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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대통령에게 권한다…"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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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대통령에게 권한다…"아직 늦지 않았다"

[화제의 책] 샌드라 포스텔·브라이언 릭터의 <생명의 강>

1901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하천의 유량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홍수 때 불어난 물을 저장하기 위해 대규모 저수 사업이 필요하다."

이듬해 미 연방의회에서 '국토매립법'이 통과되면서, 미국 정부는 관개, 홍수 조절, 상수 공급을 목적으로 댐과 저수지를 무차별적으로 건설한다.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강바닥을 준설하고, 홍수 때 범람한 물을 가둘 수 있도록 제방도 쌓았다. 하천은 그렇게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변형됐다.

그로부터 무려 100여 년이 지난 2009년 6월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강을 결코 이대로 둘 수 없다!" "미래를 위해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지만, 임기 중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는 '대운하의 변종'이라 불리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는 유독 "더 이상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며 쐐기를 박았다.

이후 일 처리는 빛의 속도로 진행됐다. 최소 22조 원이 투입되는 '단군 이래 최대 토목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까지 뜯어 고치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어물쩍 넘어갔고,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설치하는 등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임에도 환경영향평가는 4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 <생명의 강>(샌드라 포스텔·브라이언 릭터 지음, 최동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 한 가지. 루스벨트가 대규모 하천 사업을 벌이고 채 100년이 지나지 않아, 콜로라도강에 글렌캐년댐 건설을 강력하게 옹호한 바 있던 배리 골드워터는 하천에 대한 '20세기 식 접근법'의 종결을 보여주는 의견을 내놓았다. 1997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그는 "만약 지금이라면 댐 건설에 반대할 것인가, 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변한다.

"이젠 반대할 겁니다. 댐을 세우면 잃을 게 너무 많아요."

1901년 루스벨트의 발언이 보여주는 것처럼, 20세기는 하천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통제를 확대하는 시대였다. 1950년부터 지구상에는 날마다 대형 댐이 두 개씩 건설됐고,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강바닥 가운데 60퍼센트가 각종 구조물에 의해 잘려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강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무분별한 하천 개조 사업이 남긴 생태학적 손실로 인해, 쌓았던 댐을 다시 허물거나 인간의 필요에만 맞췄던 수량 조절을 강 자체의 수요에도 맞추려는 '대전환'이 시작된 것. <생명의 강>(샌드라 포스텔·브라이언 릭터 지음, 최동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은 그러한 전환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하천 관리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물 관리 선진국' 사례를 통해 본 '21세기 형 하천 관리'

세계적인 물 정책 전문가 두 사람이 쓰고 한국의 물 정책 전문가가 옮긴 이 책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정작 4대강 사업에서 논의되지 못했던 '강 살리기'의 핵심 주제들을 물 관리 선진국의 경험을 토대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먼저 저자들은 강을 살리는 데는 수질이나 유량보다 자연의 물 흐름(유황)을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연적인 유황을 변형시켜 하천 유량을 일정하게 만들면, 하천의 생태적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 즉, 홍수기에는 많은 물이 흐르고 갈수기에는 모래톱이 드러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하천의 모습이고, 그것이 하천의 생태적 기능을 복원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범람원 이용에 따른 순수익이 관개 사업에 의한 순수익의 60배를 넘고, 자연 습지의 가치가 헥타르 당 연간 2만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책은 또 성공적인 강 살리기를 위해서는 기존의 행정 구역 중심의 관리 체계를 뛰어넘는 선진적인 '하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과학자와 환경운동가, 하천 관리자, 정책 입안자 등이 학문 분야와 직업적인 경계를 넘어 상호 협력하고, 인간과 강의 상호 의존 관계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한 하천 거버넌스의 원칙을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인간의 물 이용 욕구와 하천의 건강성 회복이라는 좀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지난한 협의와 토론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이 부재한 우리 사회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4대강 사업, 20세기 실패의 '철없는 반복'될까.

숱한 논란 속에도 4대강 사업의 최종 마스터플랜이 발표된 지 4개월 만에, 16개 공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거대한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한 대규모 준설 작업과 홍수 피해 예방을 명목으로 한 제방 쌓기, 다수의 보 설치…. 사업의 내용을 뜯어보면 100여 년 전 루스벨트의 그것과 놀랍도록 별반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200여 년에 걸쳐 댐과 제방을 쌓고 하천의 직선화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미국조차도, 20세기 말부터는 환경에 끼치는 손실을 우려해 이들 댐들을 철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에 20개, 1980년대에 91개, 1990년대에만 177개 댐이 철거됐다.

유독 대한민국만이 21세기의 와중에도 '20세기 형' 거대 토목 공사를 고집하고 있는 것. 풍부한 외국의 하천 관리 사례를 담은 이 책을 통해, 4대강 사업의 방향과 내용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책은 2003년 출간됐지만,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것만이 진정한 생명의 강'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은 마치 4대강 사업 논란에 빠질 우리 사회를 위해 미리 준비한 것처럼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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