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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가? 진보에 투표하라

[의제27 '시선'] 자살률에 관련한 슬픈 진실

최근 경제학적 측면에서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다녔다.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망했기 때문에 한국도 복지를 늘리면 안된다는 보수 지식인들의 몰상식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유럽의 다양한 복지를 설명하는 자료를 포함시켰다. 2005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유럽의 복지형태를 술에 비유한 것을 인용하여 재미를 곁들여가며 설명했다.

프랑스와 독일로 대표되는 대륙국가의 복지는 샴페인처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사치스러운 맛이 있으나 고비용이 문제다.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로 대표되는 북유럽의 복지는 애피타이저로 마시는 술인 아쿠아빗(aquavit)처럼 가슴을 덮여주는 따뜻함이 녹아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로 대표되는 영어권 복지는 맥주처럼 소탈하지만 일부에게는 쓴 맛을 주는, 간단히 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제적이고 실용적 수단이다. 이태리와 스페인, 그리스로 대표되는 지중해 복지는 지역의 독한 술인 그라파(Grappa)나 아우조(Ouzo)처럼 지역주민에게는 필수적이지만 외부인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싫어하는데 과잉일 땐 치명적이라는 약점이 있다.

술과 복지를 연계하니 모두들 재미있어 해서, 필자의 세미나에 필수항목이 되었다. 유럽의 복지 중에서 지중해 복지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 한국의 복지보다 우월하다는 해설도 덧붙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분이 점잖게 물으셨다. '홍 교수, 그리스가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제일 낮은 국가인 것을 아나?'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얼버무리고 끝냈으나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OECD 국가 자살률 비교 (10만명당)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돌아와 자료를 찾아봤다. 실상은 이러했다. 연령 분포를 고려한 OECD 표준인구 10만명당 한국은 10만명당 21.5명이 자살했다. (표준화하지 않은 실제 2010년 현재자료는 31.2명이다.) 반면 그리스는 2.9명에 불과했다.

OECD에서 자살률과 관련한 또 다른 자료는 우리의 실상을 조금 더 드러내고 있다. 갤럽에서 삶의 만족도를 물어본 질문에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을 매긴 비율로 따진 국가별 순위에서도 한국은 거의 최저 수준이었다. 7 이상으로 만족하는 있는 사람은 31%에 불과했고, 슬로바키아, 폴란드, 포르투칼 그리고 일본과 함께 최하위그룹에 속해 있다. 그리고 자살률은 가장 높았다. 삶에 가장 만족하지 못하며, 그래서 자살률도 가장 높은 국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OECD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스를 비하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누구 책임인가?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동방의 아름다운 아침 햇살같은 나라가 어찌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단 말인가? 9월9일 <한겨레>에 조효제 교수는 미국의 연구를 인용해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놀라운 대답을 제공했다.

내용은 이랬다. 미국사회의 폭력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뉴욕대학의 제임스 길리건 교수는 최근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더 위험한가'(Why Some Politicians Are More Dangerous Than Others)라는 책을 발간했다. 길리건 교수가 발간한 이전의 책들이 모두 폭력에 관한 책이라는데서 알 수 있듯이, 길리건 교수는 그야말로 정신분석학의 대가일 뿐이었다. 그런데 미국 자료를 그림으로 그려보니 놀라운 현상이 보였다. 조효제 칼럼의 글을 빌려본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신의학자는 (살인률과 자살률을 합친) 치명적 전염성 살해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세 번의 시기가 모두 공화당 소속의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와 겹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또한 살해율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세 번의 시기가 민주당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겹친다는 점도 확인했다. 더 자세히 조사해 보니 미국 전체의 살해율이 공화당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늘기 시작해서 임기 말년쯤에 최고점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살해율이 줄기 시작해서 임기 말년쯤에 최저점에 도달하였다. 1900년 현재 미국에서 살인율·자살률을 합한 살해율은 10만명당 15.6명이었다. 그때부터 2007년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기간에 공화당 대통령들이 59년을 집권했는데 공화당 집권 기간을 통틀어 1900년과 비교해서 살해율의 순누적 증가분이 19.9명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대통령들이 집권한 48년 동안에는 살해율의 순누적 감소분이 18.3명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고, 민주당 대통령 집권기에는 살인과 자살이 훨씬 덜 발생했던 것이다. (한겨레, 조효제 칼럼 참조 : 바로가기)

길리건 교수 스스로 너무 놀라 이 결과가 과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따져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양한 조정을 해보아도 역시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길리건 교수의 해석은 이랬다. '어떤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의 방향이 여러 형태의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와 불평등을 조장하고 그 결과 실업률, 수치심, 모욕감이 높아지면 그 사회에선 필연적으로 살해율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정말 놀라운 결과였다. 그런데 조효제 교수의 칼럼에는 필자를 더 궁금하게 하는 구절이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의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미 2002년도부터 영국에서는 유사한 이론들이 제기되었다. 다음 웹사이트를 참조할 수 있다. (http://news.bbc.co.uk/2/hi/health/2263690.stm) 오스트레일리아의 연구는 보수당이 집권하면 노동당이 집권할 때보다 남자는 자살할 확률이 17% 높아지고, 여자는 40% 높아진다고 추정했다. 1901년에서 2000년 기간의 영국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만약 보수당이 집권하지 않았다면 3만5000명이 덜 자살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살률을 증가시켰는가?

이런 분석을 보니 한국의 자살률이 궁금했다. OECD 최고의 자살률이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와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민주정부 10년의 자료와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다. 그런데 평소 매우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 통계청의 인터넷 통계자료에서 자살률 추이를 찾기 힘들었다. (필자는 아직도 모르겠다. 필자가 못찾은 것인지, 아니면 통계청이 다른 자료와는 달리 자살률 통계는 찾기 어렵게 만들었는지.)

그런데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바로 얼마전 보건복지부에서 자살 방지를 위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보건복지부 보도자료에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했다. 왜 난데없이 10년전과 비교했을까? 그리고 최근의 추이는 보여주지 않을까? 아무튼 민주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자살률 비교를 위해 필자 스스로 자료를 모으는 수밖에 없었다.

통계청 사망원인 분석 각년도 자료에서 자살만 모아서 표를 만들었더니 다음과 같았다.


명백히 2008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2005년까지 상승하던 자살률이 2006년에 많이 줄었고 2007년에 다소 늘었지만 2005년 수준에 못미쳤다. 그랬던 자살률이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히 증가하여 2009년에는 마침내 31명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랬다. 쌍용차 파업후 2년 동안 17명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이 정부 들어 용산에서부터 부산 영도 조선소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괴물이 되었던가?

선택하라

우리 앞에 역사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2년 우리 앞에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질적인 차이가 있음이 통계적으로 드러났다. 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와 직결된다. 폐암을 퇴치하기 위해 담배를 끊어야 하듯 살해율을 낮추기 위해선 공화당을 평화적으로 끊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한겨레, 조효제 칼럼 재인용)

길리건 교수의 말이 뇌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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