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나쁘지 않은 결과가 보장돼 있다고 본다"고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 이 전 장관 등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의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경제적 고도 성장"을 정권 차원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 전 장관은 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 주최 외교안보포럼 '2018 남북정상회담 평가와 북미정상회담 전망'에 참석해 한 기조 강연에서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 대북 특사단 접견에서 보여준 태도로 볼 때, 김정은은 상대방에 '맞춤형' 제안을 갖고 있었다"며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맞춤형 제안이 있는 게 아닌가"라고 전망했다. '맞춤형 제안'의 사례로는 "3월초 한국 대북 특사단이 방북했을 때 자신들(북한)이 알아서 먼저 '한미 군사훈련은 괜찮다'는 등 몇 가지 선행 조치를 했다"는 사실을 꼽았다.
이 전 장관은 이같은 전망을 근거로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최소한 실망하지 않을 만큼의 타결은 있을 것이라 본다"면서 "아주 성공적이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결과는 보장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이 전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전망 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인 판문점 선언의 이행 전망에 대해서도 "어느 때보다 이행 가능성이 높다"며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이 모두 합의 이행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분석에서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리 과제를 제시하고 그 과제를 점검해 나가는 목표지향적, '과제 점검형' 리더십을 갖고 있다"며 "이런 스타일(의 지도자상)은 자신이 제시한 과제, 자신이 합의한 목표가 있을 때는 가급적 실천하는 쪽에 익숙하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또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선언'에 대한 양 정상 간 합의는 사실상 오전에 이뤄졌고 이에 따라 오후의 '도보다리 산책' 대화에서는 "북미회담에 가기 전에 필요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서 "오전 회담에서 합의문이 (타결)됐다는 것의 의미는,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이른바 '정상 국가(normal state)' 지도자들이 하는 회담 방식, 즉 정상회담 전에 사전 조율에서 충분히 합의하는 방식에 익숙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의 리더십을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를 추동할 요인 중 하나로 꼽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보여준 평화 의지와 역량은 아무리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고, 북핵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까 대화로 해결할까 고민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결정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런 문재인·트럼프 리더십이 상수였다면, 그간 잘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변수로 김정은 리더십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의 리더십은 김정일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실용적·개방적이고 국제적 스탠더드(기준)를 추구하고 있고, 상당히 전략적 사고에 능하고 과감한 결단을 하는 리더십이라는 것이 올해 들어와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이 추구하는 북한 국가상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이런 (리더십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된다"며 "그러면 김정은이 추구하는 북한 국가상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경제적 번영을 최우선적 목표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김정일이 추구했던 것(강성대국)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감수하면서 그래도 핵무기를 보유하겠다. 경제제재는 당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하루 세 끼는 근근이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빈곤 속에서도 핵을 보유함으로써 미국에 대응해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며 "(반면) 김정은은 '핵무력 완성'을 주장하면서도 이 핵과 ICBM을 (경제적 보상과) 바꾸자는 것이다. '핵을 가지고 근근이 압박을 받으면서 살게 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핵을 포기시키는 대신 내가 새로운 국가 모델을 추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맞춰 달라'(고 미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것)"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분석은 이 전 장관이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낙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비핵화 시기 등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2020년) 내에 중요한 비핵화 조치들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많다"며 "북한은 계속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강조하고 있고 그 기간은 2016년에서 2020년까지로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와 일치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이고 그를 통한 경제 성장인 만큼 (비핵화 시기가) 길게 가면 '5개년 계획'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북한도 빠른 비핵화 일정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의) 북한은 신(新) 안전보장체제 수립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북미관계 정상화와 전통적 북중관계 복원을 통해 신 안전보장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북한 주민에게 '왜 우리가 핵을 포기하고 신 안전보장체제를 하느냐'는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경제 부국 달성'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능가하는 고도성장을 통해 경제 부국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즉 김정은의 전략적 결단의 바탕에는 고도성장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그러면서 "과거의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전제하면서 "이번 북미회담을 통해 비핵화 문제가 일정하게 해결되고 나면, 과거 지속적 도발행위자였던 북한이 오히려 한반도의 안보환경 개선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중국이 ('도광양회' 시절) 고도성장을 위해 주변 정세의 안정을 원한 것처럼, 김정은이 오히려 한반도 안보환경 개선을 원하며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완화에 관심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로는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문제까지 포함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과거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에서 도출된 동북아 다자안보 체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北, '핵 없는 신흥개발도상국' 노선 선택…美 국내 여론은 부정적일 것"
이 전 장관의 기조 강연에 이어 토론회 발제를 맡은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연 수석연구위원 역시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종료된 것"이라며 "김정은의 전략적 선택은 '핵을 가진 경제 빈국'과 '핵 없는 신흥개발도상국' 가운데 후자"라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판문점 선언의 순서가 '경제-안보-핵' 순으로 된 것은 "북한의 전략적 선택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대북 경제 인센티브 제공 내용을 우선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분석을 내놨다.
조 위원은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기될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핵실험장과 같은 '미래핵'과 가동 중인 '현재핵'은 포기해도 '과거핵'(이미 생산·배치된 핵무기 지칭)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의 사찰·검증이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다만 "북한의 핵무기는 군사적 무기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이기 때문에 억제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알고 있어야 효과가 존재한다. 때문에 비밀리에 핵물질이나 핵탄두를 보유해도 한미일이 이를 모르면 억제력으로서 역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핵사찰 과정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빼돌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의 국가이익 차원에서의 합리적 계산 결과가 어떻든,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미국 내 주류 여론의 반응은 "싸늘"할 것이라고 일부 전문가는 경고했다. 한국 보수진영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의 외신 기고 활동을 비난한 것과 비슷한 경향이 미국 주류 세력에서도 발현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 전문가인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토론에서, 현재 미국 여론을 주도하는 주류층에게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북미 정상회담'이 아니라 '트럼프-김정은 회담'"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미 주류의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둘 다 비정상적이고 잔인한 독재자(김정은)이며 미국 체제의 충동적 파괴자(트럼프)"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철저한 불신"으로 요약되는 "미국 주류의 즉자적 반응"은 "회담 실패와 '군사 옵션'으로의 복귀를 전망"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대북정책 스펙트럼으로 보면 핵 협상이나 억지(가 가능하다는) 보편론은 극소수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미·소나 미·중 간 작동해온 핵 억지(deterence)도 통하지 않으며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가 없이는 그 어떤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는 '북한 근본주의' 혹은 '북한 예외주의'가 절대 다수"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는 보수-진보를 막론한 미국 지식인층의 보편적 사고방식이라면서 "햇볕정책과 '페리 프로세스' 비판으로 정책 전문가의 이력을 시작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동북아의 나토(NATO)로 발전시킬 것' 등을 주장하는 빅터 차가 대표적이다. 빅터 차는 지난달 27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정상(summit) 다음에 올 것은 절벽(cliff)밖에 없다'는 저주에 가까운 말까지 했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미국(의 세계적) 패권'의 국내정치적 기반은 이미 붕괴했고, 그에 따라 한국 보수정부가 만든 한미 전략동맹의 기반도 붕괴됐다"고 주장하며 "보수든 진보든 미국 주류 전문가들에게는 기대할 게 없다. 이들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환상에서 깨도록 계몽해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내 여론과 함께, 중국·일본 등 주변국의 반응도 북미 정상회담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 결실을 거두기 위해선 일본·중국 변수의 원만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특히 북미 정상회담 국면에서 일본 정부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MRBM, IRBM) 등 자국의 이해 사안을 북미 회담 의제로 '끼워넣기'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즉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본토까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주요 경계 대상이자 협상 대상이지만, 미국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북한과 가까운 일본 입장에서는 MRBM·IRBM 문제까지 미국이 대신 해결해 주기를 바랄 것이라는 얘기다. 또 북미·한미 간 긴밀한 3각 대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본이 "한미일 3자 사전 협의체 복원"을 요구하며 뒷다리를 잡아챌 가능성도 있다고 조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조 위원은 "일본의 안보 우려는 충분히 이해하나, 일본 정부 요구를 북미회담 의제로 삼을 경우 비핵화 프로세스가 복잡하게 돼 문제 해결이 지연될 위험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은 '중국 변수'에 대해서는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와 비핵화를 환영하는 한편으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변화와 동아시아 지역 내 중국의 역할이 축소될 것에 대해서는 우려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히려 북한보다 중국이 주한미군 철수 등을 미국에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을 지적하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의 국내정치적 요인도 언급됐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다 잘 하는데 유일하게 못 하는게 정치"라며 "판문점 선언을 국회에서 비준받아야 하는데 야당을 공격만 해서는 안 된다. 해빙(解氷) 과정에 야당도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북미 회담 전망에 대해 일면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던 반면, 다소 비관적인 발언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수혁 의원(비례대표)은 토론회 축사에서 "제가 (수석대표로) 일할 때는 핵무기 자체가 아니라 핵물질·핵시설이 협상 대상이었는데, 최근에는 '핵무기를 완성했다'고 하니 (해결이)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며 "토론 발제문을 미리 읽어봤는데 '너무 장밋빛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