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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실록! 속리산이 품은 옛 산성과 왕이 거닐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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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실록! 속리산이 품은 옛 산성과 왕이 거닐던 길

2018년 5월 두발로학교 <보은 삼년산성과 속리산 세조길 걷기>

*6월 두발로학교는 6월 16일(토) 열립니다. 이름난 옛길인 대관령옛길을 걷고 강릉 허난설헌기념관과 아름다운 솔밭을 거닌 후 6월의 푸른 동해바다를 만납니다. 기사는 5월 29일(화) 올리겠습니다^^

5월 신록 속에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제65강으로, 충북 보은으로 떠납니다. 보은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상주에서 청주로 가려면 반드시 보은을 거쳐야 했는데요. 보은에는 14개의 성터가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이곳에 난공불락의 요새가 버티고 있는데요. 그것이 삼년산성입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삼년산성은 우리나라 산성의 수작으로 꼽힙니다.

▲철옹성을 연상시키는 삼년산성Ⓒ진우석

삼년산성을 걸은 후에는 속세를 버리고 속리산으로 입산합니다. 속리산에는 세조길이 있는데요. 세조가 요양차 자신의 스승인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으로 순행 온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현재 법주사 매표소에서 세심정 갈림길까지 이어지지만, 복천암까지 걷고 내처 비로산장까지 둘러보는 게 좋습니다.

▲실록이 우거져 걷기 좋은 세조길Ⓒ보은군

진우석 교장선생님은 저명한 여행가이자 여행작가이십니다. 스스로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라 하며 ‘걷기 달인’, ‘길의 탐미주의자’로 통합니다. 히말라야, 카라코람, 알프스, 백두대간 등 국내외 굵직한 트레일을 걸었으며, <서울신문>에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연재를 시작으로 국내외 ‘날 것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으로 있으며, 삼성 SERICEO‧여행작가학교 등에서 여행강사로 활동합니다.

▲사내리캠핑장에서 법주사까지 오리숲길이 이어진다.Ⓒ보은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5월에 걷는 <보은 삼년산성과 속리산 세조길>에 대해 들어봅니다.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삼년산성은 이름조차 생소하다. 청주 상당산성, 단양 온달산성 등 유명한 산성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산성 연구자들은 삼년산성을 우리나라 산성의 걸작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산성이 있는데 삼년산성을 이처럼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삼년산성은 찾아가기 쉽다. 청원상주고속도로 보은 나들목으로 나와 새로 지은 보은군청을 찾으면 된다. 군청에서 19번 국도 건너편에 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모두 연결되는 청원상주고속도로 덕분에 보은은 예전처럼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분쯤 도로를 오르면 두 팔의 벌린 산성의 옹골찬 모습에 입이 쩍 벌어진다. 높이는 평균 15m, 최고 높이는 22m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폭은 8~10m. 둘레는 1.68㎞. 높이도 높지만, 두께가 보통 성곽의 두어 배가 된다. 산성 입구인 서문지에 이르면 산성의 웅장한 모습에 오금이 저린다.

산성의 정문 격인 서문은 아직 복원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성문은 안쪽으로 열리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밖으로 열린다고 한다. 서문지 앞에는 연못 흔적이 보인다. 이를 아미지(蛾眉池)라 하고, 연못 뒤의 암벽에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가 적혀 있다.

서문지에서 오른쪽 길을 잡아 성을 한 바퀴 돈다. 길은 성곽 아래로 이어지고, 튼튼해 보이는 성벽에 올라서니 둥그런 치성이다. 치성은 성에서 돌출시켜 적의 침입을 막는 구조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치성은 네모꼴을 이루지만, 삼년산성은 반원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산성은 보기에 안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게 된다.

치성에서 바라보면 앞의 성은 희고, 건너편 성은 검은색을 띠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새로 복원한 돌과 옛 돌의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서둘러 복원하면서 원래 신라인이 쓴 화강암과 좀 다른 돌을 썼다고 한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도 원래는 우물 정(井)자형으로 엇갈리며 성을 쌓았는데, 경제적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삼년산성은 1971년부터 아직도 복원 중이다. 현재 30%만 복원된 상태이고 원형대로 복원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치성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허물어진 성이 나타난다. 폐허의 모습은 봄 풍광과 어울려 묘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호서제일가람’ 현판이 걸린 속리산 법주사 일주문Ⓒ진우석

삼국통일의 거점이 된 삼년산성
삼년산성은 신라의 전진기지였다. 470년 신라 자비왕 때 완공됐다. 병사 3,000명이 3년 동안 쌓았다. 삼년산성이란 이름은 여기서 나왔다. 성을 쌓는데 화강암 약 1,000만 개가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엔 신라와 백제가 연합해 북의 고구려를 견제하던 시대다.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가장 국력이 약했다. 그래서 견고한 성이 필요했고, 그것이 삼년산성이다.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인 동문지를 지나면 산성에서 가장 높은 동북치성에 올라선다. 여기서 길은 다시 내리막길이다. 산성은 의외로 굴곡이 심한데, 그만큼 천혜의 요새였다는 반증이다. 삼년산성이 유명한 것은 성벽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문을 제외한 북문과 동문, 남문은 좁은 계곡에 성벽을 높게 쌓아 사다리를 놓고 출입했다. 동문은 문을 ‘ㄹ’자로 배치했다. 해서 쉽게 뚫을 수 없게 했다. 밖에만 돌을 쌓고 성 내부는 흙을 쌓아 만든 성이 대부분이었으나 삼년산성은 안팎을 다 돌로 쌓았다. 그야말로 삼년산성은 뚫을 수 없는 방패였다. 한번도 성을 함락시켰다는 기록이 없다.

신라 진흥왕은 삼년산성에서 출병,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죽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헌덕왕 때는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이 삼년산성에 진을 친 신라군에게 패해 진압됐다. 고려 태조도 삼년산성을 뺏으려다 크게 패했다. 또한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은 신라와 당나라의 국제회의를 삼년산성에서 연다. 신라와 손잡고 백제를 멸한 당나라의 한반도 침략 야욕을 싹부터 자르기 위해 철옹성을 택한 것이다. 서북치성을 넘으면 다시 서문지로 돌아오게 된다. 무너져 내린 성벽은 쓸쓸해 보이지만, 그 안에 서린 신라인의 기상은 성벽처럼 높고 위풍당당하다.

▲세조가 마음을 씻었던 복천암Ⓒ진우석

속(俗)을 버리고 불도에 입문한 속리산
우리나라 산 이름치고 속리산만큼 오묘한 뜻을 품은 산이 또 있을까. 속리산은 속(俗)을 버리고 불도에 입문한 산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란 고운 최치원의 시가 내려와 속리산은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속리산은 우리 땅 열세 개의 큰 산줄기 중 하나인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뻗어 내리며, 한강·금강·낙동강의 물길이 나뉘는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산이다. 산세는 한마디로 기골이 장대하다. 최고봉 천황봉, 문장대, 입석대 등 장대한 바위봉이 가득 솟구쳤다. 험준한 산세지만 그 품에 유순한 길을 품고 있는데, 그곳이 세조길이다.

사내리캠핑장에서 법주사까지 오리숲길이 이어진다. 10리가 안 되고 5리만 이어진다고 해서 오리숲길이다. 밑동 굵은 소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길이다.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 곡선을 그리는 소나무들은 성스럽게 느껴진다.


법주사 매표소를 지나면 ‘세조길 자연관찰로’ 안내판이 반긴다. 세조길의 시작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오리숲길은 봄의 붓질로 화려하다. 오리숲길의 종착점에 법주사가 있다. 관음봉, 문장대, 천황봉 등 우람한 주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속리산 최고의 명당자리다. 법주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이 창건했고, 776년(혜공왕 12년)에 진표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바뀌었다. ‘호서지방 제일가람’이란 별칭처럼 법주사 경내와 암자에는 국보 3점,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재 22점 등 수많은 문화재를 흩어져 있다.

▲속리산의 명물인 비로산장Ⓒ진우석

‘호서지방 제일가람’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 금강문과 천왕문을 연달아 지나면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을 만난다. 5층 건물인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탑이다. 팔상전이라는 이름은 팔상도를 모신 건물이라는 뜻이다.

팔상도는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부처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모습,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하는 모습,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모습, 녹야원에서 첫 설교를 하는 모습, 열반에 드는 모습 등 8장면이다. 그중 열반에 드는 모습이 너무 편안하게 보여 한참을 쳐다보게 한다.

이어 팔상전 뒤의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이 감상하고, 법주사의 중심 법당인 2층 대웅보전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올린다. 법주사 경내에는 원통보전, 석연지, 철당간, 무쇠솥, 마애여래의상 등 많은 유물들이 있으니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살펴보자.

법주사를 나와 다시 세조길을 잇는다. 세조길과 나란히 있는 도로는 예전부터 있던 길이다. 이 길은 주말이면 등산객과 부속 암자를 찾는 차량이 뒤엉켜서 혼잡함이 심했다. 이런 이유로 국립공원에서 새로운 탐방로로 세조길을 열었고, 덕분에 호젓한 숲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길은 계곡을 막아서 생긴 널찍한 저수지 옆을 따른다. 저수지 안에는 가을 하늘이 잠겨 있고, 물고기들이 살랑거린다. 휴게소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데크길이 이어진다. 수량이 적지만,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계곡으로 크고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있는 까닭이다. 귀를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물소리가 번뇌와 망상을 씻어주는 느낌이다.

이윽고 도착한 목욕소. 피부병을 얻은 세조 임금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가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목욕소를 지나면 세심정 입구에서 세조길은 끝난다. 그 지점부터 세조길 연장 공사가 한창이다. 세조길의 종착점은 세조가 다녀간 복천암으로 하는 것이 좋다.

세조가 마음의 병을 고친, 복천암
세심정휴게소를 지나 ‘이 뭣고 다리’를 건너면 복천암으로 들어선다. 복천암은 세조가 마음의 병을 고친 곳으로 알려졌다. 삼일을 기도하고, 삼일 신미대사의 설법을 들은 후 복천암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샘물을 떠 마셔본다. 달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왠지 복 받을 거 같아 벌컥벌컥 들이켠다.

복천암 입구 오른쪽으로 데크 길이 이어진다. 이정표도 없는 이 길이 복천암의 숨은 보물이다. 설렁설렁 이어진 오솔길을 십 분쯤 오르면 고갯마루에 이르는데, 여기에 신미대사와 그의 제자 수암화상의 승탑이 자리한다. 승탑 뒤 소나무 사이로 속리산의 우람한 암봉 능선이 보인다.

승탑에서 내려오면 산꾼들의 명소인 비로산장이 나온다. 계곡을 낀 산장은 주변으로 큰 바위들과 키 큰 나무가 어우러져 분위기가 그만이다. 고 김태환씨가 지은 개인 산장으로 52년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은 대를 이어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산장 마당에서 들어서면 무료로 녹차를 건네며 쉼터를 제공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산장을 바라보는 맛이 그윽하다. 밤새 계곡 물소리 들으며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난다.

두발로학교가 5월 19일(토) 걷는 제65강 <보은 삼년산성과 속리산 세조길>의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07:00 서울 출발(출발 시각 엄수합니다. 행락철의 교통체증과 중간탑승자의 불편을 고려하여 정시 출발하니 시간 꼭 지켜주세요^^ 0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65강 여는 모임
-삼년산성 입구 도착
-삼년산성 트레킹(약 3.5㎞. 2시간 소요)
-점심식사 겸 뒤풀이
-속리산으로 이동
-주차장~사내리캠핑장~오리숲길~법주사~세조길~복천암~비로산장~주차장(약 9㎞. 약 3시간 30분 소요)
16:30 서울로 향발(예정)
*현지 상황에 따라 코스가 축소‧변경될 수 있습니다.

▲<보은 삼년산성과 속리산 세조길> 걷기 지도ⓒ두발로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스틱, 모자, 식수, 선글라스,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자외선차단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함).
*환경 살리기의 작은 동행, 내 컵을 준비합시다(일회용 컵 사용 가급적 줄이기)^^

<참가신청 안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해 홈페이지로 들어오세요. 유사 '인문학습원'들이 있으니 검색에 착오없으시기 바라며, 반드시 인문학습원(huschool)을 확인하세요(기사에 전화번호, 웹주소, 참가비, 링크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이리 하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홈페이지에서 '학교소개'로 들어와 '두발로학교'를 찾으시면 5월 기사 뒷부분에 상세한 참가신청 안내가 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습원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참가하실 수 있는 여러 학교와 해외캠프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회원 가입하시고 메일 주소 남기시면 각 학교 개강과 해외캠프 프로그램 정보를 바로바로 배달해드립니다^^
★두발로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두발로학교를 여는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의 시대입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도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 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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