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과 초읽기에 들어간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낙관론이 커지고 있다. 남북한 정상이 올해에 "종전 선언"을 추진하고 미국 대통령이 종전을 가리켜 "축복"이라고 말한 것은 낙관론의 한 축을 이룬다. 또한 북한이 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동의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은 낙관론의 또 다른 축이다.
이러한 두 가지 축은 기존 외교 문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한반도 문제 협상 구도가 워낙 기존 상식과는 다른 형태로 전개되고 있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종전 선언에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먼저 종전 선언과 관련된 부분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올해에"라는 부사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모두 아우른 것인지, 아니면 둘을 분리해 종전 선언만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2일 "올해 안에 (목표로) 하는 것은 종전 선언"이라고 했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평화협정 체결은 거의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 설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이는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우선 추진한 뒤 비핵화 진전에 따라 평화협정 체결을 준비해 나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참여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세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는 '선 종전 선언, 후 평화협정'이 한미간의 합의된 것이냐는 질문이다. 당연히 합의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무현 정부 때에는 혼선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종전 선언을 평화협정의 예비 단계로 상정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동일한 것이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동상이몽이 1년 넘게 존재했고 종전 선언 아이디어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 설정하는 것"이라는 점에 북한도 동의했느냐는 질문이다. 종전 선언은 과거 10.4 선언에도 담겼고 이번 판문점 선언에서도 재확인되었기 때문에 남북한의 합의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화협정을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체결한다는 것은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는 북한의 오랜 주장이었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을 비핵화 마지막 단계로 미루는 것에 북한이 동의한 것인지는 확인을 필요로하는 문제이다.
끝으로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사이의 '낯선 기간'의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전협정을 바로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어려우므로 중간 단계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화협정은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고,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적대관계와 대립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그야말로 정치적 선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종전이라는 정치적 선언과 정전협정이라는 법적·제도적 장치 사이의 '불편한 동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평화협정 체결을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로 상정할 경우 '불편한 동거'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협상 동력이 떨어질 수 있고 종전 선언이 평화협정 체결을 뒤로 미루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경계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2단계 평화협정론에 기초해 1단계로 종전 선언보다는 한반도 기본, 혹은 잠정 평화협정 추진을 제안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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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CVID에 동의했나? CVID에 대한 의문도 가시지 않는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요구한 CVID는 "패전국"에게나 쓰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9.19 공동성명에는 '검증가능한'만 담겼다. 이처럼 CVID를 패전국에게나 씌우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간주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CVID를 수용키로 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핵심적인 관건은 두 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하나는 북한의 핵발전을 비롯한 '평화적 핵 이용' 문제이다. 과거에 네오콘이 CVID를 내세웠던 배경에는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도 불허하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북한이 격렬히 반대한 핵심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가 뭐냐는 질문에 "그건 간단하다.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담겼다. "완전한 비핵화"가 1992년에 채택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의미한다면,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는 보장하고 대신 북한은 핵무기와 핵물질은 물론이고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평화적 핵 이용을 불허하겠다는 CVID의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북한은 자체적으로 실험용 경수로도 만든 상황이다. 이에 따라 CVID가 북한의 경수로 폐기를 비롯한 평화적 핵 이용 권리의 부정까지 포함한다면, 비핵화 협상은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다. 반면 CVID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하면서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에 국한된다면, 북한이 CVID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는 미국의 핵 전략자산 문제이다. "완전한 비핵화"에 미국의 핵 투발 수단의 재배치와 전개 불허도 포함되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4월 29일 미국 방송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비핵화와 미군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를 연계하는 문제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분명히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나는 판문점 선언을 일련의 남북 간 이전 합의의 맥락에서 검토하고 있다. 1992년 남북한 공동선언을 보면 북한이 비핵화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남북한에 대한 것을 의미했다." 같은 날 랜달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차관보 역시 "향후 북미 협의에서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포함한 확장 억제는 논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그는 "확장 억제는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한에 국한된 것이지 미국의 의무 사항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취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략 자산 재배치 및 전개도 양해한 것일까? 또한 이러한 비핵화가 과연 공정하고 완전한 비핵화일까? '판문점 선언'에 담긴 "핵 없는 한반도" 정신에 부합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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