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수년이 지나서 국민들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할 수도 있겠는데, 노회찬 전 의원이 기소된 이른바 '삼성 X파일 떡값검사 실명공개 사건'은 이렇다. 1997년 9월 경 당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학수 비서실장이 호텔 일식집에서 대선 자금 및 검찰 '떡값'을 의논한 내용이 담긴 파일(안기부 도청 녹취록)을 노 의원이 2005년 8월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폭로하였으며, 이를 통해 삼성 떡값 검사 7명을 포함하여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였다. 당시 한국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국민들의 분노가 치올랐다.
그러나 정작 폭로의 대상이 된 개인이나 삼성재벌, 검찰은 사실이 아닌데 명예훼손이 되었다거나 노 의원의 폭로가 면책특권의 범위에 들어가니 안 들어가니 하면서 초점 흐리기식 공세를 시작했고, 결국 그 폭로의 대상이 된 검찰이 '보도자료 배포와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행위'가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된다는 명분으로 노 전 의원을 기소하였다. 이 사건은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졌지만, 2009년 12월 고등법원에서는 두 가지 행위 모두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우리는 그 때 '그래도 사법부에 정의가 살아있구나'하는 한 가닥 위로를 느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검찰이 즉각 상고하였고 올해 5월 13일 '보도자료 배포는 무죄이지만, 인터넷 게재는 무죄가 아니다'라는 취지에서 항소심의 판결을 일부 파기하여 재심리하라는 결정을 하였다. 이에 대해 결국 고등법원은 노회찬 전 의원이 녹취록 일부를 보도자료로 배포한 것은 무죄이지만, 그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은 유죄로 판시한 것이다.
국민의 법정과 현실 법정의 괴리
나는 현실의 법정(이것은 단지 사법부의 법정만이 아니라 그것을 일부로 하는 기득권적인 통치질서, 정당질서, 국가질서 같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에서는 노회찬이 유죄가 되었지만 진정한 '국민의 법정'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무죄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의 구도는 사실 간단하며, 또 현재도 존재하는 현실이다. 이 삼성파일 사건은 우리 사회의 권력층, 즉 재벌권력과 언론권력 그리고 검찰권력이 어떻게 공모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으며, 굴지의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 회장이 본인의 수족인 이학수 등을 통해 검찰에 어떻게 뇌물을 제공하며 검찰은 그 뇌물을 받아가며 어떻게 '삼성의 법무팀'처럼 불법행위를 감싸왔는가, 그리고 언론권력은 이를 어떻게 '중매'하고 있는가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 준 사건이었다. 이런 류의 행위는 당연히 은밀하게 진행되므로 그 전모를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계기에--안기부의 도청 녹취록이 노 의원과 같은 용감한 의원에 의해 입수되는 어떤 계기--에 이러한 은밀한 공모가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이 노 전 의원의 용감한 폭로에 의해서 국민의 법정에 부의되었지만, 그 이후 과정은 다시 통상적인 과정을 밟았다. 즉 '검은 유착'의 주체로 등장하는 당사자들은 스스로의 명예훼손, 폭로된 문건의 입수경위와 그것의 신뢰성, 폭로행위의 정당성 등을 문제 삼았고, 그때부터 용감한 폭로를 수행한 사람에게는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당사자들은 전혀 현실법정에서 처벌받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도, 뇌물수수 검사들과 삼성은 어느 누구도 자신이 지은 죄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반면에, 공익을 위해 삼성재벌과 검찰의 검은 유착관계를 폭로한 노회찬 전 의원은 긴 재판의 고통을 거쳐야 했으며, 이제 유죄판결과 차기 총선 출마가 금지당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형벌이 주어졌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
▲ 노회찬 전 의원. ⓒ프레시안(자료사진) |
정작 죄로 인해 벌을 받아야 하는 인물들은 전혀 사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죄를 폭로한 인물이 벌을 받는 역설적 현실이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에서만큼은 최소한, 사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죄를 지은 사람과 이를 고발한 사람을 정반대로 대우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 전 의원이 이야기한 것처럼,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것을 이 사건에서도 예외없이 확인할 수 있다.
떡값을 준 사람, 떡값을 받은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고, 그것을 보도한 기자와 그것을 국민에게 알린 노회찬 전 의원에게는 거대한 시련이 주어지는 그런 현실법정은 바로 그 불의한 현실을 지켜주는 보루가 되고, 그로 인해 그렇게 불의한 현실은 손상받지 않은 채로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국회의원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힘을 가진 사람도 좌절하게 만드는 구조 앞에서 한갓 시민이라는 이름만을 가진 사람들은 좌절하고 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현실은 유지된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은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라고 질타한 바 있다.
나는 이런 현실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민의 법정'과 현실법정간의 괴리 때문에 국민들이 현실법정에 대해 분노를 갖고 저항하고 개혁을 요구하게 되고 그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는 발전해왔고 한국사회는 진보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타깝다. 왜냐하면, 그 괴리로 인해 '불의로 고통받는 피해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바로 그렇게 불의로 피해받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 비루한 현실에 대해 저항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불의에 고통받는 피해자들은 전태일이나 김상진처럼 자신을 적극적으로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현실법정의 모순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희생받는 사람도 있다. 노 전 의원은 바로 후자의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나는 불의에 고통받는 이 모든 피해자들이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체념하지 않고 행동하게 만드는 이 시대의 진정한 십자가들이라고 생각한다. 장자연 사건에서도 그랬고, 이문옥 감사관 사건에서도 그랬다.
보도자료는 무죄고 인터넷 배포는 유죄다?
나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 사건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과연 보도자료와 인터넷 배포를 구분하여 유무죄를 논하는 것이 타당한가. 도대체 보도자료 배포행위는 국회의원의 헌법상의 면책특권의 대상이 되는데 반해서, 그 보도자료를 인터넷에 올린 행위는 유죄라는 것이 일반 국민의 눈에서 납득될 수 있겠는가.
이번에 사법부는 "보도자료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행위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녹음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다른 경로를 통하여 그 대화의 내용을 알게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불법녹음이 이루어진 사정을 알면서 이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가 성립되고, 한편 이학수와 홍석현의 대화 시점은 8년 전의 일이므로 삼성 떡값검찰 명단 공개행위는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노회찬 전 의원이 검찰의 수사 촉구 목적으로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더라도 그 방법의 상당성이 없으므로 결국 형법상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다"는 판시하였다.
그러나 이는 의정활동이 국회방송으로 바로 중개되기도 하고 의정활동이 모두 의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되는 현재의 상황에 전혀 부응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 판결에서 사법부는, 1986년에 있었던 유성환 의원의 통일국시와 관련된 면책특권 관련 판례를 적용하여 보도자료의 홈페이지 게재행위를 면책특권 대상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본 것을 참조했다는 것도 구시대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제3자가 녹음해서 알려진 대화내용을 우연히 알게 된 경우 그와 같은 대화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것은 형법 법규 해석에 있어 과도한 유추라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구나 거대언론 사주와 거대재벌 2인자가 고위검사 중 누구에게 떡값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서 대화를 한 것을 '공적 관심'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도 전적으로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이는 노 전 의원이 이야기한 것처럼 "보도자료 배포가 국회의원 면책특권 범위에 포함된 것이 1992년이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도자료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범위에 포함되고 홈페이지 게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주지하다시피 이미 거의 모든 정부기관들도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홈페이지에 이를 올리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속한 대학들도 이런 일은 일상 중의 일상이다. 또 기업들은 홈페이지 이외에도 다양한 SNS를 통해 사내 소식을 알리는 시대다. 또 이미 스마트폰 가입자가 2000만명이 넘어서는 시대에, 보도자료 배포와 인터넷 배포를 구분해 유-무죄를 달리하는 판시하는 것 자체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파기환송심의 사법적 판결이 보편적 상식과 어긋나게 내려진 지금 이 시점에서도 나는, 죄는 불문에 붙여지고 오히려 죄를 용감하게 폭로한 노 전 의원이 벌을 받는 현실을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우리 사회 삼성권력이 힘이 막강하고, 검찰권력이 강하고, 언론권력이 강하더라도, 최소한 내 마음 속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궁극적으로 많은 국민들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짐을 진 노 전 의원에게 우리 모두가 깊은 부채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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