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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동맹'의 나라, 노동자 생명은?

[서리풀 논평] 피해자만 보고서 열람? 속임수!

이 나라에서 삼성과 재벌의 힘은 도대체 얼마나 큰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대한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이하 '보고서') 공개가 막히는 과정을 보면 등골이 오싹하다. 실감이 잘 나지 않으면 인터넷 검색을 한 번 해보시라. 하나로 똘똘 뭉쳐 결론을 한쪽으로 몰고 가는 저 힘은 가공스럽다.

‘국가-대기업-언론' 복합체가 작동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들을 의인화하지 말고 세력으로 보자.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들은 가끔 동요하는 듯 보여도 거의 항상 다른 세력(힘)을 압도한다. 이번에도 이런 힘의 관계, 불평등하게 굳어진 균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이 있는 수원지법은 19일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고용노동부의 결정을 거부하고 삼성전자가 제기한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기다렸다는 듯 삼성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도 새로 행정소송을 냈다(☞관련 기사 : 삼성디스플레이도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차단' 행정소송).

국가의 한 구성원인 사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행정부 안에도 '동맹'의 한 구성원이 있으니 이들은 고용노동부와 시각이 다르다. 정보공개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그들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7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이 '보고서'가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영업 기밀이라 할 수 없고 단순히 작업 환경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내용이므로 공개해야 한다"는 고용노동부 의견을 뒤집은 것이다.

이 사태는 겉으로 보는 것처럼 과학과 기술, 산업이 아니라 권력(국가, 자본, 시민사회와 노동자)과 그 균형의 문제, 따라서 명백히 정치 문제로 해석해야 한다. 지난 12일 산업통상자원부 백운규 장관이 했다는 말을 보자.

"산업부 장관은 지난 12일 알 권리와 영업 기밀을 "균형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균형적 시각'을 내세웠지만, (…) 장관은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안전과 국민의 알 권리 등을 고민할 것이고 산업부는 국가의 기밀 사항을 고민해야 하는 부처"라며 "산업 기술이 외국이나 경쟁 업체에 유출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백운규 장관의 말은 '가이드라인'이 됐고, 산업부는 그 말을 실행했다."(☞관련 기사 : 삼성 앞에선 작아지는 文대통령의 '약속')

또 다른 중요한 정치 행위자, 언론은 산업부 장관만큼의 기계적 균형도 의식하지 않는다. 특히 경제 신문과 이른바 보수 논조의 신문들을 보라. 기사가 아니라 아예 선동을 쏟아내고, 마치 인공지능(AI)으로 쓴 듯 경제, 영업비밀, 해외 유출, 경쟁력, 국익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객관적 사실도 과학도 아닌, 허위와 과장의 이데올로기다.

너무 심한 말이라고? 한 경제신문이 뽑은 기사 제목(차라리 구호처럼 보인다)은 한국 재벌과 자본, 이와 결합한 언론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반도체 영업기밀' 지키려는 삼성뺏으려는 고용부기다리는 중국"(☞해당 기사 바로 가기). 어떤 구체적 사실, 논리, 인과관계도 보이지 않는다.

언론의 역할이 이번 보고서 공개 문제를 참견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의 관심은 개별 사안이나 기업을 넘어 체제에 이른다. '기업 환경' '산업계' '경제계' 등으로 표현하지만, 이들이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특정 체제를 지키자는 것이 아닐까?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기밀을 보호해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경쟁자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라는 것과 똑같다"며 "정보 공개 움직임이 산업계 전반에 퍼질까 봐 우려된다"고 했다."(☞관련 기사 : '알 권리 vs 기업 기밀'...재계 잇따른 정보 공개 요구에 근심).

이런 걱정을 하고 이런 기사를 쓰는 언론,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명시적으로 또 암묵적으로 그들은 결합해 있고 그래서 동맹이다.

"지난해 장 전 사장에게 각골난망(刻骨難忘·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 잊지 아니함)이란 표현을 써 논란이 됐던 문화일보의 광고국장은 "문화일보,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저희는 혈맹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관련 기사 : 삼성과 언론 유착, 여전히 침묵하는 언론)

서로 다른 권력(동맹)이 충돌하는 것으로 해석할 때, 지금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추라 할 수 있는 청와대와 대통령은 침묵 모드다(☞관련 기사 : 삼성 앞에선 작아지는 文대통령의 '약속'). 해석이 다른 두 부처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사법적 판단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기울어진 균형에 침묵하는 것은 그 불균형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닌가.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권력 또는 정치와 무관하게 삼성과 산업부, 사법부, 언론이 일말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 주장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비교적 균형을 맞추어 쓴 CBS 노컷뉴스의 김민재 기자의 기사를 소개한다(☞관련 기사 : 삼성 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노동자 목숨길 가로막나). 언필칭 그 진실은 권력이나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영업비밀 유출이라는 주장이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피해자만 보고서를 열람해야 하고 산재입증과 무관한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조금 길지만, 이 부분은 직접 인용해야 하겠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2010~2014년 기흥공장 보고서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 장당 50원씩 17만원을 내라고 했다. 보고서 분량이 무려 3660장이나 됐기 때문"이라며 "노출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 가짓수가 워낙 많고, 용어도 전문적이어서 단시간 열람만으로 유해성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보고서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온양·기흥·화성·평택 반도체공장과 구미 휴대전화공장을 아우른다. 기흥공장 사례에 비춰보면 그 분량은 수만장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가 관련 정보를 갖고 있더라도 산재 입증 책임이 피해노동자에게 지워지는 현 제도 상으로는 노동자가 제대로 산재 신청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강조한다. 피해자와 제3자를 나누어 보고서에 대한 접근을 허용/제한한다는 것은 속임수에 가깝다.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보고서(산재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보고 산재 신청을 하려는 것인데, 소송부터 하고 산재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열람하라니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산재라고 의심하는 것, 판단하는 것, 소송하는 것을 힘껏 막겠다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 공개와 접근권이 단지 사후 처리용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작업환경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누구나 알 수 있어야 기업과 노동자 모두 예방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한다. 도덕과 다짐,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해관계와 동기가 작동해야 현장이 바뀔 수 있다.

조금은 지루하게, 넓은 의미에서 정치와 운동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이번 기회에 고용노동부 장관을 '날려버리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믿지 못할) 풍문까지 들린다. 생명과 건강이,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행복이, 탐욕스러운 권력연합에 맞서기는커녕 바람 앞 등불 신세다.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약한 자들의 작은 힘을 모으는 연대의 방법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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