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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97년 체제' 극복 갈망의 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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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 '97년 체제' 극복 갈망의 분출"

[의제27 '시선'] 한국 '3중 위기'와 '13년 체제'로의 이행

정확하게 2008년 9월 15일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지 3년이 지났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그 영향의 실감은 구체적이되 정작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판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역시 그러하다. 역사적 이행기에는 여러 정치·사회 세력 간의 갈등으로 인해 낡음과 새로움, 전진과 후퇴가 공존하며, 따라서 역사 내부에서 그 진행 방향을 가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함의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지난 20세기 전반 대공항에 이어 두 번째의 이른바 '시장의 실패'다. 1970년대 복지국가의 위기에 이어 등장한 '시장의 복원'은 결국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역사화, 다시 말해 또 다른 체제로의 변동과정에 놓여 있다.

한국사회와 3중 위기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한국사회, 특히 한국정치의 방향이다. 돌아보면 1987년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 온 두 개의 원동력은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른바 '87년 체제'를 등장시켰다면, 세계화로부터 주어지는 강제가 '97년 체제'를 낳았다(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차이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고자 한다). 민주화가 사회개혁을 위한 구심력으로 작용했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개혁에 한계를 부여하는 원심력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순이 가장 예각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다. 적어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가져오는 결과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일련의 사회정책으로 제어하고자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적 정책에 전력투구함으로써 사회적 긴장 및 갈등을 더없이 높여 왔다. 세계화의 원심력이 민주화의 구심력을 압도하여 사회 양극화 등을 포함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늘이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이명박 정부다.

정치사회학적으로 볼 때 경제사회의 위기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로 전이되며, 그것은 다시 경제사회에 대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개입을 요구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경제사회에 대한 정치사회의 개입 역량, 다시 말해 시장에 대한 국가의 대응 역량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제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을 스스로 약화시켜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3중 위기'다. 경제적 '(재)분배의 위기',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 그리고 사회적 '인정(recognition)의 위기'가 바로 그것이다(재분배·대표성·인정 개념을 나는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로부터 빌어 왔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맨 먼저 나타난 것은 인정의 위기이며, 이어 (재)분배의 위기가 발생하고, 그리고 최근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성의 위기가 가시화됐다. 촛불집회, 복지논쟁, 희망버스, 그리고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시장과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을 의미하며, 무엇보다 경제와 정치의 재구조화를 요구하고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부분적 처방으로는 이러한 3중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분배와 재분배 영역, 다시 말해 노동시장 개혁과 복지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장의 공공성을 제고하는 재벌개혁 역시 적극적으로 의제화돼야 한다.

둘째, 셰리 버먼(Sheri Berman)이 말한 바 있는 '정치의 우선성'이 확보돼야 한다. 시장의 실패를 치유할 수 있는 일차적 주체는 다름 아닌 국가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정당과 시민사회 간의 새로운 관계 구축을 요구한다.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든 안철수 현상에도 정치의 정상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담겨 있다.

13년 체제를 향하여

역사에서 사건사와 국면사를 교차시켜 보면, 사건은 국면 안에 놓여 있지만, 때로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변화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촛불집회에서 안철수 현상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체제인 97년 체제의 극복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나는 새롭게 도래하는 체제를, 다른 이들도 명명한 바 있지만, '13년 체제'라 이름짓고 싶다.

내가 소망하는 13년 체제는 <표 2>와 같다. 크게 보아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신사회민주주의로,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로, 그리고 조직화된 시민사회가 성찰적 시민사회로 진화한 체제다. 이 체제의 원형이 선구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표출된 것은 2008년 촛불집회에서였다. 촛불집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졸속협상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 문명과 생명이 공존하는 성찰적 시민사회에 대한 모색으로 진화했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내년 선거를 통해 97년 체제가 지속될지, 아니면 새로운 13년 체제가 열릴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진보개혁적 시민 다수가 새로운 체제의 개막을 갈망한다 하더라도 지구적·지역적 차원에서 부여되는 구조적 강제,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의 경험이 반영된 경로의존성,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략적 선택 간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그것이 지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3년 체제를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 속에서 최선의 전략적 선택을 추진할 수 있는 집합의지의 발휘를 극대화해야 한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분배의 정치와 재분배의 정치, 노동의 정치와 복지의 정치를 포괄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지난 7월 <프레시안>에서 지적한 바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민주적 새판을 짜는 문제', 다시 말해 민주적 복지국가에 대한 거시적 비전의 모색을 뜻한다.

누구는 이러한 비전에 대한 강조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말하지 모른다. 하지만 시민적 시각에서 볼 때 거시적 비전은 한국사회가 가야할 방향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정의 없는 기업지배', '노동 없는 민주주의', '복지 없는 사회통합'이 한국사회의 현주소라면, 재벌개혁, 노동시장 개혁, 그리고 복지개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새로운 종합비전, 새로운 시대정신의 제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둘째, 대표성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질서의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 촛불집회와 안철수 현상이 상징하듯이 시민사회의 요구에 적절히 조응하지 못하는 정당정치의 지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정치사회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진보적 시민사회의 열망을 새로운 방법과 콘텐츠로 담아내지 못할 경우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비조응성은 환멸의 탈정치화와 열망의 재정치화의 반복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연합론이든 통합론이든 그 기본을 이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를 제어하고 새로운 체제를 열어가겠다는 규범적 지향성이다. 자원의 배분이 정치의 현실이라면, 그 배분의 가치 지향은 정치의 이상이다. 안철수 현상이 함의하는 바는 소통과 공공성에 대한 욕구 못지않게 타협과 배려의 정치에 대한 기대다. 바로 이점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진보적 시민사회의 재정치화 열망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정당질서의 재편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근대사회의 도래를 '옛날의 많은 신들이 그들의 무덤에서 걸어 나와 서로의 영원한 투쟁을 시작하는 시간'으로 묘사한 바 있다. 선거의 시간 역시 이와 같다. 옛 것과 새 것, 낡은 신과 새로운 신, 철지난 비전과 새로운 비전이 경쟁하고 투쟁하면서 한국사회 전체를 단숨에 시험대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진보개혁 세력이 부디 새로운 13년 체제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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