렇다 보니 학창 시절에는 늘 잠잘 시간이 부족했다. 온종일 공부를 해도 모자랐다.
1학년 때는 국영수사과의 기본적인 과목들과 전공기초를 배웠다. 인문계보다 국영수사과 비중은 적었다. 대신 전공과목 비중이 높은 편이었다. 전공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소한 내용이 많았다, 인문계고의 모의고사처럼 마이스터고에서는 국가기술 자격시험을 3개월에 한 번 치렀다. 각종 자격증과 토익 등 어학 점수도 노려야 하기에 여기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방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학연수를 가거나 대학에 가서 수업을 받았다. 좀더 다양한 세상과 환경을 겪어보라는 학교의 뜻이었다. 모두 마이스터고 자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학교는 각종 외부대회 참여도 독려했다. 학생들도 대회에 웬만하면 대부분 참여했다. 그것이 향후 취업할 때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었다. 정 씨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내내, 자신이 속한 기술연구반에서 로봇 이동 알고리즘 프로그램, 즉 로봇이 혼자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다.
쉽지는 않았다. 정 씨 전공은 전기전자제어. 여기에 프로그램까지 짜는 작업까지 하다 보니 방학 동안 두문불출해야 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해 지방대회인 기능올림픽 모바일로보틱스 분야에서 동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마이스터고 생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만큼 친구들 간 견제도 치열했다. 학생들이 성적에 극도로 예민했다. 정 씨가 교실에 둔 책이 없어지는가 하면, 필기 노트도 사라지곤 했다. 없어진 책과 노트에는 중요한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을 뿐 아니라 주요 내용을 정리한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그렇게 사라진 책과 노트가 한 두 권이 아니었다.
여러 번 없어진 뒤로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사물함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래도 없어졌다. 아침에 교실에 도착하면, 사물함 '도어키'는 풀어져 있었다. 결국, 정 씨는 필기노트가 사라지는 것을 상수(常數)로 생각해야 했다. 필기한 노트를 복사해 따로 보관해두는 방법을 택했다.
팍팍한 학교생활이었지만 나름의 재미도 찾았다. 학교는 추운 겨울날에도 온풍기 가동을 최소한으로 한정했다. 전기료 때문이었다. 게다가 개인 온풍기는 화재 위험 때문에 금지됐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데도 특정시간만 되면 곧바로 온풍기가 꺼지다 보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자구책으로 학생들이 학교 온풍기 시스템 제어권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도 온풍기가 운영되게끔 했다.
'아침 기상나팔'도 마찬가지였다. 4인 1실로 된 기숙사 방에는 소형 스피커가 있는데, 학교에서는 이를 통해 간단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스피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침 기상시간에 울리는 군대 팡파르도 스피커를 조작해 거의 들리지 않도록 했다. 그러다 선생이 오면 다시 키우는 식이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여전히 존재하는 대졸과 고졸 간 차별
정 씨는 그런 노력에도 졸업 후, 다른 친구들이 가는 공기업 내지 대기업에는 가지 않았다.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사 초기에는 나이에 비해 많은 돈을 벌수 있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조직 속 하나의 부속품이 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대기업에서는 하나의 일만 배우고 그 일만 계속하는 식이라고는 이야기를 들었다.
좀더 다양한 일을 배우고 싶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지금은 많은 일을 배우고 연마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자기가 조직을 선택하지 않나. 내가 조직에 읍소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내게 읍소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
대기업 내 고졸과 대졸 간 차별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이스터고 졸업 후, 각종 대기업에서 일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일은 똑같이 해도 대졸과의 연봉 차별은 상당했다.
고졸은 일을 잘해도 조직의 필요에 따라 가장 먼저 부서 이동을 해야 했다. 설계가공을 잘하는 친구를 사무직으로 보내는가 하면, 전기전자를 전공한 친구를 기계 쪽으로 보내는 식이었다. 조직의 논리에 따라 사람이 배치되는 구조였다. 거기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직원은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간접적으로 지켜본 정 씨가 대기업을 마뜩잖게 보는 건 당연했다. 지금의 IT회사를 택한 이유다. 건물 설계도 등으로 50년 후 미래 건물 모습을 예측하는, 즉 공학 기술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하는 솔루션회사다. 건물 설계도를 분석, 시뮬레이션을 돌려 지진, 바람 등에 얼마나 안전한지, 어떻게 해야 최적의 설계를 하는지를 예측하는 회사다.
여기에서 정 씨가 맡은 일은 '의료솔루션'. 사람의 뇌를 스캔한 뒤, 이를 통해 이 사람이 미래에 알츠하이머에 걸릴지 등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워낙 전문성을 요하기에 일은 쉽지 않다.
고졸 출신은 이 회사에서 정 씨외 10명이다. 대졸은 기본이고 석사·박사 과정을 밟은 이들도 상당하다. 그런 회사에 정 씨가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지금 회사 대표의 강연을 우연히 들은 게 계기였다. 대표의 비전과 생각이 매우 괜찮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이곳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회사에서는 경연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무작정 지원을 했고 우연인지 행운인지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자 임원들이 놀라워했다. 이 대회는 대학 졸업자 내지 석·박사들이 응시했다. 고졸은 정 씨 하나뿐이었다. 상은 받지 못했지만, 정 씨를 좋게 본 회사는 그를 특채로 뽑았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서 일한 지는 1년이 조금 넘었다. 3년 일한 뒤에는 재직 전형으로 대학에 갈 계획이다. 물론, 회사도 그대로 다닐 예정이다. 주말에 몰아서 수업이 진행된다.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아는 그였다.
MB가 만든 마이스터
마이스터고. 미래의 명장을 기른다는 명분으로 MB정부인 2010년에 만들어졌다. 특성화고 중에 정부에서 선별한 학교다. 바이오, 반도체, 자동차, 전자, 기계, 로봇, 통신, 조선, 항공, 에너지, 철강, 해양 등 다양한 기술 분야의 학교들이 포진해 있다.
MB정부에서는 마이스터고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5년 동안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여한 학교는 마이스터고 뿐이었다. 정부는 마이스터고 졸업생의 취업 강화를 위해 일선 특성화고와 예산도 차등했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취업률이 높은 마이스터고는 학교당 평균 82억여 원을 지원받은 반면, 특성화고는 36억여 원에 그쳤다.
자연히 중학교 졸업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마이스터를 입학했고 그에 따라 좋은 인력도 갖추게 됐다. 그 결과일까. 기업들도 마이스터고 졸업생을 유치하려 혈안됐다. 대기업과 공기업은 좀 덜하지만 여타 기업들은 앞다퉈 학생 유치에 나서는 형국이다. 2016년 2학기 기준으로 전국 43개의 마이스터 학교와 산학협약을 맺은 기업수는 4403개다. 마이스터 학교 1개당 100개의 기업과 협약을 맺은 셈이다. 특성화고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기업수다.
그렇다 보니 취업률은 매우 높다. 2013년 마이스터 첫 졸업생 3400여 명 중 90% 이상이 대기업 등에 취업한 이래 이 수치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특성화고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50.8%인 반면, 마이스터고는 93%를 기록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간 격차는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모 특성화고 교사는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진 뒤, 우리 학교에서는 공기업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삼성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학생들 대부분이 '해도 안 된다'는 열패감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이러한 구조가 된 배경을 두고 "상위에 있는 아이들이 전부 마이스터에 들어가다 보니 차순위 애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오는 식"이라며 "그렇다 보니 기업 등에서는 마이스터고 출신을 더 선호한다. 게다가 재정 등이 마이스터고에 집중되다보니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계고의 경우, 특목고와 서열화가 되는 것처럼, 특성화고는 마이스터고와 서열화 돼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열악한 노동환경, 즉 질 나쁜 일자리는 특성화고로 몰리는 식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