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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투표율이 금천보다 높았던 이유는?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6>가난한 이들에게 투표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 박원순

1. 강남의 높은 투표율, 금천의 낮은 투표율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은 투표율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 선거였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젊은층, 그리고 직장인층이 투표할 가능성이 높기에 이에 기댄 박원순 후보 진영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력을 기울였다. 투표일 며칠을 앞두고 박원순 후보 지지에 나선 안철수, 조국, 이외수, 공지영씨 등이 대중들에게 호소한 것도 '투표행동주의'였다.

투표 결과, 서울의 최종 투표율은 48.6%로 상당히 높았다. 그 중에서도 서초구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고, 금천구, 중랑구, 강북구 등 이른바 '가난한 지역'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 사실 강남 지역의 높은 투표율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보수교육감과 진보교육감의 대결구도가 명확했던 2008년 8월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강남 3구는 투표율이 가장 높은 상위 5개 지역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투표가 곧 정치적 선택과 직결되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강남 3구의 평균 투표율이 34%를 넘었고 강북·금천·관악구는 20%대에 불과했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도 서울시 전체 유권자 중 강남 3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6.2%이지만 평균 이상의 높은 투표율로 인해 실제 투표한 층 중 강남 3구의 비중은 17%에 이른다. 그리고 이 지역 나경원 후보의 득표율은 53.3%로 나타났다(서울시 전체의 득표율은 46.2%였다). 그 결과 나경원 후보에게 투표한 층 중 강남 3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9%에 이르렀다. 이렇듯 강남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보수) 후보를 위해 높은 투표율과 강력한 응집력을 보여왔고 그 효과는 상당했다.

잘사는 지역의 투표율이 높고, 그 결과 과대 대표되는 경향은 손낙구 씨가 동네별 집값과 투표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역대 투표 결과, 잘사는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높고 가난한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낮았다. 가난한 이들의 투표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정치가 자신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따라서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2. 투표할 명분을 주지 못한 박원순

가난한 동네의 낮은 투표율을 놓고 이들의 정치의식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투표장으로 향하도록 명분과 자극을 주지 못한 정치권, 특히 서민과 하층민을 대변하고 이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지 못한 진보 진영에 있다.

강남의 높은 투표율은 이들의 정치의식이 특별히 높아서라기 보다는 지켜야 할 것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서민들이 투표장으로 가지 않는 것은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삶이 변하고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 효능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샤츠슈나이더는 정치의 본질은 누가 싸움에 참여할 수 있고 누가 싸움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는가에 있다고 보았다. 가난한 서민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고 싸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보수정당에 맞서 진보를 표방한 정당의 역할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여 잘사는 이들이 과대 대표되는 기존의 갈등구조를 가난한 이들이 적극 대표되는 새로운 갈등구조로 바꾸어낼 때에만 변화도 가능하다. 이 점에서 박원순 후보가 가난한 서민들에게 투표할 이유를 주지 못한 것은 선거 결과와 별개로 매우 뼈아픈 부분이다. 상층 중심의 분배구조, 부동산 등과 같이 잘사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것들은 명확한 데 반해 가난한 서민들이 꿈꾸고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은 여전히 모호하다.

▲ 박원순 서울시장.ⓒ프레시안(최형락)

3. 기성세대의 높은 투표율과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

최근 젊은층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나 중장년층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낮은 투표율에 대해 이들의 게으름과 정치적 무관심만을 탓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투표할 명분, 열정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기성세대의 높은 투표율은 이들이 투표를 통해 지켜야 할 것들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 안정과 같은 가치의 측면일수도 있고 자신들이 누려왔던 안정된 경제 기반과 같은 이익의 측면일수도 있다. 현재 젊은층의 양극화 심화, 불공정하고 특권적인 지배 질서에 대한 반감, 분노는 뚜렷하다. 하지만 정치가 이들의 분노를 희망으로 전환시킬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한 그 분노는 흩어지거나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와 진보 진영은 젊은층의 분노와 절망을 새로운 열망으로 바꾸어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성질서에 반감이 뚜렷한 20대와 30대 중에서도 왜 박원순을 지지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층이 적지않다. 젊은 층의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 심판 때문에 투표를 한 것이지 박원순 후보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투표를 한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지금부터라도 이 층에게 왜 박원순인지, 왜 진보 세력인지에 대한 해답을 주어야 한다.

4. 세대투표의 이면에는 계급투표적 양상 뚜렷해

이번 선거가 외형상으로는 세대투표적 경향이 뚜렷했지만 그 이면에는 계층·계급투표적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 50대 이상의 중장년층과 비교해 40대 이하의 젊은층에서는 양극화 심화로 인한 생존의 위기, 재생산의 위기가 심각하다. 청년실업문제, 비정규직문제, 일을 하지만 늘상 빈곤에 시달리는 신빈곤 문제들이 집약된 층이 바로 20대와 30대이다. 이 층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교육기회와 취업기회가 달라지고 계층이 달라진다. 40대도 부동산 등 자산의 양극화, 소득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주거, 의료, 교육, 일자리 등에서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라는 인식, 언제든 서민층, 빈곤층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30대와 40대에서 계급투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데이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진보 개혁 세력 지지는 고학력, 고소득의 화이트칼라층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반해 저학력, 저소득의 서민층에서는 보수안정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확연했다. 하지만 아래 표와 같이 2010년 지방선거부터는 30대와 40대 내에서 고학력, 고소득의 중산층 못지않게 저학력, 저소득의 서민층에서 진보를 표방한 야권후보 지지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경제활동중심연령층에서 계급투표 경향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 문제는 바로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의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다.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한 가난한 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삶에서 일시적으로 패자가 되더라도 낙오되지 않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도록 할 때 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나설 것이다.


▲ ⓒ프레시안

5. 보수시장과 차별적인 진보시장의 사회경제적 비전을 보여주어야

가난한 서민 동네에서, 저학력, 저소득의 서민층에서, 그리고 양극화의 직접적 피해층인 40대 이하층에서 분노가 쌓이고 있지만 이 층의 투표율을 여전히 낮다. 보수 후보가 강남으로 표상되는 잘 사는 이들의 기득권을 지켜줄 것이라는 점은 명확한 반면 진보 후보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매우 모호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 즉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진보 후보가 어떻게 이들의 삶을 지켜주고 개선해낼지에 대한 비전과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이들의 낮은 투표율만을 욕할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자신을 지지해준 서민들의 삶이 과거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데 있다. 몇몇 정치개혁에 집중하면서 정작 중요한 서민들의 삶의 문제는 소홀히 했다. 적어도 대중들의 일상적인 삶에서는 진보대통령의 집권이 보수대통령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과정에서 박원순 후보 역시 진보시장의 차별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부동산문제, 복지문제 등 대중들의 삶과 직결된 많은 문제들에서 진보시장이 서민들의 삶에 어떤 기회를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움'이 구호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제 그 새로움의 내용을 채워나가야 할 때다. 잘사는 동네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줄 수 있는 보수 후보를 위해 투표참여에 적극적이듯 삶의 기회를 박탈당한 가난한 이들이, 그리고 젊은층들이 자신들의 삶의 변화에 대한 강력한 확신과 기대감을 가지고 진보 후보를 위해 투표장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대안을, 아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이들이게 투표할 명분과 자극을 주지 않고 이들의 투표불참을 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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