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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 마틴 루터킹, 오바마 그리고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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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 마틴 루터킹, 오바마 그리고 안철수

[기자의 눈] 선거일에 되새겨보는 로자 파크스 스토리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 대학원장이 박원순 후보를 응원하면서 언급한 로자 파크스는 단지 '참여의 상징'으로 국한시키긴 어려운 인물이다.

안 원장이 "변화를 이끌어낸 힘은 바로 작은 '행동'이었다"며 로자 파크스를 상찬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미국 현대사를 아예 뒤흔들었다. 그리고 지난 2005년 92세를 일기로 사망한 로자 파크스는 자신의 사후 3년이 지난 2008년 미국 44대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로자 파크스가 지킨 버스 좌석은 미국을 이렇게 바꿨다

인종차별을 다룬 하퍼 리의 유명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무대일 정도로 흑백 차별이 뿌리 깊었던 알라바마주의 몽고메리시 한 시내 버스에서 생긴 일이었다.

몽고메리 페어 백화점 점원이었던 로자 파크스라는 42세 흑인여성은 1955년 12월 1일 목요일 오후 6시가 좀 넘어 버스비를 내고 '흑인석'의 맨 앞줄 빈 의자에 앉았다.버스가 엠파이어 극장 앞 정류장에 섰을 땐 빈 자리가 없었고 백인 승객들이 차에 올랐다. 버스 기사는 로자 파크스를 비롯한 흑인 네 명에거 자리에서 일어나 백인들에게 좌석을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 미국 현대사를 상징하는 한장의 포스터다
1900년 몽고메리시는 버스 좌석에서 흑백 분리를 허용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미 합중국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이 조례는 몽고메리시에서 지켜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조례는 버스 기사나 차장에게 흑인 승객이 앉아야 할 자리를 지정하거나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는 권한까지 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로자 파크스는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나마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백인 운전 기사는 로자 파크스에게 손을 대는 대신 경찰을 불렀다. 로자 파크스는 흑백인종분리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벌금 10달러와 소송비용 4달러를 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시작이었다. 몽고메리(흑인)지위향상협회대표였던 흑인민권운동의 신예 마틴 루터 킹이 앞장섰다. 흑인들의 매주 월요일 버스타지 않기 운동은 381일간 계속됐다. 흑인들끼리의 카풀, 버스비만큼만 돈을 받는 흑인 운영 택시가 등장했고 4만에 가까운 흑인 노동자들은 걸어서 일터로 나갔다. 마틴 루터 킹의 집과 흑인 교회에는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로자 파크스와 그의 남편은 직장을 잃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1956년 6월 19일, 지방법원은 흑백분리를 규정한 몽고메리시의 조례가 수정헌법 14조를 위반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 해 11월 3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주내(州內) 운행 버스에서도 흑인석과 백인석을 나누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몽고메리의 승리는 간이 식당 좌석 분리와 고용차별 폐지를 주장한 1963년 버밍햄 운동과 워싱턴 D.C를 향한 도보 대행진으로 이어졌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이 이 때 나왔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CCP)회원이었던 로자 파크스가 함께 한 것은 물론이다.

Rosa sat, Martin walked, Obama run, our children…

▲ 로자 파크스, 마틴 루터 킹, 버락 오바마를 나란히 세운 포스터
흑인 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린 로자 파크스가 생애 후반부 누린 영예는 엄청나다. 미 행정부가 헌정할 수 있는 최고 예우인 대통령자유메달을 받았고 2005년 사망했을 때는 미 의회 로텐더홀에 명예안치됐다. 미국 역사상 서른번째, 흑인으로는 두번째, 여성으로는 첫번째 였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영결식에 로자 파크스의 영결식에 불참했다가 온갖 욕을 먹었지만, 미국 내외 모든 공공건물에 조기를 달라고 명령했다.

10월 유신이나 5.18이 젊은 세대들의 뇌리 속에서 급속도로 사라져 역사 속의 사건으로만 남는 한국처럼, 미국에서도 로자 파크스는 위인전의 인물로 남는 가 했지만 2008년 44대 대통령 선거 와중에서 부활했다.

"로자가 앉았기 때문에 마틴이 걸어갈 수 있었지, 마틴이 걸어갔기 때문에 오바마가 달릴 수 있었지, 오바마가 달리니 우리 아이들은 하늘을 날 수 있어 (Rosa sat so Martin could walk; Martin walked so Obama could run; Obama is running so our children can fly!)"라는 슬로건이 입에서 입으로, 이메일로, 티셔츠로 급속히 확산됐다.

1958년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가 앉았기 때문에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워싱턴으로 걸어서 행진했고, 그 행진으로 인해 45년 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됐고, 오바마가 당선 되면 흑인 아이들이 마지막 차별의 족쇄까지 끊고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피츠버그에 사는 19살 먹은 흑인 싱글 맘이 민주당 시당 간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인 것으로 알려진 이 슬로건은 노래(song for Obama)로 까지 만들어졌고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슬로건대로 오바마는 당선됐다.

로자 파크스 언급이 어색하지 않은 현실

안 원장의 편지 이후 "1950년대 미국 남부 로자 파크스를 어디다 갖다 대냐"고 비꼬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한국에는 유사 사례가 많다. 통근 버스에서 정규직 자리와 비정규직 자리가 분리 된 뉴스를 들어보지 않았나?)

"오바마 연설의 단골 소재인데 벤치 마킹이냐"는 앞서가는 분석도 있다. 물론 안 원장이 2008년 미 대선 슬로건을 알고 편지를 쓴 건 진 모를 일이다. 혹여 "박원순이 걸어서 안철수가 뛸 수 있고…"식의 스토리를 오버랩시키려는 의도를 안 원장이 갖고 있다면, 좀 우습긴 하다.

게다가 안 원장은 편지에서 "로자 파크스처럼 우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놓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선거는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은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수와 진보가 선거에서 제각기 경쟁하는 것은, 선거가 이뤄지는 세계 어디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피해야 할 일이 아니다. 안 원장의 말과 글에서 반복되는 이런 대목에선, 일각의 지적대로 '착한 이명박'의 색채가 언뜻언뜻 엿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개는 사탄에 속한 사람이다"는 얼빠진 목사 설교와 비슷한 "아무개는 평양시장이나 시킬 인물이다", "아무개는 북한과 말 안 해도 서로 통한다" 운운의 여당 지도부의 말 들으니 우리 아이들은 날아다니게 만들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앉고, 걸어야겠다 싶긴 하다.

마치 투표율 높아질까봐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고 열 손가락 펴고 인증샷 찍으면 아무개 선거 기호 빗대는 것이니 엄금한다는 선거관리위원회 보면 1950년 대 몽고메리 시 의회 생각도 나는 것이, 안 원장이 영 이상한 사례를 꼽은 것 같진 않다. 그러니 다들 투표는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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