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가 지난 4월 구매계약을 체결한 100억 원대 규모의 혈액백 사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진행 중인 670억 원대 규모의 면역진단시스템 공개입찰을 둘러싼 불공정 의혹에 이어 적십자사의 구매 입찰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적십자사, 혈액백 평가에 자의적 기준 적용"
건강세상네트워크(공동대표 강주성, 김준성)는 8일 성명을 내고 "적십자사는 입찰에 참가한 업체의 혈액백 평가를 입찰공고와는 다르게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며 "빠른 시일 내에 이에 대한 법적인 문제와 아울러 입찰 전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혈액백은 헌혈자에게 채혈한 혈액을 담는 용기로, 적십자사는 매년 혈액백 구매 입찰을 통해 제품을 구매해왔다. 이번 구매 입찰에는 녹십자 MS와 올해 처음으로 한국 시장 진출 의사를 밝힌 독일계 다국적 기업인 프레지니우스 카비(Fresenius Kabi)가 참여했다. 지난 4월 녹십자 MS가 최종 선정되고, 프레지니우스 카비는 탈락했으나, 프레지니우스 카비 측에서 입찰 결과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녹십자는 지난 30년간 적십자사에 혈액백을 사실상 독점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혈액백 안전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나라는 적십자사에서만 일 년에 200만 개 이상의 혈액백을 사용하는데 안전에 문제가 있다면 큰 문제로 수혈자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혈액백에 들어가 있는 포도당, 구연산 등 여러가지 혈액보존성분 중 '포도당 수치'를 검출하는 과정에서 적십자사가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 약전(USP)에 따라 제조된 혈액백(CPDA-1)은 특정 범위(30.33~33.50g/ℓ) 내에서 포도당 함량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이는 USP 기준에 따라 혈액백의 제조와 사용을 하는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동일하다. 이 기준치의 변화는 세균의 번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엄격히 다뤄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국내 학계나 해외 대부분의 혈액백 사용국은 포도당과 분리된 과당 전체량을 합산하는데 유독 적십자사는 과당을 불순물로 보고 제외시킴으로써 전체 포도당 함량이 미달된다는 이유를 들어 탈락시켰다"며 "입찰에 참여했다가 탈락한 회사의 혈액백은 USP 약전에 의해 엄격히 31.9g을 넣고 제조하여 이미 130여 개 국에서 사용하고 있을 뿐더러 국내에서도 식약처에 의해 허가된 제품"이라며 탈락업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적십자사 "법에서 정한 기준보다 강화된 자체 기준으로 평가한 것"
적십자사는 이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 하여야 하는 혈액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법에서 정한 기준 이상의 안전성을 도모하고자 더 강화된 우리 사 자체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적십자사는 "탈락업체는 '포도당 함량시험은 USP(환원당)시험법에 따라 하기로 공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HPLC(고속액체트로마토그래프)시험법으로 품질평가를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취지로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① 우리 사는 표준업무지침에 따라 품질평가를 한다고 공지하였을 뿐 USP검사법에 따라 품질평가를 한다고 공지한 사실이 없다는 점, ② HPLC 검사법은 USP에 의해 적법한 검사법으로 인정받는 검사법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의 품질평가는 잘못된 점이 없다"고 해명했다.
특히 포도당 함량에서 과당을 제외하는 것이 '자의적 기준'이라는 지적에 대해 적십자사는 "USP는 검출기준을 명확히 포도당(dextrose)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USP 총람에 의하면 각조에 기술된 검출방법 보다 향상된 검출방법을 대체안으로 인정하고 있는 바, USP 당정량법보다 향상된 검출 방법인 HPLC법으로 측정한 것은 USP의 기준에 적합한 검사"라고 해명했다.
적십자사는 "우리 사는 구입시점 뿐만 아니라 사용 중에도 혈액백 품질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2003년도 7월부터 현재까지 매월 HPLC법을 통해 혈액보존액 내 포도당 함량을 검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입찰공고 규격 변경, 국가계약법 위반...대통령이 개혁에 나서라"
한편,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면역진단시스템 재입찰과 관련해 "지난 주 면역시스템 재입찰 설명회(3일)에 참관했는데, 적십자사는 이날 설명회에서 어이없게도 이전 입찰공고문에도 없는 다른 기준과 조건을 새로 이야기면서 규격에 대한 설명이라고 언급했다"며 "이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서 국가계약법 위반을 대놓고 은폐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는 '재공고입찰 시에는 기한을 제외하고는 최초의 입찰에 부칠 때에 정한 가격 및 기타 조건을 변경할 수 없다'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20조를 정면 위반한 것"이라며 "이날 모든 회의내용이 녹취된 것이 있으니 이를 토대로 우리 단체의 자문변호사의 법적 의견을 첨부하여 곧바로 관할 감독 기관인 보건복지부에 법적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규격 변경'이라는 지적에 대해 적십자사는 "제안요청서 설명회에 타 업체도 참석을 하였지만 어느 업체도 본 재입찰에 대해 규격이 변경되었다고 얘기하는 업체는 없다. 다만, 이전 입찰에서 피씨엘이 제기한 소송이 기각되었으므로 다시 한번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해당 내용을 설명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그동안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라고 수없이 이야기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십자사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 보건복지부도 적십자사를 통제할 능력이 안 되는 걸로 판단된다"며 "그렇다면 이제는 적십자사 명예 회장으로 되어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십자사 개혁에 나서야 한다. 혈액사업은 다른 것도 아니고, 오직 국민들의 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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