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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주술을 압도할 갑옷과 투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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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주술을 압도할 갑옷과 투구가 필요하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3>한국 보수의 무기, 더러운 전쟁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13세 박원순이 병역회피를 위해 작은 할아버지에게 양자 입양되었다는 시나리오를 사실인 양 유포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유도하고 조직한 그간의 박원순의 활동을 마치 검은 돈과 결탁된 것인 양 호도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는 천안함 사건과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며 구태의 색깔론을 동원하고 있다. 정책 선거 이면에서 극렬한 네거티브 총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특권계급의 대표인 한나라당의 이런 모습은 결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국 보수는 오랫동안 정치의 본질이 '그들'에 맞선 '우리'의 진지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에 있음을 매우 잘 알고, 실천해왔다. 그동안 한국 보수는 '선진화론', '일류 삼성론', '친기업=친서민론', '포퓰리즘론' 등을 한국 사회의 대표 상식으로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보수는 반대 세력을 '개인을 넘어선 집단', '주변부적 별종', '이율배반적 권력집단', '편가르기 집단', 그리고 마침내는 '반(反)대한민국 세력'으로 몰아가는데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보수의 대표 담론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산업화/민주화/선진화'를 거의 입버릇처럼 되뇔 정도로 자연스럽게 여기는 '선진화론'은 한국 현대사를 보수 세력이 주도한 성공의 역사로 정립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다. '선진화론'은 민주화의 과제조차도 김영삼 정부나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 세력에 의해 달성된 것으로 규정하려는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결코 사회통합의 논리가 될 수 없는 '선진화론'은 불행하게도 우리사회에서 이미 사회통합의 메시아가 된 듯하다.

다음으로, '일류삼성론'. 2000년대의 한국은 '삼성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삼성의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사회이다.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갖는 중요성에 관한 믿음은 너무나도 절대적이어서 편법 상속, 무노조주의, 기형적 지배구조 등과 관련한 어떠한 비판도 삼성 권위의 불가침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초일류 세계기업 삼성이 한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준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아예 '한 명의 천재가 십만 명의 대중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삼성이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담론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사실은 그 역의 담론들이 훨씬 더 진리에 가까운데도 말이다.

아울러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의 피해자는 오히려 서민'이 되고, '부자를 위한 정책이 곧 서민을 위한 정책'이 된다는, 놀라운 역전의 논리가 널리 유포될 정도로 '친기업'담론이 여전히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경제적 상상력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십여 년간의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 비정규직 노동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일자리와 소득을 보전하려면 기업을 도와주고 밀어줘야 한다는 기업 우위의 권력담론은 아직 강고하다.

▲ 한국 보수는 오랫동안 정치의 본질이 '그들'에 맞선 '우리'의 진지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에 있음을 매우 잘 알고, 실천해왔다. 사진은 서울시장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 ⓒ뉴시스

나아가 한국 보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의 요구를 포퓰리즘이라고 낙인찍음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 보수는 세계의 그 어떤 유력 백과사전이나 정치학 논문에서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대중영합주의'라는 말을 포퓰리즘의 참뜻으로 '특허'냈다. 그리고 그 특허로 정치, 경제, 복지, 사회, 문화, 외교, 국방 등 사회 전 영역에서의 시민들의 정당한 민주주의 요구들에 침묵과 굴종의 빨간 딱지를 남발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덧 대중적 상식과도 같은 것이 되어버린 위의 담론 이외에도, 한국 보수는 대다수 시민들을 포위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담론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들은 결코 허투루 반대세력을 비판하는 일이 없다. 비판은 거의 언제나 특정 개인을 포함하여 반대 집단 전체에 초점을 맞춘다. 다툼의 진정한 대상은 특정 야당 정치인도 아니고, 특정 대통령 도 아니며, 특정 정권도 아닌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 전체임을 각인하는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정도 한국 보수의 장점으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작업에는 근거 없이 부분을 전체로 침소봉대하는 '악의적 환유' 기법이 너무나도 자주 동원된다.

또한 한국 보수는 연륜이나 경험의 측면에서 자신들이 항상 우위에 있다는 위계적 차원에서 진보개혁 세력을 비판한다. 연륜이 풍부하고 실력이 뛰어난 자신들과는 달리, 진보개혁 세력은 '세상의 작동 원리를 알 턱이 없는 미숙한 아마추어', '운동권 3학년 수준', '정당 뒷골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살아온', '뚜렷한 직업이 없는 재야 활동가', '주변부적 별종'이다. 보수에게 진보개혁세력은 이처럼 아마추어적이고 주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떼쓰고', '비명 지르고', '잘 나가는 사람 발목만 잡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비정상적 타자이기도 하다.

아울러 한국 보수는 '이율배반적 권력집단'이라는 말로 진보개혁 세력의 도덕성을 직접 문제 삼는 일에도 매우 능숙하다. 진보개혁 인사들이 자신을 마치 도덕성의 화신인 권력과 자본의 도덕적 일탈을 비판하지만, 실상은 도덕적으로 전혀 나을 것이 없는 이중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단언이 그것이다. 외국어고와 같은 특목고 제도를 비판하면서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고, 미국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미국으로 관광가고 안식년을 가고 유학을 가는 이율배반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만들기'이다. '허수아비 만들기'는 상대방의 주장 중 즉각 반박 가능한 것만을 선택하여 이를 마치 상대방 주장의 모든 것인 양 오도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중동 전쟁이 석유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시위대에게, '그러는 너는 왜 자동차로 석유를 써가며 시위 장소에 왔냐?'고 트집 잡는 것과 같은 논리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논리는 한국 보수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나아가 한국 보수는 자신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거의 습관적으로 '친북좌파' 혹은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으로 규정하는 이념 과잉의 반응을 보인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 집회에서부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한미 FTA 반대 투쟁,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 등에 이르기까지,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을 북한의 선전선동과 연관된 불순 세력의 친북반미 이념 투쟁으로 몰아갔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옥죄었던 '빨갱이'라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 집단' 혹은 '반대한민국 세력'이라는 담론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입장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저주와 증오의 아들 딸', '거리의 세력', '친북좌파',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세력'으로 규정하는 한국 보수야말로 모든 사회적 논란에 반공주의를 덧씌우는 진정한 이념 세력이요 명실상부한 이념 집단이다. 더욱이, 한국 보수는 이처럼 스스로가 '우리'와 '그들'의 구분을 매우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개혁 세력을 '편 가르기 집단'으로 몰아 부치는 자가당착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탈근대 정치학자 상탈 무페가 말했듯이, 정치의 본령은 '그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구축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립은 자신과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민주주의를 향한 정당한 경쟁자로 보는 한 민주적 대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보수의 정치는 자신과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국가 정체성 위협 세력으로, 따라서 배제하고 절멸해야 할 '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다. 보수의 주술을 압도할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시민의 정치적 실천, 시민정치가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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