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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도 별로지만 나경원은 절대 안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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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원순도 별로지만 나경원은 절대 안돼, 왜냐면…"

[현장] 서울시장 D-2, '젊음의 거리' 홍대 앞 표심은…

하루 종일 하늘은 흐렸다. 간간히 흩날리는 빗방울을 머금은 뿌연 구름은 서울 전체의 대기를 감싸고 있었다. 바람이 갑자기 불었다. 방향은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웠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이틀 앞둔 24일의 풍경.

뚝 떨어진 기온에도 불구하고 이날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2호선 전철역 부근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홍익대 앞 상권이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한 월요일이었다. 그럼에도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유세차량 앞은 작은 흥분이 느껴졌다.

박원순 후보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었다. 홍익대 앞의 '걷고 싶은 거리'를 지나 유세차량이 있는 곳까지 오는 박 후보의 발걸음이 더딘 탓이었다. 한 번에 세 걸음을 채 나가지 못했다. 취재진의 열기 때문은 아니었다. 취재진들을 뚫고 박 후보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는 이들이 그의 걸음을 가로 막았다. 때로 "염치 없지만" 휴대폰을 꺼내 박 후보의 길을 막고 '인증샷'을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의 '연예인 길거리 데이트'를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박 후보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그들을 일일이 맞아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어줬다. 직접 다가갈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멀리서 "박원순이다" 서로 소곤소곤하며 박 후보를 '즐겼다.'

▲'드센' 취재진들을 뚫고 박 후보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는 이들이 그의 걸음을 가로 막았다. ⓒ연합뉴스

"정치하는 사람들 중 '깨끗'한 사람 있나? 정책 보고 찍겠다"

몇 대의 방송 카메라와 또 몇 대의 무거운 사진기를 제치고 박 후보와 악수를 한 이진경(20, 가명) 씨를 쫓아가 "박원순 후보 좋아해요?" 물었다. 대학생이라는 이 씨는 "그렇다"고 했다.

"그냥 친근하게 느껴져요. 나경원은 공부 못 한다고 구박하는 선생님 같은데, 박원순은 성적 가지고 뭐라 안 하는 아빠 같달까?"

젊은이들의 거리여서인지, 홍익대 앞은 확실히 박원순 후보에 대한 젊은층의 호감이 뚜렷이 보였다. 지난 여름까지 홍익대 앞에서 작은 가게를 했다는 박혜원(34) 씨도 "박원순 후보에게 꼭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박 씨는 "이번 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된 다음에 경제가 좋아지기는커녕 너무 먹고 살기 어려웠어요. 결국 가게 문도 닫았고요. 오세훈도, 나경원도 똑같은 사람들 아닌가요. 한나라당이 다시 시장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이번 선거는 야권을 찍으려 했다"는 박 씨에게 '1% 특권층 시민운동가'라는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물어봤다. 박 씨는 '쿨'했다.

"정치하는 사람 중에 사실 안 그런 사람 있나요?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떤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생각해요. 나한테 도움이 되냐, 안 되냐. 한나라당은 너무 잘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만 펴잖아요."

박 씨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남자 친구를 가리키며 "함께 투표소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먹고 살기 팍팍한 현실이 젊은층으로 하여금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하고, 박원순 후보가 그 '기대'를 적절히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돌이 갓 지났다"는 아이를 안고 나왔다 잠시 유세를 구경하던 30대의 한 여성도 "다른 것보다 누가 더 먹고 살기 편하게 해 줄 사람인지 찾고 있다"고 했다.

나경원 지지자들은 '막상막하' 박빙 예측 vs. 박원순 지지자는 '이길 것' 확신

세대별 선호도 차이는 확연히 느껴졌다. 본인을 '68학번'이라고 밝힌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김옥분(64, 가명) 씨는 "비밀 투표니까 누구 찍을 건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박 후보와 함께 유세차에 올랐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를 가리키며 기자에게 "저 사람 누구더라"고 묻던 김 씨였다.

"마음은 이미 정했다"는 김 씨에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박원순 지지 선언' 효과를 예측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씨는 "박원순 지지율이 올라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김 씨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말야, 국립대 교수가 그래도 되나?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면서 공정해야지 어느 한쪽을 그렇게 편파적으로 지지하고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안철수 교수의 박원순 지지 선언이 못 마땅하다는 뉘앙스였다. '누가 될 것 같냐'는 질문에 김 씨는 "모르겠다. 진짜 막상막하인 것 같다"고 답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미용실을 한다는 남미자(60, 가명) 씨도 "박원순이 대기업에서 돈 많이 받았다던데 돈 받아서 잘못된 사람 많다"고 했다. 남 씨는 "가만히 돌아보면 그런 짓 하는 사람들은 죄다 남자들이었다"며 "이번엔 여자가 한 번 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재밌는 것은 남 씨의 다음 말이었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 절대 안 뽑아."

실제 '나경원 후보를 지지한다'는 남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연합뉴스

요식업을 하는 김정남 씨(49, 가명)는 "아빠도 사학 재벌이고, 어렸을 때부터 버스 한 번 안 타 봤을 공주님이 무슨 서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냐"며 "박원순 찍겠다"고 했다. 그런데 "박원순 씨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고 곧이어 말했다.

"박원순이 남의 돈 가져다 좋은 일만 했지 제 손으로 돈이라도 한 번 벌어봤나요. 솔직히 안철수 아니었으면 이만큼도 안 됐을 걸. 난 안철수가 나왔으면 했는데 박원순이 욕심 부려서 뺏은 거죠. 그래도 박원순 찍을 거예요. 나경원은 절대 안 돼."

특별히 지지 정당은 없다는 김 씨에게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나온다면?'이라고 물었다. 김 씨는 "대선은 안철수 안 찍는다"고 했다. "박근혜한테 투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유를 물었다.

"서울시장은 몰라도 대통령은 '정치인'이 해야해요. 대화도 하고, 갈등도 좀 풀고. 그런 걸 무시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지금 앉아 있으니까 나라가 이 모양이지. CEO 출신 대통령은 안 되요. 이명박 대통령만 봐도 '정치는 니들이 알아서 해, 나는 몰라'라는 식이잖아. 비정치인이 대통령 되면 똑같을 걸. 박근혜 씨는 그래도 대화는 열심히 하잖아요."

"무상급식은 빨갱이 얘기"라던 한나라 지지층도 "나경원은 서민 아픔 몰라"

김 씨는 "단계적으로 하자는 오세훈 말도 맞고, 복지가 중요하다는 야권 말도 맞아서 주민투표는 '기권'했다"고 했다. 김 씨 같은 '무당파' 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조차 나경원 후보에 대해서는 '비호감'을 내보이는 분위기도 읽혔다. 서울 강북권에 살고 있다는 택시기사 이진명(61) 씨는 "이번 선거는 투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박원순 후보가 싫은 이유는 길었다.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박원순이를 미는 단체들 가운데 일부가 종북세력들 아닌가? 그 사람들이 지지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천안함에 대해 얘기하는 걸 보고 마음을 접었어요. 천안함이 북한이 한 게 아니라면 대체 누가 했단 말입니까. 자기 자식이 거기서 죽었어도 박원순이가 그렇게 얘기했을까요?"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다는 이 씨는 "요즘 젊은이들은 반공 의식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원순이가 군대도 제대로 안 갔다 와서 더 그렇다"고 이 씨는 혀를 찼다.(실제 박 후보는 8개월간 군복무를 했다. 편집자)

이 씨는 지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도 참여했었다. "무상급식은 세상 물정 모르는 좌파들 얘기"라며 혀를 찼다. 그런데 나경원 후보에게 투표하지는 않겠단다. 이유를 물어봤다. 대답이 간단했다.

"상위 1% 사람이잖아. 재산도 엄청나게 많고. 서민의 아픔을 알겠어요?"

"나경원 싫지만, 박원순도 '내 편'으로 안 느껴져"

이 씨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대학원생 송영은(31, 가명) 씨도 "이번에는 찍고 싶은 사람이 솔직히 없다"고 했다. "평소 주로 야권을 지지해 왔다"는 송 씨였지만, "박원순 후보는 어쩐지 마음이 안 간다"고 했다.

송영은 씨는 "물론 그동안도 100% 마음에 드는 사람만 찍었던 건 아니지만 어쩐지 박원순 후보는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을 해 오면서 고생을 많이 한 것처럼들 얘기하는데 알고 보면 박원순도 우리 사회의 '주류 인생' 아니냐"는 설명이 덧붙여 졌다. 박원순 후보가 얘기하는 '변화'가 내 비루한 현실을 바꿔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송 씨는 "나경원 후보의 1억 원 피부관리비도 기가 차지만, 등산 가면서 협찬 받고 전체 재산은 빚이 더 많다면서 해외에 그렇게 자주 나갔다는 박원순 후보도 '내 편'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설명했다. 송 씨는 "안철수 교수를 좋아하는데, 선거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박원순 후보가 자꾸 '안철수 나오라'고 여러 경로로 압박하는 것도 보기 싫었다"고 덧붙였다.

각기 다른 이유로 '투표하지 않겠다'는 두 사람이었지만 '누가 결국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는 "박원순"이라는 같은 답을 내놓았다. "젊은층 투표율이 높아야겠지만"이라는 조건 역시 같이 붙었다.

두 사람을 빼고도, 박원순 후보의 지지자들은 '박원순이 이길 것'이라 장담했고, 나경원 후보의 지지자들은 '아직 모르겠다'고 답하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전 선거에서 종종 보이던 한나라 지지층들의 자신감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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