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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상처 연평도의 꿈 "두 다리 뻗고 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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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 상처 연평도의 꿈 "두 다리 뻗고 자고 싶어요"

[현장] 남북정상회담 하루 앞둔 연평도 주민들의 기대는?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들어가면 맞닥뜨리는 연평도. 이 섬 북쪽 망향전망대에서는 시계(視界)가 좋을 때 북측 시멘트공장 연기가 보일 정도라고 한다.

연평도는 북한 황해도와 가깝고 NLL(북방한계선) 바로 밑에 있는 섬이라 북한 거주민이 많이 피난 왔던 섬이다. 반대로 말하면 국방의 전초기지를 담당하고 있는 중요한 섬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북한 부포리와는 불과 10km, 석도와는 고작 2.8km 떨어져 있다.

자연히 섬 내에는 군사시설이 즐비하다. 해변은 물론, 산등성이에도 온통 철망으로 둘러싸인 군사보호구역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북방한계선을 마주보고 있는 접경 지역이면서도 동시에 북한 해안포 진지를 지척에 두고 있는 섬이 연평도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그간 북한과 물리적 충돌이 자주 벌어졌다. 1999년 6월15일과 2002년 6월29일 2차례에 걸쳐 연평해전이 발생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1월23일에는 북한이 연평도 군부대와 민가에 150여발의 포격을 가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졌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당시 사건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그런 그들이 바라보는 남북정상회담은 어떨까. 역사적인 남북정상화담을 하루 앞둔 26일 연평도를 찾았다. 상처를 안고 있어서 평화가 절실한 그들은 어떤 생각일까.

▲ 연평도 곳곳에는 군사 통제구역이 자리 잡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복잡한 주민들의 심경

연평도 주민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주민들 중 상당수는 "하든 말든 상관없다"며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그나마 인터뷰에 응하는 주민들도 이번 정상회담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간 북한에 의해 겪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듯했다. 북한을 쉽게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음료수 장사를 하는 60대의 남성은 이번 회담을 두고 "해봐야 알지 않겠느냐"며 "워낙 북한이 미친 짓을 많이 하기에 결과가 나와 봐야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여객터미널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도 "먹고 사느라 바쁘다"며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내 삶이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그런 거로 세상이 바뀌고 평화가 찾아오는 거 봤느냐"고 꼬집었다.

연평도 인근 우도에서 군 복무 중인 박모(22) 일병도 "정상회담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 별다른 분위기는 없는 듯하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다만 박 일병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오면서 남북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 군 내부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이곳이 위험 지역인지라 자칫 위험에 처할 수 있어 늘 긴장했는데, 그런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사라진 건 사실이다.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온다면 좀 더 평화적인 분위기가 확대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포격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 둔 안평동 안보교육장. ⓒ프레시안(허환주)

평생의 고통..."어떻게 북한을 믿을 수 있나"

연평도에서 태어나서 자라온 고영선(79) 씨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회의적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종전선언을 한다고 하는데, 도통 그들(북한)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그동안 그들이 우리에게 해온 게 있는데, 어떻게 단 한 번 회담과 선언으로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나. 믿기 어려운 게 북한이다."

고 씨는 아직 2010년 11월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교회 장로였던 고 씨는 새로 교회에 부임하는 목사를 마중하러 선착장에 나가 있었다. 그때 갑자기 북한에서 폭격이 시작되면서 일대가 아수라장이 됐다고 한다. 마을이 폭격을 받으면서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나오는 것을 선착장에서 바라본 고 씨였다. 당시를 두고 고 씨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회상했다.

고 씨는 "당시 오려고 했던 목사님은 (북한 폭격에) 위험하다고 판단, 결국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뱃머리를 돌렸다"며 "아직도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고 씨는 "그간 6.25부터, 연평 1차·2차 해전, 거기에 포격까지 겪어야 했다"며 "그간 당한 게 너무 많기에 이번에 종전선언을 한다는 둥, 북핵을 동결하겠다고 하는 것 등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레시안(허환주)

"통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북측을 못 믿겠다는 반응 속에서 '그래도 이번에는...' 하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연평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연서(54) 씨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통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만 해도 두근거린다"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씨에게도 2010년 11월은 충격의 달이었다. 당시 김 씨는 섬 밖으로 피신을 나가 있었다. 그렇게 피신한 뒤, 돌아온 섬은 김 씨가 알던 섬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폭격이 쏟아질지 두려운 김 씨였다. 여기서 다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그때 이후부터는 밤에 잠잘 때, 창문도 못 열고 자는 김 씨다. 그렇기에 최근 다시 불어오는 평화분위기가 조심스럽지만 반갑다.

"식당에 오는 군인들은 (평화 분위기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TV를 보니 북한에서 핵시설도 폐기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반신반의하지만 (정상회담이) 잘 되어서 부디 두 다리 쭉 뻗고 잤으면 싶다."

연평도에서 어업을 하는 60대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새우와 꽂게 잡이를 위해 그물과 어구를 손질하던 그는 "다른 건 몰라도 회담에서 NLL까지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며 "서해 NLL은 꽃게 등이 매우 많은 어장임에도 우리는 가지 못 한다"고 답답함을 나타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연평도에 조기를 잡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그때만 해도 남한 어선은 북한 NLL까지 올라가 자유롭게 어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막힌 상황이다. 현재는 어업을 하다가도 북한군함이 회항 명령을 내리면 귀항해야만 한다. 야간조업도 근원적으로 차단돼 있다. 새우는 밤 시간대에 잘 잡히다 보니 어업 종사자에게는 답답한 노릇이다.

남북 분단의 쓰라린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연평도. 그에 따라 이곳 주민들의 가슴에도 지워지지 않는 멍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 남은 멍이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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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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