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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인사권, 최고사법위 신설해서 맡기자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10>]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1>] "대통령 개헌안, 일단 합격"...다음은?

['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 개헌안·<2>] 국무총리 제도의 딜레마

대법관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준 데서 알 수 있듯이 현행헌법은 법관 인사권, 나아가서 사법행정권이 전적으로 대법원장에게 속한다고 전제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권과 사법행정권 독점이 대법원장을 제왕적 존재로 만든 주범이다. 당연히 사법행정권, 특히 법관 인사권을 대법원장에서 떼어내 제3기관에 맡겨야만 제왕적 대법원장제 극복이 가능하다. 유감스럽게도 대통령 개헌안은 이 길을 가지 않았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그대로 놔뒀다.

개헌을 하지 않고 법원조직법과 대법원 규칙만 바꿔도 얼마든지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은 걸일까? 그랬다면 오판이다. 이 글은 대통령 개헌안으로 판단해볼 때 청와대는 제왕적 대법원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빈약하고 극복의지도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대안은 단순하다. 유럽의 절대다수 국가들이 채택한 최고사법평의회(supreme judicial council)을 신설해서 사법행정권(법관 인사권 포함)을 맡기는 방안이다. 물론 구체적인 인선방법과 구성절차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고 정답이 없다. 한국의 사법제도와 사법문화를 충분히 감안하여 잘 설계하면 된다.

사법관련 대통령 개헌안의 골자

-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부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잘못과 한계를 대부분 바로잡는 개헌안을 내놨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의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했다. 배심재판은 이미 법률로 도입됐지만 헌법이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만 인정하기 때문에(제27조1항) 지금까지는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력을 줄 수 없었다. 배심재판권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향후 배심평결에 구속력을 부여할 헌법의 근거를 마련했다.

- 법관 재임용제 폐지
둘째, 10년 주기 법관 재임용제도를 폐지했다. 1973년의 유신독재헌법은 소신파 법관을 길들일 목적으로 법관의 정년보장제를 폐기하고 법관의 10년 임기제와 재임용제도를 도입했다. 법관의 신분을 보장한 대통령 개헌안은 당연히 소신재판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한다. 그러나 동시에 신분 보장이 강화될수록 법관의 부정비리나 직무해태에 대한 통제방안은 강화되어야한다. 법관의 징계해임을 허용한 대통령 개헌안에 수긍하는 이유다. 다만, 제왕적 대법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자신이 신임하는 법관 중에서 징계위원 6인과 예비위원 4인을 위촉하는 현행법제(법관징계법 제4조)아래서는 징계해임 오남용 우려가 없지 않다. 최고사법평의회 같은 독립합의제기구에 법관징계권이 넘어가야만 법관징계해임이 대법원장의 독단에 좌우되지 않고 훨씬 공정한 과정을 밟을 수 있다.

- 군인, 군무원, 경찰의 국가손해배상청구 인정
셋째, 군인이나 군무원, 경찰공무원 등이 전투, 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해서도 법정 보상 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했다. 1973년 유신독재헌법을 만들면서 아예 헌법으로 금지시켰다. 법관 재임용제와 마찬가지로 45년 만에 유신헌법 이전상태로 되돌려놓는 셈이다. 72년10월의 친위쿠데타로 만든 장식헌법의 그늘이 그만큼 길게 드리워져있었다.

- 헌법재판관 자격요건 개방
넷째, 헌법재판관 요건에서 법관자격, 즉, 변호사자격을 삭제했다. 법학교수는 물론이고 고위관료, 국회의원, 외교관, 인문사회학자 등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대강화된 헌법조문의 시대적·사회적 가치와 정신을 밝히는 헌법재판에서는 정치철학과 법철학, 정치학과 경제학, 사회제도학과 사회심리학이 더 중요하지 법률지식이 더 중요하지 않다. 헌법재판관 자격의 개방으로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이 높아질 수 있게 됐다.

- 비상계엄하 단심군사재판 폐지
다섯째, 비상계엄 하의 단심군사재판을 폐지했다. 현행헌법(제110조4항)은 비상계엄아래서 군인과 군무원의 죄 중 법률로 정한 일부는 단심으로 끝낼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런 경우에도 사형이 선고되면 예외가 인정됐지만 3심제 예외규정은 인권을 경시했던 군부독재정권시절의 나쁜 헌법이자 더 이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외규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개헌안에 반영한 셈이다.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 전권, 왜 그대로 뒀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통령의 사법관련 개헌안은 모두 내용적으로 타당하고 꼭 필요하다. 문제는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손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대통령 개헌안도 종전처럼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제청권을 줌으로써 법관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대법원장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헌법상의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존치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최종선택을 내렸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개헌으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을 제3의 기관에게 주지 않고도 법원조직법과 법관징계법을 위시해서 관련법과 대법원규칙으로 탄탄히 쌓아올린 제왕적 대법원장의 성채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김명수 대법원장한테 어느 정도의 제왕적 권한이 있어야만 사법개혁을 진두지휘하며 사법부를 환골탈태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어느 쪽이건 엄중한 비판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와대도 법원행정처도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을 대체할 최고사법평의회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외국입법례의 최고사법평의회는 법관들이 직접 선출하는 법관위원이 과반수를 차지하긴 해도 대체로 의회선출 비법관위원 몫, 특히 시민위원 몫이 적지 않다. 나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국제인권법연구회소속 개혁성향 법관들이 일종의 법관순혈주의에 빠져 법관 인사와 사법행정의 정치화가능성을 지나치게 경계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컨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은 하위법령을 개정해서 얼마든지 형식적 권한으로 만들 수 있는 반면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을 제3기관으로 떼어낼 경우 배가 산으로 갈지 모른다는 법조중심주의적 우려를 함께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이 보유한 헌재재판관, 중앙선관위원, 감사위원 지명권을 대법관회의에 넘겨준 것도 이런 연장선으로 판단된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셀프추천, 허수아비 추천위

최근의 뉴스보도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 2,3인을 셀프추천한 후 그 중 하나를 제청해 온 기존 관행을 더 이상 잇지 않기로 결심하고 관련 대법원규칙 개정을 위한 입법예고에 돌입했다. 개정도마에 올라간 대법원규칙은 내가 보기에 제일 지독한 악법 중 하나다. 그 규칙에 따르면 대법관 자리에 공석이 생길 때 법원행정처는 일정기간을 두고 내외부에서 대법관 후보를 추천받는다. 처음에는 수십 명으로 시작하지만 검증절차를 거치며 십여 명으로 줄어든 명단을 추천위에 넘긴다. 그러나 대법원규칙에 따르면 추천위는 대법원장의 셀프추천 명단(공석1인당 2~3인)을 대법원장에게 최종 제출될 추천명단(공석1인당 2~3인)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추천위는 대법원장 리스트에 본인들의 선택으로 1명을 더 보태서 최종추천명단을 작성한다. 그런데 이들이 보탠 그 사람은 어차피 대법원장이 최종 선택하지 않는다. 완전히 셀프추천, 셀프제청이다. 이럴 거면 왜 법원행정처를 통해 공고하고 외부에서 추천을 받나. 왜 허수아비 추천위를 없애고 그냥 대법원장 본인이 염두에 둔 사람을 제청하면 될 것 아닌가.

역대 대법관들과 외부 추천위원들은 그동안 뭐 했나

역대급 쇼 진행절차를 버젓이 대법원규칙으로 정해놓고 수십 년간 고분고분 쇼를 진행해온 게 도대체 누군가. 역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아닌가. 이들은 그렇다 치자. 임기말년에 오면 모든 대법원은 선임대법관 자격으로 당연직 추천위원이 돼 한두 번씩 대법원장의 셀프추천 쇼를 직접 경험했을 터다. 그런데도 반세기 넘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셀프추천 악법이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규칙 제·개정권을 갖고 있는 대법관들은 악법의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하고도 일제히 입을 닫았다. 그만큼 대법관들도 제왕적 대법원장체제에 마비된 채 살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대법관들은 왜 뻔히 알면서 희대의 악법을 못 고쳤나. 이쯤 되면 대법관인지 소법관인지 헷갈린다.

대법원장의 셀프추천으로 완전히 들러리신세가 된 추천위원들도 입을 다물었다. 대한변협회장과 로스쿨원장연합회회장, 법대학장협의회대표가 그들이다. 그리고 대법원장이 위촉한 명색이 시민대표 3인씩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쟁쟁한 분들이지만 그동안 누구도 대법원장의 셀프추천과 자신들의 들러리 역할에 대해 글이나 인터뷰로 공분을 터뜨린 이가 없었다. 이유가 뭐든 사법부를 대법원장의 제국으로 만들어 바친 법관독립침해 공범자들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셀프추천 없애도 대법원장 영향력은 그대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입법예고한 부분은 바로 막판 셀프추천 요식행위를 없애겠다는 것. 우리법연구회장과 국제인권법연구회장을 거친 김 대법원장으로서는 당연한 조치다. 문제는 추천위 구성을 바꾸지 않은 점이다. 먼저 대법원장 프리미엄이 너무 강하다. 대법원규칙에 따르면 9인의 위원 중 판사 1명, 외부위원 3인, 총4인을 확실하게 대법원장이 뽑는다. 이런 구성에서는 대법원장이 선호하는 대법관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대법원은 뽑은 자와 뽑힌 자들의 합의기구가 된다. 다시 말해서 서로 대등한 13인13색 동료들의 합의기구가 되지 못한다.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의 구성과 운영절차의 대강은 너무나 중요해서 헌법사항이다. 대법관들이 대법원규칙으로 쉽게 바꿀 사안이 아니다. 추천위원 구성도 바꿔야한다. 지금의 구성에서는 빠져있지만 전국의 법관을 대표하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와 전국의 법원공무원을 대표하는 법원노조에는 반드시 위원선임권을 줘야한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를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에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제왕적 대법원장의 근간이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갖는다는 데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걸 제3의 기관으로 떼어내기 전에는 대법원장의 제왕성은 바뀌지 않는다.

대법관회의는 대안이 아니다

대통령 개헌안은 대법원장의 헌재재판관 지명권한 등 제왕적 권한 일부를 떼어내서 대법관회의로 이양한다. 그러나 대법관회의는 법관 인사권이나 사법행정권의 집단지도체제 역할을 맡는 데 부적합하다. 무엇보다 시간에 쫓겨서 고무도장 역할 이상을 할 수 없다. 대법관들은 대법원장과 달리 법원행정처의 특별한 보좌도 받지 않는다. 대법관회의에선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아 마련한 안건을 가볍게 심의하고 넘어가는 수준 이상이 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는 건 환상이다.

사법행정을 대법관회의에 맡기는 방안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법원의 본령은 법리해석과 판례변경으로 법의 제국의 역동적 충실성을 기하는 데 있다. 대법관들은 사법부라는 큰 조직을 돌보며 관료를 돌리는 CEO보다는 더 큰 법의 제국을 돌보며 정의와 형평의 숨결을 돌리는 제사장에 더 적합하다. 최고법원으로서 가장 정의롭고 형평에 맞는 법리해석과 판례(변경)을 도출해서 법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는 대법원 고유의 일만으로도 벅차다. 대법관회의가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나라는 보지 못했다.

최고사법평의회가 대안이다

대안은 유럽국가들이 서구, 동구, 북구, 남구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운영하는 최고사법평의회(supreme judicial council)를 헌법기관으로 신설해서 법관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을 따로 맡기고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사법행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하는 방안이다. 사법부를 서로 구성원리를 달리하는 대법원장과 최고사법평의회로 이원화하는 것이다. 이 방안만이 제왕적 대법원장시대를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게 종식시킬 수 있다.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징계포함)을 최고사법평의회 같은 합의제기구에 주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법행정에는 다양한 법실무직군(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 법원공무원)과 일반시민이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이들의 다른 목소리가 대표될 필요성이 있다.

둘째, 결정권자가 1인이라 인사전횡가능성이 높은 독임제기구에 비해 합의제기구는 법관임용과 법관징계를 여러 위원들의 의견을 들어 신중하게 결정함으로써 법관신분 보장에 더 바람직하다. 굳이 평의회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위원 중에 법실무직(특히 법관들)이 직접 선출한 위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성원칙,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전국법원노조에 추천권 줘야

최고사법평의회는 이탈리아에선 33인, 포르투갈에선 22인으로 구성하지만 11인에서 15인 이내로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법관들이 직접 선출하는 법관대표를 과반수로 하되 나머지는 법학교수와 변호사 등 광의의 법률가는 물론이고 사법감시활동가나 조직혁신전문가 등 비법률가한테도 개방하는 게 바람직하다. 변호사위원이나 법학교수위원도 당해조직에서 선출하는 것이 대표성차원에서 바람직하다. 직접당사자인 시민을 대표할 시민위원들이 꼭 있어야 하며 의회가 선출하는 게 대표성차원에서 제일 바람직하다. 의회가 선출할 경우 여야가 의석수에 비례해서 선출지분을 나눠 갖도록 규정해야 한다. 이는 변호사위원이나 법학자위원을 관련단체가 아니라 의회가 선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법부의 조직민주주의 관점에서는 판사 블랙리스트 파동을 계기로 전국의 법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전국법관대표자회의와 법원공무원노조가 중요하다. 이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권한과 역할을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최고사법위원회 법관위원 추천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사들도 경향에 따라 나뉜다. 사법철학에 따라 사법적극파, 사법소극파로 나뉠 수도 있고 관심영역에 따라 국제인권법연구회파, 민사법연구회파로도 나뉠 수 있다. 이때 과반수를 형성한 어느 한 집단이 모든 투표에서 이겨서 모든 법관위원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가급적 입장차를 반영한 득표율 비례로 법관위원 수를 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다수파의 전횡 없이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

물론 법원노조도 최고사법위원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설계하려면 대법원장을 당연직 위원장으로 할지, 검찰대표를 인정할지, 여야원내대표를 당연직위원으로 할지, 비법관 법조위원들은 어떻게 뽑고 비법률가 시민위원들은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할지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적지 않다.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해 공론화가 몹시 부족하다. 권력구조 개헌을 좀 더 풍부한 연구조사와 토론과정을 거쳐서 순차적으로 추진해야 할 이유다.

판결은 반드시 국민의 이름으로

이하에서는 몇 가지 추가사항을 간단하게 제안한다. 먼저 모든 판결의 서두를 '이 판결을 국민의 이름으로 선고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시작하라는 개헌안이 필요하다. 적잖은 나라들의 헌법이 판결은 국민의 이름으로 내린다고 규정한다. 법관들이 대행하는 사법권도 국민한테 나오는 게 당연한데 법관이 선출직이 아니다보니 유독 사법부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부족한 듯하다. 모든 판결은 국민을 대신하여 국민의 이름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린다는 점을 모든 법관이 판결 때마다 명심하는 게 필요하다. 재판받는 국민 역시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주권과 법의 권위가 살아나고, 그래야만 국민과 법관의 권위가 함께 살아난다.

판사는 헌법과 법률로 재판하면 된다

둘째,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규정하는데 여기서 양심을 삭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법관의 양심을 보충적인 법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헌법조항은 본래 바이마르헌법에서 비롯됐으나 나치 법관들에 의해 악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은 후 독일기본법에선 삭제됐다. 헌법과 법률 외에 법관의 양심을 재판규범으로 허용하는 선진국 헌법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양심이라는 주관적 판단기준을 사법과정의 정당한 요소로 인정할 경우 현실적으로는 법관의 자의적인 증거 인정이나 배척을 이유로 한 징계요구나 재심청구, 손해배상청구에서 입증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판결헌법소원 인정해야

셋째, 판결에 의한 기본권침해를 헌법소원대상으로 허용해야 한다. 재판에서 오심은 불가피하다. 진범이 따로 있는데 진짜 억울한 사람이 대법원까지 형이 확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준영 변호사를 다룬 영화 <재심>이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런가하면 1970~1980년대 간첩사건의 대부분은 불법장기구금과 무자비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의 결과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재판과 판결은 헌법소원이나 인권위진정대상에서 제외된다. 반면에 독일에선 재판헌법소원이 헌재사건의 90%이상을 차지한다. 오직 국민을 위한 사법시스템을 완비한다는 관점에서 고비용 4심제 전락을 방지할 엄격한 요건을 달아 이번 개헌기회에 판결헌법소원제의 제한적 도입을 찬성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법관신분의 철저한 보장은 법관통제 강화를 요구한다

법관은 어떤 개인과 단체, 공사기관의 압력과 회유도 물리치고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한다. 판결에 따른 불이익 기타 보복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도 물리치고 용감하게 판결해야 한다. 일반시민들은 법관이 이렇게 행동해야만 정의가 숨을 쉰다는 점을 잘 안다. 그래야만 인권보호와 권력통제의 최후 보루로 기능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사법부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법관에게 최고 수준의 신분 보장을 해주는 이유다.

철저한 신분 보장 속에서 두려움도 유혹도 물리치고 법관들이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주면 국가에 기강이 서고 준법의무가 내면화된다. 그러나 법관이 신분 보장의 높은 담장 안에서 작은 제왕이 돼 시민의 신뢰를 깨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법관윤리강령, 법관징계절차, 법관탄핵제도 등 다양한 법관비행통제제도가 마련돼 있다. 법관의 신분 보장 강화는 동시에 법관비행통제제도의 강화와 활성화를 요구한다. 재심제도는 물론 판결에 의한 인권침해 구제목적의 헌법소원 허용도 강력한 법관통제방안 중 하나다.

이미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권역법관제 도입을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선진국들은 법관에 대한 강제전근을 아예 헌법으로 금지하든가 징계목적 등 예외적으로만 운영해왔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정기전근 인사관행은 법관 10년 임기제와 함께 하루바삐 사라져야 할 사법적폐 중 하나다. 그러나 정년보장 등 강력한 신분 보장 아래 특정권역에 뿌리내린 지역법관 중에 황제노역 법관처럼 이른바 향판화 폐단이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법관탄핵제도 활성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무조건 부패하기 때문에 철통 신분 보장을 확보한 법관 중에는 얼마든지 타락하는 자가 나타날 수 있다. 당연히 법관윤리강령을 더 강화하고 그 위반여부를 진정 받아 독립적이고 신속하게 조사하여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법관비행진정 및 법관징계제도를 전면적으로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까지 헌법전에서 잠자고 있던 법관탄핵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나라국회는 지금까지 탄핵소추권을 대통령한테만 두 차례 행사해봤지만 법관의 신분 보장이 확실한 사법선진국들에서는 법관이 탄핵소추의 가장 큰 단골손님이다. 탄핵외의 방법으로는 신분 보장이 확실한 법관을 해임, 파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봐줄 요량으로 대선무효소송을 심리 한번 하지 않고 4년여 그대로 갖고 있었다. 대법원은 헌재가 박근혜를 탄핵파면하자 소의 이익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대선무효소송을 각하한다. 실은 담당대법관들을 다 탄핵 소추했어야 마땅했다.

법관비리 진정조사와 징계절차, 최고사법평의회가 진행해야

재판에서 증거인정여부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등 편파적으로 공판을 운영한 나쁜 판사에 대해서는 소송당사자가 쉽게 진정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법원행정처에 법관윤리감사관실이 있어서 여기에서 법관의 윤리강령위반 진정을 조사하고 징계여부를 건의한다. 문제는 모두 대법원장으로부터 조금도 독립한 절차가 아니라는 점이다. 헌법으로 최고사법평의회를 설치한 나라에서는 예외 없이 법관임용과 승진 뿐 아니라 법관징계도 담당한다. 참고로 캘리포니아 주는 아예 사법성과위원회라는 법관비위조사와 징계권고만 담당하는 독립헌법기관을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헌으로 최고사법평의회를 신설하고 여기서 법관 인사와 법관징계를 담당하면 된다.

요약과 결론

위에서 내놓은 새로운 제안들은 모두 초보적인 구상에 지나지 않다. 현행헌법의 사법부관련조문은 헌재관련 3조문을 포함해서 13개조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몹시 소략하다. 사법부의 권력적 성격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대적으로 빈약해서 권한규정을 뒀을 뿐 사법권력 통제원칙과 통제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까닭이다. 만약 내가 독자들에게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려면 좀 더 풍부한 연구조사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했다면 이 글이 제몫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제왕적 대법원장은 최고사법평의회에 사법행정권(법관 인사권 포함)을 떼어주고 최고법원의 재판장 역할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법관독립이 몰라보게 강화되면서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를 제대로 응징할 강한 사법부를 보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강한 사법부를 만드는 게 아니고 제왕적 대법원장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강한 법관이 강한 사법부를 만든다. 이번 개헌기회에 사법행정권과 법관 인사권을 행사할 최고사법평의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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