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불시 정전 대란이 발생한 후 만 하루가 넘게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저녁 서울 강남구 한국전력 본사를 방문해서 지식경제부,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간부들에게 "여러분의 수준은 형편없는 수준이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오후 한전 방문을 갑자기 결정한 이 대통령은 준비된 브리핑 장소를 보고 "여기서 회의를 할 수 있겠냐"며 대회의실로 이동을 지시했다.
"기본을 지키면 일어날 수 없는 문제다"
한전 부사장, 전력거래소장, 지식경제부와 문답식으로 브리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전 측은 "대국민 홍보 규정은 없다", "단전은 전력거래소에서 하는 것이다", "부족하지만 가두 방송으로 알렸다"는 등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다른 유관기관들도 "잘못했지만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자 이 대통령은 격노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분들은 '한꺼번에 전기가 다 나가면 어떡하나. 국민 피해가 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다"면서 "기본을 지키면 일어날 수 없는 문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발전량이 예상외로 들어와 조금 전기소모를 줄여다라고 미리 국민들에게 말했으면 5%, 10% 줄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면서 "국민은 그런 수준이 돼 있는데 여러분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저 후진국 수준이다"고 말했다.
정비를 위해 발전량을 줄인 상황에서 전기 수요가 늘어나 어려움에 처했다면, 미리 국민들에게 알렸어야 한다는 것.
이 대통령은 "당신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있다가 (전력) 수요가 올라가니까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 아니냐"고 관계자들을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부끄럽다. 정부가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오늘은 문제가 없었따다. 오늘 문제가 없었다면 (미리 대비했을때) 어제도 문제가 없었다"면서 "발전소도, 전력거래소도, 한전도 사과해야 한다.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30여 분 간 관계자들을 질타한 이 대통령은 "나는 돌아가겠어요"라며 말을 맺었다.
4개월 전 '금감원 격노'재판될라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악화된 후에도 금융감독원을 직접 찾아 "국민 전체에게 주는 분노보다 내가 더 느낀다"고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4개월 만에 대통령의 '현장 격노'가 재연된 것. 김두우 홍보수석 사태 등 악재가 겹친 것도 한전 방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발전회사와 한국전력의 낙하산 인사 난맥상이 이번 사태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대통령이 남탓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관리항목에 전력 분야를 포함시키고 있는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이번 국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격노'가 어떤 후속조치로 이어질지 관심사다. 야당 의원들은 한전, 발전회사는 물론이고 정전 상황에서 청와대 만찬장에 앉아있던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금감원 현장 질타 이후엔 이 대통령의 지시로 민관합동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가 출범한 바 있다. 하지만 민간 위원이 사퇴하는 등 어지럽게 활동한 이 태스크포스는 시한을 두달이나 연장하며 활동하다 지난 2일 혁신방안을 발표했지만 '용두사미'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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