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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스톤을 힘차게 던져라

[의제27 '시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담긴 두 가지 의미

독특한 선거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투표를 눈앞에 두고 돌아보면 네거티브 전략이 거의 대선급으로 이뤄졌다. 그래도 대선에선 후보검증이든 네거티브든 상당한 시간을 두고 진행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한 달여 동안 쉼없이 융단폭격이 가해졌다. 보수 세력으로서는 이번 선거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일 터다.

네거티브 전략이 겨냥하는 목표는 여러 가지다. 자기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목표는 물론 투표율이 승패에 결정적인만큼 정치적 불신을 부추겨 유권자를 투표장에 끌어 들이지 않으려는 또 다른 목표를 동시에 겨누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 투쟁 및 획득이라는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반사 이익에 따른 지지율 제고가 선거 전략의 타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자원 및 가치의 배분이라는 규범주의적 관점에서 네거티브는 정치적 환멸과 탈정치화를 획책하는 부정(否定)의 전략일 따름이다.

우리 정치의 복합구도

둘째,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3연전의 첫 번째 관문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이로 인한 '안철수 현상'과 '박원순 바람'으로 시작된 이번 선거는 2012년 판도라의 상자를 미리 열어버린 듯하다. 정당정치 대 시민정치, 거대 여당 대 연합 야당, 신자유주의 대 복지국가, 보수적 공론장 대 진보적 SNS 등 내년에 가시화될 일련의 구도들이 단숨에 현실화하고 또 모두 시험대 위에 올라섰다.

주목할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우리 정치의 복합 구도다. 보수 대 진보라는 기본 구도 위에 엘리트 대 시민, 기성 세대 대 젊은 세대, 물질적 가치 대 탈물질적 가치 등의 구도가 중층적으로 결합돼 있다. 구도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 해석 또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이번 선거의 기본틀을 제공한 안철수 현상의 경우 새로운 시민정치로 읽히기도 하고, 정치적 포퓰리즘로 해석되기도 한다.

양시론적 관점에서 이러한 상반된 해석 모두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갖는다. 기성 정당들이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사회 밖에서 시민사회가 스스로 세력화하려는 시민정치의 등장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 시민정치가 제도화되지 못할 경우 열광과 환멸의 반복으로서의 포퓰리즘의 위험을 갖고 있다는 진단 또한 수긍할 만하다.

상식의 정치로서의 시민정치

문제는 시민정치든 포퓰리즘이든 우리 정치가 놓인 구조적 자리다. 정보사회의 진전은 인터넷에 기반한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정체성의 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이 정체성의 정치는 엘리트 민주주의에 맞서는 '시민 민주주의'를 개화시킨다. 이 시민 민주주의는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정당의 노선과 정책보다 리더의 이미지와 스토리가, 정당과 시민 간의 일체감보다 리더와 시민 간의 일체감이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민정치의 등장은 대안적 정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정치의 본령을 이루는 자원 및 가치의 배분에 대한 의사결정을 더 이상 정당이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정의 영역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요구되듯이, 정치의 영역에선 정당과 사회단체 간에서의 리더십과 정책 개발, 그리고 의사소통의 새로운 거버넌스의 정치가 요청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냉전분단체제로부터 비롯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비대칭성은 시민정치의 부상을 가져온 또 다른 구조적 조건이다. 보수와 중도가 과잉대표화되고 진보가 과소대표화된 정치사회는 자연 시민사회와 끝없는 긴장을 유발해 왔고,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 특권에 대한 시민적 상식의 저항을 촉발시켜 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주체가 시민인만큼 엘리트의 의사결정 독점에 대한 시민적 요구와 저항은 당연하다.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현란한 네거티브가 진행돼 왔지만, 투표를 눈앞에 둔 현재 누가 정치적 특권을 누려 왔고 누가 시민적 상식을 위해 헌신해 왔는지를 말 그대로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시민정치란 특권의 정치에 대항하는 상식의 정치이며, 이번 선거는 엘리트 정치냐 시민 정치냐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 담긴 첫 번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한국사회

이번 선거에서 또 하나의 관심을 모은 것은 내년 대선 유력 후보들이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데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직접 유세에 참여해 나경원 후보를 지원했으며, 안철수 교수, 문재인 이사장, 손학규 대표 등 야권의 유력 주자들도 그 방식은 달랐으나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고 또 지원했다.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의 팽팽한 지지율에는 이들 리더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선거 유세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아쉬운 것은 두 후보 간 비전 및 정책의 차이가 과도한 네거티브로 인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상급식을 포함한 복지정책, 서민 주거정책,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수중보 문제를 포함한 환경정책, 그리고 서울시 채무 문제 등 여러 이슈들에서 두 후보의 정책은 날카로운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것들은 대체로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가시화된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 대 신사회민주주의적 복지정책 구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선거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 변동이다. 최근 세계사회는 지구적 '점령(occupy) 시위'가 보여주듯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변동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이 변동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감세, 유연화, 규제완화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소망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심판과 전망의 이중 과제

돌아보면 신자유주의냐 복지국가냐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부상해 온 담론 구도다. 보수 세력의 신자유주의론이 경제살리기, 선진일류국가, (기실 반서민적인) 친서민 중도실용 등 여러 버전으로 나타났다면, 진보 세력의 복지국가론은 촛불집회의 반신자유주의 요구에서 무상급식 논쟁을 거쳐 희망버스 운동을 통해 분배와 재분배의 정책 구상으로 구체화돼 왔다.

현실의 변화와 담론의 대응이라는 이러한 흐름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개혁 정치세력에게 부여된 이중 과제다. 그 하나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심판이라면, 다른 하나는 우리 미래에 걸맞은 민주적 복지국가의 구상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다.

아담 세보르스키에 따르면, 선거는 종이돌(paper stone)로 승패를 가리는 민주적 절차다. 종이돌이란 다름 아닌 투표용지다. 신자유주의에 종언을 고하고 민주적 복지국가를 여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차대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진보와 개혁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마땅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심판과 전망의 페이퍼 스톤을 힘차게 던져야 한다. 이번 선거에 담긴 두 번째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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