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후보 경선을 이틀 앞둔 23일 만난 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를 당을 구하기 위한 '구당(求黨)' 행보라 자평했다. "존폐 기로에 선 민주당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여러 실정에 맞서 싸우지 않은 사람은 서울시장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변호사에 대해서도 그는 "(민주당과 내가) 피 터지게 이명박 정권과 맞서 싸우는 동안 박 변호사는 무엇을 했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의 정권교체가 아니었다면 지난 10년 정부 동안 시민운동이 편안하게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 25.7%를 근거로 천 최고위원은 야권이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 55%의 투표율은 나와야" 한다며 "간단치 않은 선거"라고 내다봤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민주당의 활력과 열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박영선 의원이 민주당 내 486 그룹(40대, 80년대 학번, 6월항쟁 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천정배 최고위원은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공개 지지를 얻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천정배는 원칙없이 바람에 휘둘리는 지도부와 바깥에 있는 후보를 위한 원샷 경선 주장에 맞서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당내 경선을 만들어낸 사람"이라며 "소신과 원칙을 지켜온 몇 안 되는 반석"이라고 지지선언을 했다.
"벼랑 끝에서 스스로 손을 놔 버리고 물로 뛰어 들었다"는 그를 자신의 믿음대로 "민주당원과 서울시민이 구해"줄까? 다음은 이날 진행된 인터뷰 전문이다.
▲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천정배 최고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이명박 정권과 치열하게 싸우지 않은 사람, 서울시장 자격 없다"
프레시안 : 당내 경선이 어느덧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회를 듣고 싶다.
천정배 :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다소 아쉽다. 8.24 주민투표 이후 당이 우물쭈물하면서 거의 2주의 시간을 낭비했다. 그동안 복지 항쟁의 열기는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 '안풍(安風. 안철수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민주당이 존폐 기로에 서 있는 정도의 위기다. (박원순 변호사와) 단일화 경선도 해야하는데 경선답게 치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기 어렵게 됐다.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이번 경선은 '구당(求黨)'과 '매당(賣黨)'의 싸움이다. 민주당의 자존심과 역사, 전통을 지키고 민주당의 열정, 활력, 개혁성을 살려내느냐 이대로 민주당이 사라지게 만드느냐는 중대한 전선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당을 구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쓰고 있다.
프레시안 : 다른 세 후보에 비해 천정배가 가진 경쟁력을 설명해 본다면?
천정배 : 지난 주민투표는 서울시민의 위대한 복지 항쟁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제2의 복지 항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그 복지 항쟁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 받는 이른바 복지 대첩이다. 그 대첩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전을 내가 가지고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도 천정배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복지국가의 화두를 만든 사람이 천정배의 복지국가 비전을 인정해준 것이다. 더욱이 다른 후보에 비해 그 비전을 실천할 만한 경륜과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 4선 의원에, 행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다수당 원내대표도 했으며 최고위원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명박 정권의 여러 실정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워왔다. 언론악법, 4대강 사업, 부자 특혜에 맞서 싸우지 않은 사람은 서울시장 자격이 없다. 시장이 되더라도 대통령은 이명박이다. 그 토건 세력, 부자들만을 위한 세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이명박 정권과 제대로 싸운 사람만이 자격이 있다. 나 홀로 싸운 건 아니지만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또 정치인하면 다 썪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정치권에서 나는 어떤 시민운동가보다 더 깨끗하게 살아 왔다. 아무리 봐도 천정배다.
"박원순보다 내가 덜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천정배 : 좋은 사람이다. 일도 같이 많이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활동도 같이 했고 내가 정치권에 들어온 뒤에도 참여연대와 파트너십을 이뤄 같이 한 일이 많다. 그럼에도 선거는 선거니까, 허위사실만 아니라고 한다면 서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내가 민주당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박 변호사보다 내가 덜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광주 항쟁의 학살자,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수 없어 검사와 판사 자리를 버리고 인권 변호사로 출발했다. 지난 세월 동안 개혁의 자세를 늘 보여 왔고 민주당의 정체성에 맞게 서민, 중산층, 소외된 약자들의 편에 서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고통 받는 현장에서 함께 뒹굴었다. 어떤 시민운동가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시민운동도 훌륭하지만, 나와 민주당원들이 피 터지도록 싸우고 헌신해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 10년 동안 시민운동은 편안하게 활동했다. 그런 점에서 정치권에 있었던 우리가 조금도 (시민운동가에게) 모자라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는 우리는 정말 피 터지게 싸웠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는 별로 싸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촛불시위를 주도했나, 한진중공업을 도왔나. 상대적인 것이지만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박 변호사가 이 정권과 격렬하게 싸웠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민주당 지지를 받아 서울시장이 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야권단일후보 박원순, 민주당 지지자들은 '뻐꾸기 심보'로 오해할 수도"
프레시안 : 박원순 변호사의 입당 얘기도 나왔었다. 민주당 내부 평가와 달리 외부에서는 민주당이 좀 닫힌 자세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천정배 : 민주당이 늘 개방돼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일찍 출마 선언을 한 내가 나서 박 변호사에게 들어오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말하지 않았지만, 역시 민주당에 들어와서 후보가 되는 것이 가장 떳떳한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미 불가능해졌지만 말이다.
25일 민주당 후보가 뽑히고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박 변호사 된다면, 그 후에는 민주당에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박 변호사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것 같다. 뒤늦게 민주당에 들어오면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뻐꾸기 심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번 보궐 선거 뿐 아니라 최소한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는,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의 열정을 모아내지 않고 승리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 없이는 통합도 없고, 승리도 없다.
사실 이번 보궐선거, 그리 간단치 않다. 처음부터 그렇게 봤다. 25.7%의 투표율이 보통 숫자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이 한나라당 지지자일텐데 그렇다면 우리도 최소 25%는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열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벌써 투표율이 얼마인가. 전문가들은 55%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궐 선거 투표율이 그렇게 나온 적이 있나? 민주당 지지자 뿐 아니라 젊은이, 진보정당 지지자, 시민사회 모두 다 끌어내는 활력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개혁할 점이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바꿔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민주당을 없애고,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 상태에서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
ⓒ프레시안(최형락) |
천정배 : 안철수 교수는 한국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다. 본인의 능력으로 굉장한 성공을 이뤘고 사회적 책임도 누구보다 잘 하고 있다. 계속 스스로를 변신해 왔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젊은이들과 공감도 이뤄낸다. 안 교수가 가진 여러 생각들이 일반 국민의 피폐한 생활과 희망의 상실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정치인들이 그랬어야 했다. 시대의 변화 조류를 읽어내고 더 나아가 선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힘들게 살고 있는 국민들과의 소통이나 공감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확실한 비전도 보여주지 못했다. 자기 개혁도 제대로 못 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 지점이 '안풍'을 불러온 또 다른 원인이라고 본다.
"나경원, 오세훈 복사판…민주당 활력만 끌어내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 후보는 나경원 의원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나경원 후보와 맞서 이길 수 있을까?
천정배 : 민주당의 활력과 열기를 동원할 수 있다면 한나라당의 어떤 후보도 이길 수 있다. 우리하기 나름이다. 늘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라 얘기해 왔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마찬가지다. 나경원 의원은 사실 오세훈의 복사판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주민투표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고 앞장서 도와준 사람 아닌가. 이미지 정치도 닮았다. 그런데 나경원 의원이 서울시장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도 짐작되는 바가 없다. 오세훈 전 시장은 나름대로 오세훈 선거법이라도 한 일이 있었지만 나 의원은?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두 번 인기투표 1위를 했다는 것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프레시안 : 공약 면에서는 복지에 방점을 찍었다. 굉장히 많은 공약을 구체적으로 내놓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이명박, 오세훈 두 시장을 지나면서 서울시의 재정 적자가 엄청나게 늘었다.
천정배 : 이명박 시장 취임 당시 서울시의 부채가 8조5000억 원이었다. 지금 서울시 부채 25조5000억 원의 3분의 1 밖에 안 됐다. 이명박 시장이 5조 원의 부채를 늘렸고, 오세훈 시장이 11조를 더 불렸다. 내역을 보면 SH공사의 빚이 16조 원으로 가장 크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부동산 개발 등 토건행정을 하다 서울시가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그 토건 사업으로 특권층만 이득을 봤다. 그 특권층에게 어떻게든 책임을 물려야 한다고 본다.
시장이 되면 제일 먼저 그런 사업에 대한 강력한 감사를 벌이는 것이다. 국제금융센터(IBC)만 해도 그렇다. 이명박 시장이 AIG에게 개발권을 줬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 때는 그 건축 면적을 두 배로 늘려줬다. 법에도 어긋나게 99년 간 운영권을 줬고 임대료도 낮게 책정했다. 온갖 특혜는 다 줬다. 엄청난 비리의 냄새가 난다.
이런 사업을 포함해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 등에 대해 서울시장이 가진 법적, 정치적 모든 권한을 다 행사해 전면적인 감사를 하겠다. 시민들도 참여시키겠다. 중앙정부 감사원에 의뢰할 것은 그렇게 하겠다. 그 결과에 따라 중단할 건 하고, 재조정하고 책임자도 문책하겠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 따져보니 2조5000억 원 정도를 그렇게 마련할 수 있다. 또 중앙정부로부터 1조 원을 받아올 방법을 추진하려 한다. 현재 중앙정부가 5%의 지방소비세를 내려주는데 이를 10%로 올리면 1조 원이 늘어난다. 총 3조5000억 원이다. 그 중 5000억 원은 빚 갚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3조 원으로 복지 민생 정책을 펼 것이다.
강남북 격차 해소도 중요하다. 서울시가 지금 2개의 시로 나뉘어버렸다. 지방세제를 바꿔 재산세 가운데 50%만 공동세로 하는 것을 100%로 올리겠다. 서울시가 재산세를 전부 걷어 그 중 70%는 25개 구에 균등하게 배분하겠다. 나머지 30%, 1조3000억 원은 강남북 균형발전 특별회계로 운영하겠다. 일종의 '서울 미니멈, 최저생활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에 미달되는 곳부터 복지 등을 지원하겠다.
"지역구 버렸다고? 내년 총선서 통합 위해 내놓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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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 그야말로 배수진을 치고 퇴로를 잘랐다. 사실 정치적으로는 좀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서울시장 보궐 선거가 아니었더라도 내년에 내 지역에서 다시 출마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4선까지 할만큼 했다. 무엇보다 야권 통합을 이뤄내기 위해 불출마 선언을 하고 내 지역을 통합을 위해 내놓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다른 지역에서 해 볼 생각도 있었다. 때문에 나로서는 그 부분에 큰 고민은 없다.
가진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벼랑 끝에서 스스로 손을 놔버리고 물에 뛰어 들었다. 잘 헤쳐 나올지, 누군가 구해줄지, 아니면 익사할지 모르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다. 서울 시민과 당원들이 구해주리라 믿고 있다. 내가 늘 좋아하고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길을 늘 걸어 왔다. 나도 잘 하긴 했지만 더 열심히 노무현 대통령을 닮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번 일은 당과 우리 민주개혁진보세력의 전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서울시민에게 한 마디 한다면?
천정배 : 재차 강조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복지대첩이다. 이 대첩을 승리로 이끈 민주당의 자존심, 준비된 민주당의 적통자가 천정배다. 활력 있는 서울을 만들겠다. 서울을 시민의 집으로 만들겠다. 서울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피는 집, 복지 서울을 꼭 만들겠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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