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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무기 사용한 아사드는, 미치지 않았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누가 '화학무기'를 쓰게 만드는가?

2011년 시작된 시리아 전쟁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학무기로 죽었다. 화학무기는 국제법상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무기이다. 사람의 피부와 호흡기, 신경을 마비시켜 결국은 목숨을 앗아가는 매우 치명적 무기이다.

시리아 정부는 사린가스, 염소가스, 겨자가스, VX가스, 타분가스 등 여러 가지의 화학무기를 보유해왔다. 시리아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화학무기 보유국으로 꼽혔다.

최근 다마스쿠스 동쪽 반군 거점인 동구타에서 염소가스 성분이 든 화학무기로 70명이 희생당해 논란이 되고 있다. 동구타에선 화학무기 피해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13년 8월 동구타에 떨어진 화학무기로 900~1000명 가량의 민간인들이 죽음을 맞이했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부상자는 무려 8000명에 이르렀다. 화학무기 피해자의 67%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레드 라인을 넘어섰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면서 국제사회는 아사드 독재정권이 화학무기를 쓸 가능성에 대해 걱정해왔다. 2012년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로 공격을 해선 안되며, 만에 하나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국이 직접 시리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경고했다. 화학무기 사용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종의 '금지선'(red line)으로 그어 놓은 셈이었다.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리아 정부군은 시리아 전쟁 3년을 맞이하면서부터 화학무기를 쓰기 시작했다. 2013년 3월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 인근 칸알아살 지역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금지선'을 넘어섰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26명의 시리아 사람들이 생목숨을 잃었다.

이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들끓었다. 그런 비난을 견디다 못해 시리아 정부는 전쟁 3년째 되던 해인 2014년 화학무기를 모두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그 뒤로도 화학무기의 희생자가 생겨났다.

▲ 지난 8일(현지 시각)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 반군의 거점인 동구타에서 염소가스 성분이 든 화학무기가 사용됐다. 사진은 화학무기 공격에서 빠져나와 산소호흡기로 치료중인 아이 ⓒAP=연합뉴스

"아사드는 미치지 않았다"

아사드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총을 들고 싸우는 시리아의 시민들을 '세균'에 빗대어 말한 적이 있다. "세균이 더 많이 늘어날수록 박멸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균들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우리 스스로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애국적인 면역력을 낮추는 외부 간섭을 피해야 한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국민을 세균이라 부르는 지도자가 또 있을까. 세균을 박멸하겠다고 화학무기를 쓰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을까.

시리아 독재자 아사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금지선'을 그어가면서까지 거듭 경고했던 화학무기를 왜 사용하였을까. 화학무기 사용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아사드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시리아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피터 포드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사드는 미치지 않았다"며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앞뒤 재지 않는 막무가내로 화학무기 사용 명령을 내리진 않았을 것으로 보았다.

전쟁 빨리 끝내려는 조급한 마음

지난 2015년 9월부터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본격 개입한 것은 독재자 아사드에게 엄청난 힘이 됐다. 러시아 공군은 반군 지역을 잇달아 공습하면서부터 시리아 정부군은 수세국면에서 벗어났다. 2016년 시리아 북부 대도시인 알레포를 탈환하는 등 주요 전투에서의 승리를 거듭했다. 그럼에도 정부군은 거듭된 전투에 매우 지쳤고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사드 정권에 큰 부담이었다.

전쟁이 여러 해를 끌면서 독재자 아사드의 마음이 불안해진 것이 화학무기를 쓰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반군들의 저항 의지를 누르고 전쟁을 빨리 끝장내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화학무기 사용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화학무기를 써서라도 반군을 실질적으로 제압해야 내전을 끝내는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설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전쟁이 여러 해를 끌면서 인간의 죽음을 전쟁 초기보다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게 된 분위기도 화학무기 사용의 배경으로 보인다. 오랜 전쟁으로 이미 시리아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해진 독재자는 화학무기를 한 마디로 '저항 의지를 꺾는 효과적인 무기'로 여기는 모습이다. 전쟁 사망자 숫자는 2018년 현재 50만명 쯤으로 추정된다. 독재자 아사드의 셈법으로 보면, 화학무기로 죽는 사람들의 숫자는 전체 전쟁 사망자에 비하면 그다지 많지 않다.

국제사회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

보다 결정적으로는, 아사드가 화학무기로 민간인들의 희생을 키워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대로 대응 못하는 것이 문제다. 세계가 말로만 아사드를 비난하는 것이 그로 하여금 화학무기 카드를 자꾸 만지작거리게 했다고 볼 수 있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문제를 조사하기로 했지만, 현장 접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정부를 비난만 할뿐 제대로 된 조치나 제재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리아 내전 개입을 꺼렸던 미국의 소극적 태도는 아사드의 화학무기 사용 결정에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전임 대통령인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금지선'을 긋고 여러 차례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 엄중한 경고 신호를 시리아 정부에 보냈지만, 군사적 대응은 '고려'만 했을 뿐 실제로 응징에 나서진 않았다.

2017년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도 전임자인 오바마와 크게 다를 바 없다. 2017년 4월 아사드가 화학무기를 또 쓰자, 60~70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시리아 공군 비행장에 쏘았을 뿐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동안 미국은 시리아의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한 공습을 벌여왔지만, IS의 주적이기도 한 시리아 정부군을 겨냥한 공격은 없었다.

국제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미국이 미사일 발사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군사행동에 나서지 않은 한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유혹을 끊기는 어려워 보인다. 독재자 아사드도 미국이 시리아 정부를 뒤엎기 위해 미 지상군을 파견하는 등 무력으로 적극 개입할 뜻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리아까지 전선을 늘린다는 것은 미국에게 엄청난 전쟁비용 부담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 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권 유지를 포함한 시리아 상황은 우리가 받아들여 할 정치적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미국의 목표가 독재자 아사드 축출보다는 전쟁을 어쨌거나 빨리 끝내는 데 무게중심이 있음이 넌지시 드러났다.

국제법학자들은 전쟁범죄를 가리켜 일반적으로 '전쟁과 관련된 국제법의 규정들을 어긴 범죄'라고 설명한다. 전쟁과 관련된 국제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949년에 빛을 본 제네바협약이다. 이에 따르면, 전쟁포로와 시민(비전투원)을 학대하고 사살하거나 민간인들의 재산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것은 전쟁범죄이다.

독재자 아사드의 화학무기 사용 결정이 중대한 전쟁범죄임은 더 말할 것 없다.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전쟁범죄를 덮어주긴 어렵다. 1990년대 발칸반도의 학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헤이그로 압송해 유고전범재판소(ICTY) 법정에 세웠듯이, 아사드를 붙잡아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우는 날이 온다면, 그날이 화학무기로 희생된 시리아 어린이들이 하늘에서 웃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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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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